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성당 앞. 최상천씨 부부 제공
홍보담당 맡아 밤새우며 자료 만들다
조기 은퇴 결심하자 교사인 부인 ‘동의’
진급시험 대신 조기 명퇴자 연수받고
자전거 출근 등 씀씀이 줄여 ‘자금 준비’
은퇴 뒤 캠핑카 사 전국 돌며 여행한 뒤 올해 4월부터 유럽 등 해외여행 시작
생활비 200만원에도 마음만은 ‘여유’ “옆으로 난 길의 기쁨, 필수품은 용기뿐" 여기 3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는 부부가 있다. 아내 최성희(50)씨는 은퇴 전 기간제교사로 일했고 남편 최상천(53)씨는 소방공무원이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3년이나 여행하고 있을까 싶지만, 이 부부는 절약형 여행가일 뿐이다. 이런 삶을 먼저 생각한 건 최상천씨다. 그는 어떤 계기로 조기 은퇴를 꿈꾸게 되었을까? 2012년쯤, 그는 소방서에서 행사가 열리면 그것을 홍보하는 일을 담당했다. 행사를 위해 시나리오를 다듬고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고 영상물을 체크했다. 심한 날은 영상편집도 해야 했다. “일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환하게 밝아요. 학생 때도 안 했던 날밤을 새운 거죠.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빨리 은퇴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의 이런 생각에 아내도 동의해주었다. 2016년 아내가 먼저 은퇴했고 남편은 본격적으로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동료들이 진급시험 준비할 때 그는 공무원연금공단의 조기 명퇴자 연수를 받았다. 자금 준비는 씀씀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텃밭 채소로 식비를 줄였다. 선풍기 없이 여름을 났고 살 게 있으면 ‘아름다운가게’에 갔다. 2019년 남편도 은퇴했다. 부부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퇴직금을 포함해 은퇴자금 3억원을 모았다. 가장 먼저 국내 최고 수준의 캠핑카를 샀다. 그리고 5월부터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았는데 그중 가장 좋은 곳은 단연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든 살아 있는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 생활비는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2021년 6월 어느 날,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데 뒤따르던 화물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게 보였다.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결국 트럭은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캠핑카는 찌그러졌지만, 다행히 남편은 멀쩡했다. 그런데 아내의 몸이 약간 불편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물리치료사로도 일했던 아내는 자기 몸을 찬찬히 살펴보고 치료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받기 위해 애써야 할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까지 아내는 자기 몸에 이상이 없어 그때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캠핑카가 문제였다. 차 안의 가구와 장비가 다 망가져 다시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설치에 드는 고가의 비용 때문에 결국 차를 보험사에 넘기고 중고차 보상금을 받았다. 부부는 안 다친 것을 위안으로 삼고 세계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은퇴 뒤 캠핑카 사 전국 돌며 여행한 뒤 올해 4월부터 유럽 등 해외여행 시작
생활비 200만원에도 마음만은 ‘여유’ “옆으로 난 길의 기쁨, 필수품은 용기뿐" 여기 3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는 부부가 있다. 아내 최성희(50)씨는 은퇴 전 기간제교사로 일했고 남편 최상천(53)씨는 소방공무원이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3년이나 여행하고 있을까 싶지만, 이 부부는 절약형 여행가일 뿐이다. 이런 삶을 먼저 생각한 건 최상천씨다. 그는 어떤 계기로 조기 은퇴를 꿈꾸게 되었을까? 2012년쯤, 그는 소방서에서 행사가 열리면 그것을 홍보하는 일을 담당했다. 행사를 위해 시나리오를 다듬고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고 영상물을 체크했다. 심한 날은 영상편집도 해야 했다. “일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환하게 밝아요. 학생 때도 안 했던 날밤을 새운 거죠. 아무리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빨리 은퇴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의 이런 생각에 아내도 동의해주었다. 2016년 아내가 먼저 은퇴했고 남편은 본격적으로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동료들이 진급시험 준비할 때 그는 공무원연금공단의 조기 명퇴자 연수를 받았다. 자금 준비는 씀씀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텃밭 채소로 식비를 줄였다. 선풍기 없이 여름을 났고 살 게 있으면 ‘아름다운가게’에 갔다. 2019년 남편도 은퇴했다. 부부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퇴직금을 포함해 은퇴자금 3억원을 모았다. 가장 먼저 국내 최고 수준의 캠핑카를 샀다. 그리고 5월부터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았는데 그중 가장 좋은 곳은 단연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어디를 가든 살아 있는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 생활비는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2021년 6월 어느 날,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는데 뒤따르던 화물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게 보였다.