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가림막 디자인, 10년 만에 ‘예술 작품’ 변신

‘거리 갤러리’ 만들어가는 문화·예술 도시 중구

등록 : 2024-04-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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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순화동 6-12 공사현장 가림막 그림은 나무와 숲을 표현한 권치규 작가의 작품이다. 삭막하고 어두울 수 있는 공사 현장을 밝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다.

예술 작가 6명 작품으로 가림벽 제작

한전 기기함에 발달장애인 작품 입혀

지나가는 시민도 “마음 푸근해져 좋아”

“‘길에서 만난 갤러리’ 지속 추진할 것”

중구 퇴계로 충무로역 3번 출구 앞, 7층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현장 가림벽에는 귀여운 오리, 고양이, 토끼 등 다양한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물을 통해 행복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박소현 작가 작품으로 동물과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삶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냈다. 동화적인 분위기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다니다보면 잘 못 느껴요. 지금 보니 괜찮은 것 같아요. 다른 지자체는 대부분 이미지가 획일적인 듯한데, 많이 신경 쓴 느낌을 받아요.”

3월29일 공사현장 가림벽 옆을 지나던 송아무개(48)씨는 하루 한두 번 이곳을 지나다닌다고 했다. 송씨는 “구정 목표나 지방자치단체 홍보 슬로건보다는 아무래도 시선이 많이 간다”며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순화동 6-12에는 16층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이 있다. 이곳 가림막에는 숲과 나무를 표현한 권치규 작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권 작가는 자연이 가진 힘과 에너지를 담은 숲 이미지를 조각하고 설치회화로 표현한다. 무한한 시공을 품은 숲, 나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생명의 회복력은 인간이 꿈꾸는 가장 숭고한 이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공사현장 주변이 삭막할 수 있는데, 화려하고 밝은 색감으로 작품을 설치해 주위 환경을 좀 더 생동감 넘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중구 퇴계로 충무로역 3번 출구 앞 공사현장 가림벽 그림은 박소현 작가 작품으로 고양이와 오리 등 동물 모습에서 동화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만리동2가 손기정체육공원 테니스장에 있는 컨테이너 건물 벽에는 테니스를 치는 사람의 역동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키미작 작가 작품으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대상을 간결하게 그려 형태의 실질과 생동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면과 면의 대비, 색과 색의 대비도 두드러져 보인다. 키미작 작가는 주로 오일파스텔을 활용해 따스하고 밀도 있는 색감으로 현실과 이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중구는 가림벽 디자인을 2014년 시작해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네 차례 변신을 거듭했다. 2014년에는 가림벽 디자인 12종을 자체 제작해 사용했다. 당시는 가림벽에 불법 광고물 부착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2016년부터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다.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에 의뢰해 가림벽 디자인 20종과 가림막 디자인 6종을 만들었다. 주제도 단순한 구정 목표를 알리는 수준에서 나아가 ‘중구 명소 이야기’ ‘중구 속 다섯 가지 여행’ 등 중구 내 역사와 문화, 볼거리와 먹거리를 알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2014년에는 공사현장에 가림벽 디자인 사용을 자발적으로 유도했다면, 2016년부터는 가림벽 디자인을 적용하도록 제도화했다. 2019년에는 가림벽 디자인을 32종으로 늘렸다. 변화하는 디자인 추세에 맞춰 도시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이미지로 바꿨다. 또한 공사현장 사용자가 좀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23년에는 가림벽이 ‘디자인’에서 벗어나 ‘작품'으로 변신했다. 김경민, 권치규, 박소현, 키미작, 드로잉메리, 최은정 등 예술작가 6명이 참했다. 모두 6종의 작품을 기부했는데, 올해 40곳에 적용했다. 김경민 작가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인물을 경쾌하고 밝은 에너지를 담아 조각 작품으로 표현한다. 김 작가가 기부한 작품은 가정과 가족을 주제로 입체적인 인물을 표현해냈다. 드로잉메리 작가는 주로 즐거움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최은정 작가는 하늘을 소재로 삼아 하늘빛을 ‘희망’으로 표현했다. 박병화 중구 도시디자인과 주무관은 “중구 가림막은 작가 작품 위주로 갤러리처럼 꾸민 게 특색”이라며 “가족, 사랑, 화목, 따뜻함을 키워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중구 북창동 ‘호텔토마스명동’ 근처 도로변에 있는 한전 지상 기기함에는 발달장애인 작가들 작품이 그려져 있다.

중구는 가림막뿐만 아니라 황학동 가구거리와 북창동 음식거리 일대 한국전력 지상 기기함 54개에도 작품을 입혔다. 발달장애인 작가 5명이 네모난 철제 설치물에 불과했던 기기함을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켰다. 중구장애인복지관 소속 발달장애인 작가 송지수, 정민우, 최병철, 홍영훈, 남광식 등 5명이 재능기부했다.

중구 북창동 ‘호텔토마스명동’ 근처 도로변에는 기기함 15개가 있다. 이곳에는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그림이 기기함마다 그려져 있다. 중구가 중구장애인복지관과 힘을 합쳐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을 기부받아 만든 ‘거리 아트 갤러리'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캥거루, 독수리, 여우, 코알라 등 동물이나 꽃, 사람을 그렸는데, 볼수록 따스함이 묻어난다. 박하진 중구 도시디자인과 주무관은 “그동안 기기함에는 때도 끼고 낙서 등이 가득해 보기 흉했다”며 “기기함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 거리 아트 갤러리를 조성해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잡았다”고 설명했다.

중구는 올해 신한라이프가 기부한 1억원으로 한국전력, 중구장애인복지관 등 4개 기관이 힘을 합쳐 거리 아트 갤러리 사업을 펼친다. 이전과 달리 재능기부가 아닌 발달장애인 작가에게 작품 창작비 50만원을 지급한다. 또한 상반기에 중구민이나 중구에서 활동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 계획이다. 공공시설물, 도시 공공공간 디자인, 북창동 미디어월 영상 출품 작품 등을 공모한다. 박병화 주무관은 “중구는 앞으로 계속 ‘길에서 만나는 문화 중구 갤러리’를 위해 예술 작품을 지속적으로 가림벽 등에 활용해갈 계획”이라며 “문화예술 도시 중구를 만들어가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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