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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봉산 북부 물푸레근린공원.
숙종 임금 등 묻힌 서오릉 근처에 있는
이말산 숲속의 궁녀들과 내시들 무덤
다과를 준비하던 정3품 ‘상다’ 김 내시
대전을 청소하던 정6품 ‘상세’ 정 내시
명부에서도 임금의 수발 들고 있을까
은평구 진관동 이말산에 내시와 궁녀의 무덤과 무덤에 쓰인 석물들이 널려 있다. 양반·중인·평민의 무덤도 함께 있으니, 이말산은 조선시대 공동묘지였던 셈이다. 이말산은 한강 이북 서울의 서쪽을 벽처럼 막고 있는 봉산, 앵봉산과 서울의 서북쪽 북한산을 잇는 산이기도 하다. 북한산둘레길 중 내시묘역길 구간이 있다. 이말산 숲에 있는 이름이 밝혀진 내시와 궁녀의 묘를 찾아보고 조선시대 내시묘역이 있었던 내시묘역길을 돌아봤다. 그 출발 지점은 한강 이북 서울의 서쪽벽, 앵봉산 북부에 있는 물푸레근린공원이었다.
앵봉산 북부 물푸레근린공원 작은 숲에서 본 가을
한강을 건넌 지맥이 난지한강공원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며 서울월드컵경기장 부근에서 매봉산을 세웠다. 그 산줄기가 수색역 주변 사람 사는 마을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드러낸 산이 봉산이다. 봉산 줄기는 북쪽으로 내달려 앵봉산과 이어진다. 이 두 산줄기가 한강 이북 서울의 서쪽에서 벽처럼 솟았다. 앵봉산 서쪽은 경기도 땅으로, 조선시대 숙종 임금,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등이 묻힌 조선시대 왕실묘역인 서오릉이다. 궁궐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묻힌 곳 부근 이말산에 그들의 생활을 돕고 수발을 들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혀 있는 것이다. 앵봉산 북부 물푸레근린공원을 지난 지맥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파발천을 지나 이말산을 세우고, 이말산의 지맥은 진관천을 지나 서울의 서북쪽을 지키는 북한산과 만나게 된다. 물푸레근린공원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서쪽에 있는 작은 숲이다. 은평통일로스포츠센터 간판이 걸린 건물 옆에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계단 위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숲을 지키는 장승 같다. 계단을 올라 숲길을 걷는다. 숲길 오른쪽으로 시야가 조금 열린다. 숲 밖은 빌딩숲이다. 이내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온다. 멀리 숲을 배경으로 커다란 나무 세 그루가 정자를 품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넓고 높은 파란 하늘은 미세먼지 없던 어린 시절 눈만 뜨면 볼 수 있었던 가을 하늘의 전형이다. 하얀 구름 떠 있어 더 파란 하늘 한쪽을 비천의 바람을 닮은 구름이 장식했다. 초록의 숲도 맑아 보이게 하는 하늘이니, 그 덕에 도시의 빌딩숲도 싱그럽다. 데크길을 따라가다 숲에서 내려선다. 잠시 도로에 끊긴 숲은 다시 이어진다. 습지원이 100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른다. 조금 전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보았던 커다란 나무와 정자가 있는 풍경 속으로 걷는다. 고즈넉한 가을을 그 숲에서 만났다. 돌아 나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 아래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가을이 가을로 가고 있었다. 이말산, 내시와 궁녀의 숲을 돌아보다 구파발역 2번 출구 주변에 이말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계단으로 올라서면서부터 숲은 초록의 장막을 펼친다. 산이 낮아 산책하듯 걷는다. 오후의 산길을 교복 입은 학생들이 걷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걸어 다녔다는 듯 익숙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책을 품고 사부작사부작 걸어온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십수 명의 남학생은 장난을 치며 앞서고 뒤쫓는다. 아파트 단지가 산을 에워싸고 있고 산 둘레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여러 개다. 이말산 숲길이 그 학생들의 익숙한 하굣길인 것 같았다. 숲에서 만난 학생들은 더 싱그러웠다.
한강을 건넌 지맥이 난지한강공원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지며 서울월드컵경기장 부근에서 매봉산을 세웠다. 그 산줄기가 수색역 주변 사람 사는 마을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드러낸 산이 봉산이다. 봉산 줄기는 북쪽으로 내달려 앵봉산과 이어진다. 이 두 산줄기가 한강 이북 서울의 서쪽에서 벽처럼 솟았다. 앵봉산 서쪽은 경기도 땅으로, 조선시대 숙종 임금,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 등이 묻힌 조선시대 왕실묘역인 서오릉이다. 궁궐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묻힌 곳 부근 이말산에 그들의 생활을 돕고 수발을 들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혀 있는 것이다. 앵봉산 북부 물푸레근린공원을 지난 지맥이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파발천을 지나 이말산을 세우고, 이말산의 지맥은 진관천을 지나 서울의 서북쪽을 지키는 북한산과 만나게 된다. 물푸레근린공원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서쪽에 있는 작은 숲이다. 은평통일로스포츠센터 간판이 걸린 건물 옆에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계단 위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숲을 지키는 장승 같다. 계단을 올라 숲길을 걷는다. 숲길 오른쪽으로 시야가 조금 열린다. 숲 밖은 빌딩숲이다. 이내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온다. 멀리 숲을 배경으로 커다란 나무 세 그루가 정자를 품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넓고 높은 파란 하늘은 미세먼지 없던 어린 시절 눈만 뜨면 볼 수 있었던 가을 하늘의 전형이다. 하얀 구름 떠 있어 더 파란 하늘 한쪽을 비천의 바람을 닮은 구름이 장식했다. 초록의 숲도 맑아 보이게 하는 하늘이니, 그 덕에 도시의 빌딩숲도 싱그럽다. 데크길을 따라가다 숲에서 내려선다. 잠시 도로에 끊긴 숲은 다시 이어진다. 습지원이 100m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른다. 조금 전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보았던 커다란 나무와 정자가 있는 풍경 속으로 걷는다. 고즈넉한 가을을 그 숲에서 만났다. 돌아 나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 아래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가을이 가을로 가고 있었다. 이말산, 내시와 궁녀의 숲을 돌아보다 구파발역 2번 출구 주변에 이말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계단으로 올라서면서부터 숲은 초록의 장막을 펼친다. 산이 낮아 산책하듯 걷는다. 오후의 산길을 교복 입은 학생들이 걷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걸어 다녔다는 듯 익숙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또 한 무리의 학생들이 책을 품고 사부작사부작 걸어온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십수 명의 남학생은 장난을 치며 앞서고 뒤쫓는다. 아파트 단지가 산을 에워싸고 있고 산 둘레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여러 개다. 이말산 숲길이 그 학생들의 익숙한 하굣길인 것 같았다. 숲에서 만난 학생들은 더 싱그러웠다.