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결국 트럭은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캠핑카는 찌그러졌지만, 다행히 남편은 멀쩡했다. 그런데 아내의 몸이 약간 불편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물리치료사로도 일했던 아내는 자기 몸을 찬찬히 살펴보고 치료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받기 위해 애써야 할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까지 아내는 자기 몸에 이상이 없어 그때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캠핑카가 문제였다. 차 안의 가구와 장비가 다 망가져 다시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설치에 드는 고가의 비용 때문에 결국 차를 보험사에 넘기고 중고차 보상금을 받았다. 부부는 안 다친 것을 위안으로 삼고 세계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터키 에페소 유적지 길고양이. 강정민 작가
2022년 4월, 부부는 튀르키예(터키)행 비행기를 탔다. 이날부터 지금까지 매달 200만원을 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00만원은 숙박비로, 100만원은 식비와 교통비로 사용한다. 물론 비행기 삯 포함이다. 여행자보험은 연 70만원이 넘어 따로 들지는 않았다. 대신 일이 생기면 곧장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첫 항공료는 1인 24만원이었다. 튀르키예는 해산물을 제외한 먹을거리가 쌌다. 그런 영향 덕인지 튀르키예 길고양이는 한국과 달랐다. 길고양이들은 털이 풍성했고 행동이 느긋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고양이에게도 넉넉한 사랑을 나눠주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부의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부부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안탈리아 근처 시골 마을에서 한 달 쓸 방을 60만원에 구했다. 방 하나를 쓰고 주방과 거실은 같이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이렇듯 한 달 쓸 숙소를 구하면 숙박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부부는 아침과 점심만 먹었다. 외식은 멀리하고 고추장, 간장을 사서 숙소에서 밥을 해 먹었다. 저녁을 안 먹으니 소화가 더 잘되고 식비도 자연 줄었다.
터키 안탈리아 근처 시골 마을 숙소. 최상천씨 부부 제공
그다음에 간 나라는 독일이다. 왜 하필 독일일까? 마침 독일행 티켓이 싸게 나왔기 때문이다. 아내는 세계 여러 도시 중 독일 북부도시 킬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킬은 발트해 연안에 있어 멋진 바다를 볼 수 있고 훈제 고등어가 저렴하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역시 발트해 연안에 있는 뤼베크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선 온종일 산책해도 호수와 숲을 끝없이 볼 수 있었다. 부부는 이탈리아로 내려왔다.
이탈리아에서 밀라노, 로마, 나폴리에 갔다. 남편은 아름다운 유적을 보기 위해서 딱 한 번은 이탈리아에 가볼 만하다고 평했다. 아내는 1년 정도 기간을 잡고 이탈리아를 충분히 여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부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튀니지 수도 튀니스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경기장 앞. 최상천씨 부부 제공
부부가 튀니스에 입국하자마자 출입국 경찰이 부부를 잡았다. 부부는 배를 10시간이나 탄 탓에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출국할 교통편을 예약하지 않아서 부부를 여행객이 아닌 장기체류자로 경찰이 생각한 거 같았다. 부부는 해명하려 했지만, 튀니스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번역기도 도움이 안 됐다. 결국 30분 동안 억류된 뒤 풀려났다. 유럽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며 아내는 왜 이런 고생을 하나 불안이 올라왔다.
그런데 아내가 천천히 생각해보니 유럽은 유럽연합(EU)으로 묶여 있어 입국심사가 까다롭지 않았던 거고 튀니지는 유럽연합이 아니어서 경찰이 입국심사를 제대로 했던 것뿐이었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 남쪽 해안도시 수스의 4성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는 부부. 1박 3식과 술 제공에 7만원이다. 최상천씨 부부 제공
그날 부부는 1만5천원짜리 호텔 방에 짐을 풀었다며 보이스톡이 가능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내가 물었다.
“방값이 왜 이리 싸요?” “화장실이 공용이에요.”
그럼 그렇지, 절약형 세계여행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다. 은퇴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지 물었다. 남편이 답했다.
“보통 (직장인은) 아침에 마음 편히 똥도 눌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소방관은 누구나 똥을 누다 말고 출동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호출받으면 대충 정리하고 출동해야 해요. 은퇴하니 마음 편히 똥 누는 거, 그게 제일 좋아요.”
삶의 속도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은퇴 뒤 가장 큰 행복인 듯싶었다. 부부는 자신들처럼 조기 은퇴와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세계여행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준비하세요.”
이탈리아 로마 진실의 입. 최상천씨 부부 제공
부부는 그저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옆으로 난 길을 보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세계여행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부부처럼 용기를 좀 더 낸다면 말이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