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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리버시티공원 단풍.
가을 깊으면, 사람들 마음도 붉어진다
숲속에 든 이들의 이야기도 ‘울긋불긋’
웃음 띤 얼굴들 모두 단풍처럼 참 곱다
황홀한 그 산책길로 가을 떠나 보낸다
우듬지를 올려다보면 단풍은 하늘로 타오르고 숲을 굽어보면 단풍이 사람 사는 마을로 번진다. 사람들 마음에도 단풍 물들 때 산하는 계절의 경계에 선다.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 마음이 분주하다. 늦가을 숲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김장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울긋불긋 물든 숲처럼 수런댄다. 옛 시인이 걸었던 숲길에도 단풍이 깊다. 늦가을 수락산 숲길을 소풍처럼 걸었다.
꼬리명주나비 서식지 부근 중랑천.
은모래 반짝이는 냇물 건너 단풍숲으로 들어가다
수락산과 도봉산 사이에 있는 서울창포원은 걷기여행의 출발 장소로 제격이다. 지하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이 바로 옆에 있고 창포원 숲이 내려다보이는 카페가 있어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숲의 풍경과 함께 차 한잔 마시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에 좋고,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창포원 작은 숲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꽃피운 억새가 아직도 푸른 능수버들과 빨간 단풍나무와 어울려 바람에 한들거린다. 그 숲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숲으로 들어가 서성거렸다. 지난번에도 그러다가 북한산둘레길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서울둘레길 수락산 구간을 걸을 셈이었다.
서울창포원 동남쪽 출입구를 지나 마들로를 따라 걸었다. 단풍물이 짙게 든 가로수와 중랑천 풍경 덕에 질주하는 차 소리도 괘념치 않았다.
그곳의 중랑천은 시골 냇물 같았다. 둔치의 풀밭과 물가의 백사장을 보며 걸었다. 4월부터 10월 말까지 꼬리명주나비를 볼 수 있다는 꼬리명주나비 서식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나비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냇가 풀밭에서는 여러 생명이 엉켜 자라고 있었다. 중랑천에 놓인 상도교를 건너다 걸음을 멈췄다. 은모래 반짝이는 물가에서 다리 긴 새 한마리가 꼼짝 않고 서서 흐르는 물을 본다. 반짝이는 건 여울도 마찬가지여서 눈부시다.
다리 끝 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수락리버시티공원 쪽으로 걸었다. 이정표에 적힌 ‘서울둘레길(당고개공원 갈림길)’ 쪽으로만 걸으면 된다.
물이 마른 물길 양쪽으로 단풍 든 나무들이 줄지어 섰다. 유난히 눈에 띄는 몇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는 곳은 쉼터다.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할머니와 그 옆을 지키며 나란히 걷는 아주머니도 그 쉼터에서 멈추어 쉰다. 그늘을 만드는 지붕 아래 의자에 앉지 않고 단풍 물든 나무 옆 양지바른 곳에 서서 단풍을 본다.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단풍도 참 곱다.
길은 수락산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육교를 건너 수락산 기슭으로 다가간다. 경기도 의정부시와 서울시 노원구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수락산 숲으로 들어가는 곳에 의정부 소풍길 안내판도 보인다. 수락산 숲길은 그 초입부터 느낌이 좋다.
노원골 유아숲 체험원. 숲 한쪽에 있는 탁자 위에 작은 거울이 여러 개 놓였다. 거울마다 다 다른 풍경이 담겼다. 숲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
두 개의 골짜기를 지나다
잎 넓은 나뭇잎이 만든 그늘을 지나 데크로 만든 계단을 오른다. 나무를 엮어 만든 난간에 이끼가 푸르다. 낙엽 수북하게 쌓인 오솔길을 걷는다. 낙엽 밟는 소리가 오롯하게 들린다. 오가는 이 하나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숲은 온갖 생명으로 가득한데, 마음으로 보는 숲은 텅 비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가득하다.
수락산(水落山)은 이름처럼 크고 작은 계곡이 많다. 오르내리는 산길 곳곳에 작은 물줄기가 흐른다. 낙엽 쌓인 웅덩이에 숲 그림자가 비친다. 웅덩이 건너편 언덕 위에 나무들이 병풍을 쳤다. 단풍의 장막이다.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단풍숲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갈잎은 낙엽이 되어 숲길을 물들였다. 가지에 남은 단풍잎은 그곳에서 빛난다.
