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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로 체험한 우주여행’…“발달장애 학생들 생각이 한 뼘 커졌다”

(사)예술과 인간개발, 발달장애아 지원기관인 꿈더하기지원센터 방문
자체 개발한 VR 콘텐츠로 ‘디지털 교육’와 ‘힐링 교육’ 등 진행

등록 : 2024-03-21 15:11 수정 : 2024-03-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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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등 빠른 확산 속 ‘장애인 디지털 교육’, 생활에 큰 도움”

헤드셋 넘어 우주 펼쳐지자 웃음 가득

그림무드등 만들기로 힐링 요소도 강화

23년 17개 기관 762명 대상 교육 진행

‘사단법인 예술과 인간개발’이 지난 15일 오후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꿈더하기지원센터’를 방문해 발달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힐링아트테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힐링아트테크는 ‘예술과 인간개발’이 개발한 가상현실(VR) 콘텐츠를 활용한 힐링 프로그램이다. 한 학생이 헤드셋을 낀 채 우주탐험을 하고 있다.

“태양계 행성들이 너무 멋있어요!” “다시 한번 우주에 가고 싶어요!”

지난 15일 오후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꿈더하기지원센터’ 중등반 학생들이 머리에 쓴 헤드셋을 벗으면서 한 말이다. 꿈더하기지원센터는 발달장애 학생들의 배움터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24살 청년까지 약 30명의 학생이 나이와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고 있다.

꿈더하기지원센터 아이들이 착용한 헤드셋은 ‘사단법인 예술과 인간개발’ 김현진 상임이사(예술치료학 박사)가 개발한 가상현실(VR) 힐링콘텐츠 ‘마이 스페이스’와 연결돼 있었다. ‘마이 스페이스’는 태양계 행성의 모습을 360도로 보여주면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에서 채집한 소리까지 함께 들려주는 6분짜리 시청각 콘텐츠다. 학생들은 눈과 귀로 함께 전해지는 행성들의 모습에 깊이 몰입되면서 마치 직접 우주에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꿈더하기지원센터 학생 등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마이 스페이스’ 같은 가상현실을 이용한 디지털 교육은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사회가 점차 디지털화해가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디지털 문화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꿈더하기지원센터에서 학생 교육을 담당한 진설희 팀장은 “요즘 키오스크를 비롯해 디지털 기계로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며 “비장애인분들도 어려워하지만 발달장애 학생들의 경우 어려움이 더욱 크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학생들의 실제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술과 인간개발 관계자가 학생에게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 팀장은 특히 미술치료사와 코치 등으로 이루어진 ‘예술과 인간개발’팀이 직접 방문해 프로그램을 진행해준 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저희 학교에서는 이런 체험 활동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외부에서 체험하는 건 조금 어려워요. 무엇보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낯선 환경을 접하는 걸 매우 어려워하고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진 팀장은 “이렇게 전문가들이 학생들을 일대일로 체험하게 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더욱이 학생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교실로 직접 찾아와주시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진 팀장은 “학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디지털 교육을 한번 경험해보면 이후에는 좀 더 잘 적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진 박사는 꿈더하기지원센터를 찾아 편안한 교육 분위기를 조성한 또 다른 이유로 VR 콘텐츠가 가진 ‘힐링적 요소의 구현’을 꼽았다.

김 박사는 “VR 프로그램 ‘마이 스페이스’는 학생들에게 세계관을 확장시켜주고 자신을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의 마음에 힐링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가 말한 ‘세계관 확장’ 기능은 VR 프로그램이 가진 리얼리티와 몰입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VR 학습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완전히 몰입하는 체험 활동에 참여”하며 “이러한 능동적 학습 기회는 학생들의 상상력과 새로운 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낯선 헤드셋을 쓰기 전 정서적 이완을 위해 ‘그림무드등’을 만들었다. 함께 모여 더 밝은 빛을 내는 무드등은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전달해준다.