이말산에 있는 내시 김경량 묘표. 진짜 묘표를 도난당해 진짜와 똑같이 만들어 묘역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웠다.
학생들이 지나간 뒤 내시와 궁녀의 무덤을 찾을 생각을 하고 등산로와 숲을 헤맸다. 하지만 이말산은 처음이었고 미리 조사한 정보는 무덤을 찾아가는 이정표도 없는 숲에서 전혀 쓸모없었다.
다음날 은평향토사학회 박상진 회장과 함께 이말산을 찾았다. 구파발역에서 멀지 않은 이말산 남서쪽 금성당에서 산을 오르기로 했다. 금성당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전남 나주 금성산의 금성대왕과 조선시대 세종 임금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여타의 신을 모신 신당이다. 금성당 뒤 산길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초입부터 우거졌다. 수풀을 헤치고 가로막은 나뭇가지를 피해가며 어느 정도 산에 올라가니 좁은 오솔길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내시부 상다 김경량 묘역이었다. 김경량은 임금에게 다과를 준비하던 정3품 ‘상다’라는 관직의 내시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김경량이 곤장을 맞은 기록이 나온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상세 정여손 묘역도 있다. 정6품 ‘상세’는 대전의 청소를 맡았던 관직이란다.
광해군 때 세운 비석에 나오는 ‘용궁전씨합장’이라는 내용은 내시도 결혼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한다. 숲에서 찾은 세 번째 무덤의 주인은 상궁 임실 이씨였다. 비문과 기록은 없으나 상석에 상궁임실이씨지묘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름이 밝혀진 내시와 상궁의 무덤을 돌아보고 숲속 오솔길을 어지간히 올라와서 주 등산로를 만났다. 은평둘레길 중 이말산묘역길을 만난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등산로 주변 숲에도 이름 모를 옛사람들의 무덤과 석물이 여기저기 보인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아버지 최효원 묘역 부근에 조선시대 중인과 평민 등이 일구어낸 문학인 ‘여항문학’의 중심에 있었던 시인 홍우택과 홍우필의 무덤이 있다. 박상진 회장은 그 둘은 형제였으며 여항문학가 중 손꼽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시골 고향 같은 시냇물 풍경 속을 지나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을 걷다
조선시대에 내시부에서 임금의 뜻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을 지냈던 종2품 상선 노윤천 묘역을 마지막으로 이말산을 내려오는 길에도 무덤과 석물은 오솔길 주변과 숲 곳곳에 있었다. 멀리서 이말산묘역길을 걸으러 찾아왔다는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맨몸에 평상복 차림으로 숲길을 걷는 산 아랫마을 사람들도 숲속 이곳저곳에 있는 석물을 보면서도 무심히 지난다. 이말산은 그렇게 산을 찾은 사람들이 쉬고 걷는 일상의 공간이며 밝혀지지 않은 내시와 궁녀,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묻혀 있는 숲이다.
이말산 숲에서 나오니 하나고등학교 옆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은평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연서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삼천리골입구교차로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진관천이 보이는 다리를 지나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구간 북쪽 끝 방향으로 걸었다.
시냇물이 맑다. 물가 둔치에 풀이 아무렇게나 자라고 돌밭도 어우러졌다. 물가의 버드나무는 데크길보다 높게 자랐다. 산기슭 숲은 데크길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길을 걷는 내내 시골 고향 마을 냇가가 생각났다. 하늘은 어릴 때 그 하늘처럼 공활했다.
진관천 데크길을 걷다보면 시냇물 흐르는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다.
풍경에 취해 걷다가 산성정계라고 새겨진 바위를 만났다. 북한산성의 경계를 밝히는 글씨였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설명에 따르면 북한산성 서쪽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산성에서 5리까지 경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 개간한 땅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하라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나온다고 한다.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백화사 뒤 숲에 조선시대 내시들의 묘가 있었다.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내시묘역길이 시작된다. 백화사 쪽으로 걷는다. 그 길 어디쯤 여기소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숙종 임금 시절 북한산성을 쌓을 때 연분을 맺은 관리와 기생의 설화가 남아 있는 연못이었다는 설과, 북한산성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들이 묵고 먹을 임시 거처가 마련된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서 이루어진 사랑 이야기의 배경무대가 하나의 연못이 아니라 그 마을 전체를 이른다는 설도 있다.
백화사 바로 전에 만난 20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이 다른 세상의 경계를 말해주듯 서 있다. 백화사 뒤 숲에 조선시대 내시 무덤 수십 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무덤은 다 사라졌고 무덤이 있던 숲은 사유지라 들어갈 수 없다. 다만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이라는 이름에서 그 흔적을 찾을 뿐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