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도떼기시장의 원조, 도깨비시장의 본거지

좌판의 역사를 간직한 남대문시장의 골목길

등록 : 2016-09-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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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예전에 남대문시장에 나가면 “이럇사이마세!” 했는데, 이제는 “라이라이!” 한다. 남대문시장만이 아니라 명동이나 동대문시장에 가 봐도 같다. 세상이 그만큼 변한 것일까? 그나저나 추석 명절 전 남대문시장의 분위기가 시원찮았다. 명절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호객 행위’가 오히려 고맙다. 국내 경기는 바닥이지만 어쨌든 관광 시장으로 살아서 활발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출입문 밖은 벌써 분위기가 다르다. 나이 지긋한 중년 부인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까만 봉지에 뭔가를 싸들고 수다 판을 벌이고 있다. 5번 출구로 나오면 점포 사이 시장길에 한 줄로 선 노점들이 나름 장관을 이룬다. 먹거리에서부터 액세서리, 싼 옷가지까지.

그런데 이들은 점포들과 사이가 썩 좋은 것 같지 않다. 점포주들은 노점들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것일까? 심지어 노점들끼리도 치열하다. 노점들은 의자를 갖다놓을 수 없다. 간단한 음식을 먹더라도 서서 먹어야 한다. 각각의 파라솔이 멋진 풍광을 자아내도 그 아래 좌판은 치열하단 얘기다.

그 치열한 좌판의 이야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출발했다. 태조가 한양을 처음 건설할 때 종로의 도로변 양측에 시전을 만들었는데, 관립 상가나 다름없었다. 보통 육의전이라 했는데, 그들은 특권을 갖고 있었다. 민간인이 아무 데고 시장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가 되자 한양 도처에 이미 난전이 만개했다. 말하자면 난장(亂場)이 선 것인데, 이때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난전들은 배오개(이현, 배고개) 장을 만들어냈고 칠패장을 만들어냈다. 이것들은 각각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의 근원이 되었다. 조선 후기가 되자 한양의 종로와 남대문로에는 도로를 점령한 임시 점포들이 즐비했는데, 이들을 ‘가가(假家)’라 했다.

조선 후기 박영효는 한양의 도로정비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일본에 망명해 있던 김옥균에게 자문했다. 1882년 9월 일본으로 파견된 수신사 정사(正使, 사신 중 우두머리) 박영효는 일본에서 김옥균과 함께 치도(도로 정비)를 논의했다. 이때 김옥균이 ‘치도략론’을 작성해 주었다. 그리고 이른바 ‘가가 정리’를 하기로 했다. 그 시행은 대한제국의 이채연이 한성부판윤이 된 뒤, 한성부에 전차가 들어오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선혜정 창내장 풍경(1900년경)
조선후기 남대문로의 가가들(1880년대)


그러면서 남대문로의 가가 상인들에게 선혜청 미곡창고를 내주기로 했다. 선혜청 창내장이 된다. 도로에서 쫓겨난 가가 상인들은 아침마다 일찍 선혜청 미곡창고 앞에 모여 돗자리 하나씩을 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선혜청 창고 앞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서로 먼저 돗자리를 받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우성이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도떼기시장’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 ‘정상적 시장이 아닌 일정한 곳에서 상품, 중고품, 고물 따위가 도산매, 투매, 비밀 거래 등으로 북적거리는 시장’을 의미하는 도떼기시장의 원조는 남대문시장인 셈이다.

사람들은 남대문시장이 남대문(숭례문) 쪽 일명 도깨비시장(수입상가)에서 신세계백화점까지 모두로 알고 있는 듯하다. 보통은 남대문시장에 간다며 진짜 남대문시장이 아닌 인근 상가에 가서 장을 보고 물건을 사기 일쑤다. 그렇다면 진짜 남대문시장은 어디일까? 이제 역사의 터널 속에서 진짜 남대문시장을 찾아보자.

남대문시장 안에도 맛집 골목이 있다. 갈치조림 골목이다. 어쩌다 가끔 찾아가게 되지만 꾸준히 단골손님들이 찾아온다. 맛도 좋고 저렴하더라! 쪼끔 매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터 이처럼 인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졌으리라. 1700가지 이상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남대문시장을 물건 찾아 헤매다가 배가 좀 고플 때 이 갈치조림 골목에 들어가면 안성맞춤이다.

앞서 말한 회현역 5번 출구에서 중앙통을 따라 걷다 보면 왼쪽에서 도심 한가운데의 재래시장인 ‘본동시장’을 만날 수 있다. 본동은 원래 ‘본시장’, ‘원시장’이라고 이를 만큼 남대문시장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구역이다. 앞서 이야기한 선혜청 창내장이 바로 갈치조림 골목이 있는 이 블록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가장 큰 시장으로 군림해온 남대문시장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사치품과 밀수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 거래의 본거지가 되면서 동대문시장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이 군수품 단속 때문에 점포를 열었다가도 단속이 나오면 순식간에 잠적하니, ‘도깨비시장’이라고도 했다. 또 미제 물품을 많이 팔아서 ‘양키시장’이라고도 했다.

‘고양이 뿔 빼놓고는 다 있다’고 하니 서울 사람 아니라도 남대문시장 골목은 헤매 볼 만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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