그런데 예술과 인간개발이 제작한 VR 콘텐츠는 인텔에서 밝힌 VR의 기본 속성에 더하여 예술치료적 기능을 보탬으로써 ‘힐링’ 효과를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김 박사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과 융합한 디지털아트테라피를 ‘힐링 아트 테크’라고 부르고 있다. 김 박사는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미술치료 전문기관인 ‘아트앤마인드’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날도 김 박사 등 예술과 인간개발팀은 꿈더하기지원센터 학생들에게 보다 큰 힐링 효과를 선사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설계했다. 학생들은 VR 콘텐츠를 관람하기 이전에 우선 그림무드등을 만들기 위해 투명 플라스틱판에 자신이 생각하는 행성을 그리는 활동부터 했다. 헤드셋을 낯설게 여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다.

학생 중 지하철 타기를 좋아하는 수영이는 ‘지하철 행성’을, 수줍음이 많은 지연이는 ‘해바라기 행성’을, 외계인에 관심이 많은 태훈이는 ‘유에프오(UFO) 행성’을 그렸다.

학생들의 미술작업을 돕던 김연주 미술치료사가 완성된 그림들을 한데 모아 전원을 연결했다. 연결과 동시에 플라스틱 그림판 밑에서 빛이 퍼져나오면서 학생들의 그림이 밝게 빛났다. 순간, 학생들의 얼굴도 밝게 빛나면서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그림무드등을 얼굴 높이로 들어올렸다.

김연주 미술치료사는 “미술작업은 정서적 이완의 효과가 있고 특히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 자신과 타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렇구나’ ‘쟤랑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의 존재에 대해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김 미술치료사는 이어 “무드등 만들기처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표현을 촉진하면 학생들이 그 작업을 공부라고 생각하기보다 놀이라고 생각한다”며 “더욱이 여러 개의 그림무드등이 모여 동시에 빛을 밝혀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만의 빛을 내는 각각의 무드등(우주행성)이 함께 있을 때 더욱 밝은 빛을 밝힐 수 있다’는 소중한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진 박사는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그림무드등을 활용한 행성 그리기처럼 다양한 미술작업은 VR 콘텐츠의 특수성과 함께 치유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예술치료의 높은 치료적 가능성을 2018년부터 연구했다. 예술과 인간개발에 삼성전자의 후원이 이루어져 김 박사는 2019년 국내 최초로 ‘디지털 아트 테라피’ 콘텐츠인 VR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후 2022년까지 IT 기술과 미술·음악 등을 융합한 힐링콘테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김 박사는 이를 활용해 소년원 및 준법센터 등에 있는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힐링아트테크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김현진 ‘사단법인 예술과 인간개발’ 상임이사가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 앞에서 힐링아트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술치료학 박사인 김 상임이사는 미술치료 전문기관인 ‘아트앤마인드’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어 2022년부터 현재까지는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후원으로 다문화 및 위기 청소년들의 정서 지원을 목적한 모험용 힐링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스마일! 힐링아트테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과 인간개발은 2022년에는 3월부터 12월까지 다문화 및 위기 청소년 대상기관 14곳에서 ‘스마일! 힐링아트테크’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모두 730명의 청소년이 체험에 참여했다. 또 2023년 3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전국적으로 총 17개 기관을 방문해 762명에게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번 꿈더하기지원센터 방문교육은 예술과 인간개발이 올해 두 번째로 실시한 힐링아트테크 프로그램이다. 김 박사는 “이번 프로그램은 한 예술가의 개인 후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좀 더 의미가 크다”고 설명한다.

“‘도도새 작가’로 잘 알려진 김선우 작가가 사랑의열매를 통해 예술과 인간개발에 후원금을 기탁하고 본인이 사용하던 헤드셋도 함께 기증했다”고 말했다. 김선우 작가는 날지 못해 멸종된 도도새를 작품 속에서 나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도도새 작품 등을 통해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청년 세대에 던지고 있다.

이에 김 박사는 “디지털 격차가 우려되는 발달장애 아동·청소년이 소외되지 않게 VR 등 디지털을 활용한 힐링의 기회를 접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꿈더하기지원센터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헤드셋을 벗고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는 학생들에게 예술과 인간개발팀의 유준석 강사가 질문을 던진다.

“우주에 가보니 어땠어요? 그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느꼈나요?”

한 학생이 미소를 띤 채 답한다.

“우주도 어쩌면 우리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VR 교육을 체험한 날, 꿈더하기지원센터 학생들의 생각 주머니는 조금은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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