기와 얹은 흙돌담과 작은 나무다리가 숲 사이로 보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숲에 섞였다. 낮은 지붕 옆 은행나무, 산기슭 단풍나무, 잎 넓은 나무들, 나무에 엉켜 자라는 넝쿨도 단풍 물들지 않은 게 없다. 그 숲의 텃밭 배추도 풍경에 한몫한다. 늦가을 수락골 풍경이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걷는다.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숲길 입구에 수락벽운계곡길 안내판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을 벽운동천이라고도 부른다. 수락산 벽운계곡을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골짜기를 하나 지났을 뿐인데, 숲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숲이 더 울창하고 단풍색이 더 맑으면서 짙다. 숲의 양명한 기운이 몸으로 스민다. 단풍숲에 걸러진 햇볕이 고운 가루가 되어 숲 바닥부터 쌓이는 것 같다. 그 숲에서 길을 잃은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아마도 그 단풍숲에 취해 마음 가는 대로 걷다 길을 잃은 모양이다. 그분들을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모셔드리고 다시 가던 길로 돌아와 걸었다.
거미줄에 걸린 낙엽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잎이 떨어져 공중에서 나부끼는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인다. 얼마 가지 않아 전망대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났다. 숲 밖으로 머리를 내민 전망대에서 도봉산과 북한산 자락을 한눈에 넣고 다시 돌아와 가던 길로 걸었다. 길은 노원골에 닿았다. 흘러와 고이고 다시 흐르는 계곡물에 낙엽이 쌓였다. 낙엽이 없는 물 위에 단풍숲이 비친다. 돌다리를 건너 다시 숲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천상병 시인이 살았던 마을이다.
수락산 옛 채석장 터에서 본 풍경. 시야가 넓게 펼쳐졌다.
옛 채석장 터에서 늦가을 산하를 굽어보다
천상병 시인은 이 마을에서 수락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수락산변’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무슨 행렬인가 푸른 나무 밑으로/ 하늘의 구름과 질서 있게 호응한다.// 일요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기후는 안성마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하늘에는 송이구름’ -시인 천상병 공원 시비에 새겨진 ‘수락산변’
노원골 계곡과 숲에 천상병 시인의 시비와 시를 새긴 나무판이 있다. 노원골 골짜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인 천상병 공원’도 있다. 아이들과 어울려 활짝 웃는 시인의 상이 천진난만하다.
천상병 시인을 생각하며 노원골 계곡 돌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노원골 유아숲 체험원 단풍숲 한쪽에 있는 탁자 위에 작은 거울이 여러 개 놓였다. 거울마다 담긴 풍경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한 얼굴에서도 여러 표정이 나오듯, 거울에 담긴 숲의 표정이 다 달랐다. 숲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키 큰 나무가 높은 곳에서 숲의 천장을 이루고 그 아래 키 작은 단풍나무가 가지를 퍼뜨렸다. 그 숲의 모든 나무에 단풍이 물들었다. 오후의 햇볕이 숲 밖에서 숲을 감싸듯 비추면 숲 안은 온통 빛난다. 황홀한 숲이다. 사람들은 그 숲에 앉아 떠날 줄 모른다. 그렇게 숲을 마음껏 즐기고 마음이 시키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다시 걷는다.
또다시 작은 계곡과 숲속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이 반복된다. 좁은 계곡 젖은 바위 위에 떨어진 낙엽도 젖었다. 젖은 바위의 물기가 낙엽을 적시고 낙엽 끝에 모여 ‘쪼르륵’ 계곡으로 떨어지는 풍경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물방울 떨구는 낙엽에 눈을 맞추었다. 그런 모습을 높게 자란 단풍 물든 나무들이 모여 보살펴 보고 있었다. 쪼그렸던 몸을 펴고 일어나 두 팔 벌려 한껏 기지개를 켰다.
수락산 숲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옛이야기 속 거인의 발자국이 찍힌 바위라고 전해지는 ‘거인 발자국 바위’를 지나 전망대에 도착했다. 지나온 수락산 숲과 불암산이 품고 있는 노원구 일대부터 멀리 관악산까지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면 1970년대까지 돌을 캤던 채석장 터가 나온다. 지나온 전망대보다 이곳에서 보는 전망이 더 통쾌하다. 바위 절벽 아래 숲이 울긋불긋 물들고 숲이 끝나는 곳에서 도시가 시작된다. 도시의 건물 사이 곳곳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신선하다. 불암산 위로 낮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