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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1층을 무더위쉼터로 바꾼 ‘혁신’

테마형 무더위쉼터 기획한 도봉구 창의혁신팀 박수연 팀장, 김희찬·서솔미 주무관

등록 : 2023-09-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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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청 1~2층에 조성된 테마형 무더위쉼터를 기획한 창의혁신팀원들이 8월24일 쉼터 홍보 배너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수연 팀장, 서솔미·김희찬 주무관.

1월 신설팀, 제안제도 운영에 중점 둬

구청장 요청, 6월 쉼터 아이디어 내

구민청 활용 누구나 찾고 싶게 기획

안마·수면·취미·독서 등 11개 방 구성

재난행정 혁신사례로 평가받아 ‘뿌듯’

테마형 무더위쉼터 ‘휴가’(休家)가 문을 연 지난 7월10일부터 도봉구청사 1~2층에는 활기가 넘친다. 9월30일까지 쉬는 날 없이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되는 쉼터는 폭염 속 도봉구민들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됐다. 매일 200명이 찾아 더위를 피하며 11개로 나뉜 방에서 안마기도 이용하고 낮잠도 자며 편히 수다도 떤다. 취미방에서 어른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아이들은 젠가(나뭇조각을 쌓아놓고 밑에서 빼내 위에 얹는 게임)나 보드게임을 한다.

지난 8월24일 도봉구청 직원휴게실에서 테마형 무더위쉼터 아이디어를 낸 창의혁신팀원들을 만났다. 박수연 팀장, 김희찬·서솔미 주무관은 주위 반응부터 전했다. 박수연(47) 팀장은 “‘관공서에 웬 안마기’라고 처음엔 내부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2대를 추가 설치할 정도로 이용자 반응이 너무 좋다”고 했다. 김희찬(40) 주무관은 “아내와 아이들이 와서 정말 잘 만들었다며 좋아해서 내심 무척 뿌듯했다”고 했다. 주말에 친구와 쉼터를 찾은 서솔미(29) 주무관은 “친구가 자기 동네에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많이 부러워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6월 폭염이 계속되면서 오언석 구청장이 전 부서에 추가 무더위쉼터 조성에 대한 아이디어 발굴을 요청했다. 기획예산과에서는 김봉식 과장이 구청사 1~2층 기존 구민청 시설을 활용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창의혁신팀원들은 경로당이나 동 주민센터 쉼터의 개선점을 파악한 뒤 머리를 맞댔다. 남녀노소 누구나 더위를 피하면서 무료하지 않고 편히 즐길 수 있게 테마형으로 콘셉트를 잡고, 방 구성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아이디어를 모았다. 김 주무관은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팀 분위기라 거리낌 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었다”며 “구민 누구나 찾아 머물고 싶은 곳이 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아동방에서 박수연 팀장이 팔을 펼쳐 보이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공들여 만든 기획안도 실행돼야 빛을 보기 마련이다. 부서마다 현업에 바쁘다보니 다른 부서의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나서기 녹록지 않은 여건을 고려해, 부구청장이 구청장 결재 뒤 회의를 열어 업무 조정을 했다. 공간 조성과 운영은 행정지원과, 예산 마련은 재난안전과, 무더위쉼터 지정은 어르신장애인과가 맡았다. 박 팀장은 “실행 과정에서 안내판도 만들어지고 방 이름에 구정 캐치프레이즈도 반영되는 등 처음 기획안보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조성됐다”며 “직접 방문한 국무총리께서 재난행정의 혁신사례로 평가해 모두 뿌듯해했다”고 전했다.

쉼터 운영은 청사관리팀이 맡아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재 8명의 기간제 근로자가 매일 2교대로 근무하며 이용자 불편이 없도록 챙기고 있다. 처음엔 ‘안마방이나 수면방 등에서 너무 오래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다행히 60여 일 동안 민원은 거의 없었다.

도봉구 창의혁신팀은 지난 1월 새로 꾸려졌다. 평가 업무와 함께 제안제도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업에 바쁜 직원들이 양질의 제안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부서 간 협업이 큰 어려움 없이 이뤄진 이번 경우와 달리 실제 많은 제안이 실행 단계에서 한계를 마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 주무관은 “아이디어를 어렵게 내놓았는데, 예산이나 인력 문제로 실행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면 힘이 빠진다”고 털어놓았다. 박 팀장은 “우리는 일을 만드는 부서다 보니 실행하는 부서에 미안함마저 느끼게 된다”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낸 담당자와 실행 담당자 모두 정당하게 보상받는 체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팀원들이 영상체조방에서 영상을 보며 요가 자세를 따라 하고 있다.

창의혁신팀은 이런 현실을 고려해 동아리 활동과 경진대회 방식을 활용했다. 지난 3월부터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내기 위해 창의혁신 동아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7급 이하 20명이 매달 만나 격의 없이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김 주무관은 “(혁신적인 구정이 이뤄지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얘기부터 할 수 있어야 하기에 젊은 직원들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던져볼 수 있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7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벤치마킹 경진대회는 부서 대표 사업과 관련한 제안을 하도록 해 업무계획 수립과 연계할 수 있게 한다. 실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업무를 잘 아는 직원이 제안하도록 틀을 짰다. 박 팀장은 “대회를 통해 선정된 사업은 내년도 주요 업무계획과 본예산에 우선 반영해 도봉구의 대표 정책으로 추진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앞으로 창의혁신팀은 도봉구가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는 사업들을 만들어가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한다. 이번 무더위쉼터에서 주민 호응이 높은 즐길거리를 다른 공공시설에 확대하는 방안도 찾아볼 계획이다. 김 주무관은 “어떤 내용의 아이디어도 귀담아들어주는 팀장님, 과장님의 역할이 컸다”며 “창의와 혁신이 이뤄지려면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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