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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도봉·송파 유니세프 인증, 모두가 더 살기 좋은 도시 출발점

등록 : 2017-02-10 08:44 수정 : 2017-02-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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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친화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유니세프 프랑스위원회는 아동친화도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밑그림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색칠해가며 자신들의 권리를 알게 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색칠 경연대회를 열어 시상하고, 전시도 하며 책자도 발간한다. 사진은 리옹 지방의 한 어린이가 색칠한 아동친화도시 그림. ©Original design by OMY, 2015 and ©Ville de Riom
성북구 숭덕초 이수진(12) 학생은 지난해 태어나 처음으로 멋진 목걸이 이름표를 받았다. 성북아동청소년센터 어린이청소년 운영위원회 ‘껌딱지’ 위원증이다. 초·중·고생 30명으로 구성된 껌딱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치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모임이다. 지난달 14일 새해 들어 처음으로 껌딱지 회의가 열렸다. 올해 새로 시행되는 성북구의 ‘아동문화카드’에 대해 손이선 센터장이 설명하고 위원들에게 의견을 청했다.

설문조사를 어디에서 어떻게 진행하면 아이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눴다. 막내인 수진이는 설문에 답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줍게 말했다. “언니, 오빠들과 회의하면서 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게 참 좋아요.”

도봉구 노곡중 유정원(15) 학생은 주말에 학원 대신 동네 청소년수련관에 간다. 올해로 3년째 창동청소년수련관 청소년운영위원회 ‘확성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5명의 중·고생 위원들과 함께 지난해 지역사회를 바꾸는 ‘밀당 프로젝트’에 참여해 동네의 유해 환경 알림지도를 그렸다.

송파구 아동청소년참여위원회 ‘푸른솔’ 위원인 가락고 김아영(16) 학생은 100명의 다른 위원 학생들과 함께 지난해 9월 처음으로 구청에 정책 제안서를 제출해봤다. 어린이청소년 신문, 학생회 모임 ‘평의회’, 청소년신문고 등을 만들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들 세 학생이 사는 성북구, 도봉구, 송파구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한 자치구들이다. 아동친화도시란 18살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 속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방정부를 말한다.

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조약인데, 아동을 보호 대상이자 권리 주체로 보는 점이 특징이다. 아이들을 혜택이나 보호만 받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아동들과 관련된 모든 결정에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을 첫째 기준으로 삼도록 강조한다.

1996년 유니세프 본부는 아동친화도시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정했다. 전담기구, 법 체계, 예산 등 9가지를 제시했는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여기에 안전을 추가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제시된 요건을 충족하는 지방정부가 신청을 하면 심의를 거쳐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한다. 신청에서 심의 통과까지는 평균 6개월이 걸리는데, 아동친화도시로 인증받은 지방정부는 인증 로고를 홍보물과 시설물에 쓸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를 만들고 있는 지방정부는 1300여 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북구가 2013년 최초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고, 지난 3년간 6곳으로 늘었다. 서울에서는 도봉구와 송파구가 지난 연말 인증을 받았고, 강동구가 심의를 받는 중이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지방정부는 아동권리를 담당하는 기구나 부서를 만들어 운영한다. 성북구는 부구청장 직속의 교육아동청소년담당관, 도봉구는 교육지원과 아동친화도시팀, 송파구는 청소년과에 청소년정책팀, 청소년육성팀, 아동지원팀 세 팀을 두고 있다. 법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아동친화도시 조성과 관련 시설 설치와 운영에 관한 조례를 구의회에서 제정한다. 어린이·청소년의회 구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학생참여예산, 아동권리 모니터링, 아동영향평가 등에 아동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예산과 관련해서는 아동친화도시의 정착과 지속을 위한 ‘아동친화예산서’를 도입한다. 전체 예산 가운데 아동 관련 예산을 뽑아내 아동의 권리별로 예산을 배정하고 분석할 수 있게 만든 예산서다.

아동친화예산서로 지방정부가 아동권리 관점에서 자원을 어떻게 배정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인증을 받은 자치구 세 곳의 아동 관련 예산 규모는 지난해 전체 일반예산의 25%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도봉구는 전체 예산의 27.23%인 1164억 4800만원이 아동친화예산이었다. 21개 부서에서 116개의 세부 사업에 아동 관련 예산이 책정됐다. 성북구와 송파구도 비슷한 수준이다.

유엔은 이미 20년 전에 아동권리 보장을 건강한 도시, 민주적 도시 나아가 굿거버넌스의 궁극적인 평가지표라고 선언한 바 있다. 아동친화도시 조성은 더 나은 도시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인 셈이다. 서대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아동친화도시는 아동의 권리보장에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다”며 “지방정부의 일방적 주도가 아닌 지역 구성원 모두가 협력해 아동권리를 인식하고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북구, 도봉구, 송파구에서 참여 활동을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어른들이 귀 기울여주는 것이 좋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확성기’의 유정원 학생은 “내 의견을 내는 활동이 좋아 참여했는데, 우리 동네 환경 지도를 그려볼 수 있어 뿌듯했어요”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푸른솔’의 김아영 학생은 “우리 모둠의 아동 참여권을 위한 정책 제안이 잘 활용되어 친구들이 자신의 권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며 웃었다. 아동친화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누리는 행복이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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