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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거실 입구에 놓아두었던 건빵 봉지를 살펴보았다. 유통기한을 보니 2016년 4월14일로 내용물은 아직 멀쩡해 보인다. 그렇다고 유통기한으로부터 5개월이나 지난 것을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참깨가 송송 들어가 맛있게 보이는 건빵을 버리는 것도 왠지 아깝다. 그것도 네 봉지씩이나.
우리 집 거실 입구에는 지진을 대비한 비상용품이 상시 비치되어 있다. 비상식량으로 식구 수대로의 건빵과 2ℓ 페트병 물, 그리고 소독약 등 약간의 구급약이 놓여 있다. 사실 2011년 3월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직후에는 커다란 배낭 속에 건빵과 물뿐만 아니라 전기가 끊어졌을 때를 대비한 손전등, 초, 라디오, 수건, 휴지, 장갑, 피난지도 등 심지어 임시로 누울 수 있는 돗자리까지 꾸역꾸역 밀어넣고 작년까지 현관 앞에 고이 놓아두었다.
그런데 한 3년이 지나고 나니 비상시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바꿔놓던 물이 중단되고, 건빵이 떨어지면 긴요한 식량이 될 거라면서 열심히 미숫가루를 갈던 일도 어느새 그만두고 말았다. 아마도 지난 9월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 소식이 아니었으면 비상용품 점검도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만약 지진이 일어났을 때, 피난소로 가기 전에 집 안에서 어떻게 피신해야 할까. 우선 20년 이상 일본에서 산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라면, 지진이 나면 화재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가스를 가장 먼저 끄고, 유리 창가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다. 유리창이 깨져 파편에 다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물건이 쉽게 떨어진다거나 가구가 쓰러질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할 것. 그래도 불안하면 일본인들이 흔히 강조하는 직사각형 구조의 화장실로 피한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면 간단한 비상용품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 동네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으로 피신한다.
하지만 그때의 지진을 생각하면 몹시 씁쓸한 기억도 있다. 그 지역만큼이나 한국인이 몰려 살고 있는 도쿄의 신주쿠 한인타운도 그곳 못지않게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처럼 강한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한인들, 특히 한인타운에서 식당이나 기타 영업을 하고 있었던 일부 한인들이 혼비백산이 되어서는 영업 매장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중요한 소지품만 챙겨서는 이내 공항으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덕분에 하네다, 나리타 공항의 한국행 항공사 카운터에는 비행기 표를 사려는 한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 3만~4만엔 하던 왕복표가 편도만으로 25만~26만 엔을 훌쩍 뛰어넘었고, 그마저도 항공사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공항 대합실에 쪼그리고 앉아 날밤을 새우면서 좌석이 나기를 기다렸다. 문제는 그들이 떠난 뒤 남긴 흔적이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가게 곳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진열품이나 도구들, 손님들이 먹다 남은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채 떠나버려 꼭 전쟁터의 폐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일본인 가게들의 차가운 시선들. 게다가 두 번 다시 일본 땅을 밟지 않을 것처럼 인사 한마디 없이 가게들을 내팽개치고 황망하게 떠났던 한국인들이, 대부분 일본이 안정되자마자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으면 가게 정리라도 깨끗하게 해놓고 가던지. 그런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이번 경주 지진 뉴스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비아냥인지 걱정인지 모를 한마디를 던졌다. “일본은 지진 대국이니 그렇다 치고, 그런데 안전지대라고 믿어왔던 한국마저 지진이 났으니 이제 한국인들은 어디로 도망가나요?” 글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하지만 그때의 지진을 생각하면 몹시 씁쓸한 기억도 있다. 그 지역만큼이나 한국인이 몰려 살고 있는 도쿄의 신주쿠 한인타운도 그곳 못지않게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처럼 강한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한인들, 특히 한인타운에서 식당이나 기타 영업을 하고 있었던 일부 한인들이 혼비백산이 되어서는 영업 매장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중요한 소지품만 챙겨서는 이내 공항으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덕분에 하네다, 나리타 공항의 한국행 항공사 카운터에는 비행기 표를 사려는 한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 3만~4만엔 하던 왕복표가 편도만으로 25만~26만 엔을 훌쩍 뛰어넘었고, 그마저도 항공사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공항 대합실에 쪼그리고 앉아 날밤을 새우면서 좌석이 나기를 기다렸다. 문제는 그들이 떠난 뒤 남긴 흔적이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가게 곳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진열품이나 도구들, 손님들이 먹다 남은 테이블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채 떠나버려 꼭 전쟁터의 폐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일본인 가게들의 차가운 시선들. 게다가 두 번 다시 일본 땅을 밟지 않을 것처럼 인사 한마디 없이 가게들을 내팽개치고 황망하게 떠났던 한국인들이, 대부분 일본이 안정되자마자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때의 민망함이란!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으면 가게 정리라도 깨끗하게 해놓고 가던지. 그런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이번 경주 지진 뉴스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비아냥인지 걱정인지 모를 한마디를 던졌다. “일본은 지진 대국이니 그렇다 치고, 그런데 안전지대라고 믿어왔던 한국마저 지진이 났으니 이제 한국인들은 어디로 도망가나요?” 글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