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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정상 암자로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칠성신 모시던 관악산 계곡 붉어지면
늘푸른나무, 초록빛은 더욱 빛나지만
단풍 물든 낙엽들이 돌탑 위에 쌓일 때
화려한 계곡 야위어, 고목들 살아난다
신림(新林), 우거진 숲.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유래다. 예로부터 숲이 울창해서 신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신림은 관악산의 숲이다. 옛사람들은 신림의 우거진 숲을 신성한 숲으로 여겼다. 신림의 품에 안긴 지금의 서울대 터를 옛날에는 자하골이라 했다. 자하란 신선이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서울대 남쪽 관악산 계곡을 옛날에는 칠성당계곡이라 불렀다. 칠성당은 칠성신을 모시는 당집이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과 자연의 비를 관장한다고 알려진 신이다. 관악산 북쪽 기슭에는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낙성대가 있어 강감찬 장군의 탄생 설화를 낳았고, 신림동 북서쪽에는 아름다운 별이라는 미성동이 있어 신성한 숲의 이야기를 북돋워준다.
계절이 바뀌는 신성한 숲, 관악산 신림계곡과 칠성당계곡을 입동과 소설 사이에 세 번 걸었다. 세 번째 발걸음은 신림의 꼭대기, 관악산 정상까지 닿았다.
계절이 바뀌는 신성한 숲, 관악산 신림계곡과 칠성당계곡을 입동과 소설 사이에 세 번 걸었다. 세 번째 발걸음은 신림의 꼭대기, 관악산 정상까지 닿았다.
삼막사 쪽으로 가는 계곡 숲길 초입 단풍나무. 촬영 포인트다.
단풍숲과 낙엽길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공원 현판을 단기와 얹은 커다란 문을 지나 넓은 포장도로를 걷는다. 화장실 앞 공작단풍마저 단풍이 절정이니, 신림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 하늘을 가린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붉다.
관악산공원으로 들어섰다. 온통 붉은 숲, 흙길을 밟으며 걷는다. 아이들 놀이터인 관악산 모험숲, 여름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관악산 계곡 캠핑숲도 단풍으로 물들었다. 단풍 사이에서 늘푸른나무의 초록빛이 생동한다. 캠핑 데크, 쉼터 의자, 그루터기 위에도 단풍 물든 잎이 떨어졌다. 숲도 길도 계곡도 다 단풍이다.
이정표에 새겨진 이름, 신림계곡 쪽으로 내려섰다. 자연의 계곡에 인공의 손길을 더해 계곡을 꾸몄다. 여울도 살려 계곡 물소리가 낭랑하다. 파문 없는 물 위에 단풍 물든 신림, 신성한 숲이 비친다. 가을이 물속에서도 피어나는 것 같았다.
‘제1광장·삼성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성주암 쪽으로 걸었다. 관악산 치유의 숲길로 들어섰다. 숲속밭에 배추가 자란다. 김장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큰 집안일이었다. 김장 걱정에 단풍도 스산하다시던 옛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며 관악산 치유의 숲길로 들어갔다. 안내판에 적힌 준비쉼터에서 명상쉼터 쪽으로 걸었다. 이 숲은 단풍이 요란하지 않고 은은하다. 숲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명상쉼터를 지나 전망쉼터 쪽으로 걷다가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맷돌체조장 숲이다. 숲속 정자는 사람들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다.
제2광장 부근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계곡 옆 숲길이다. 계곡 숲길은 초입부터 절정의 단풍으로 가득했다. 노랗고 붉은 단풍잎과 소나무 푸른 잎이 계곡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누군가의 소원이 담긴 돌탑이 계곡 바닥에 가득했다. 오리 두 마리가 노는 웅덩이에도, 숲길에도, 어느 해인가 큰물이 휩쓸고 지나간 상처 남은 계곡에도, 데크계단 위에도 다 단풍이다. 머리 위에선 단풍잎이 반짝이고, 길 위에선 단풍 낙엽이 빛난다. 그런 길을 걸어 삼거리 쉼터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깊은 가을은 더 깊은 숲속으로 이어졌다. 그쪽으로 걸으면 거북바위가 나오고 삼막사에 이르게 된다. 늦가을 숲, 일찍 닥친 어스름에 삼거리 쉼터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관악산 신림계곡 단풍. 단풍잎이 끝부터 타들어간다.
가을에서 겨울로, 신림계곡과 칠성당계곡
다시 관악산공원을 찾은 날은 단풍이 끝물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숲은 어수선했다. 이번에는 제1광장·삼성산 쪽이 아니라 관악산계곡나들길 이정표를 따랐다. 관악산 호수공원을 지나 신림계곡 상류를 향해 걸었다. 계곡으로 머리를 내민 단풍잎들은 끝부터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늦단풍이 절정인 나무도 있었지만 그 화려함 뒤에 계곡은 야위었다.
시골 깊은 산골짜기에 갖다놓으면 제법 그럴싸하게 보일 풍경들을 간혹 만났지만, 서울이라는 선입견에 그 계곡미가 반감되는 느낌이다. 서울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바꿔 생각하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낙엽 쌓인 길을 걸었다. 고사한 그 모습 그대로 엮어 만든 나무 울타리에 이끼가 꼈다. 관악산 북쪽 계곡은 음습했다. 숲으로 드는 늦가을 햇볕은 연하기만 했다.
깊은 숲으로 들어갈수록 계곡은 좁아지고 물은 줄었지만 물 흐르는 소리는 여전히 숲을 울린다. 더는 오염원 없는 계곡물은 초록으로 맑다. 수직절벽 아래로 그 물이 흐른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이자 관악산 회양목자생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면서 신림계곡은 끝나고 칠성당계곡이 시작된다. 신림계곡 상류가 칠성당계곡이다. 서울대 남쪽 관악산 숲 계곡을 옛날에는 칠성당계곡이라 불렀다. 칠성당은 칠성신을 모시는 당집이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과 자연의 비를 관장한다고 알려진 신이다.
칠성당계곡 물가의 수직바위 절벽 기슭에서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와 징검다리를 건넌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당제(마을제사)를 지내던 당산이 있었다. 당산에는 어김없이 당산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는 고양이가 살았다. 당산은 아이들 놀이터였지만, 고양이가 사는 당산나무는 무서워서 그 곁을 지날 때면 용기가 필요했다. 이 계곡에서 당집은 보지 못했지만, 고양이 한 마리에 어린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크고 작은 바위가 비스듬하게 누운 너럭바위 위에 가득하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바위의 홈에 고였다 다시 흐른다. 가지에 남은 잎이 드물다. 낙엽은 숲길을 덮었다. 더러는 계곡에 떨어져 물에 가라앉았다. 갈색 낙엽이 물결 따라 아래로 흐르다 물길을 막는다. 물은 낙엽이 쌓여 막은 골을 지나 다시 흐른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에서 물보라가 인다. 공중에서 부서지는 물방울마다 햇볕이 비친다. 산길 나그네의 목을 축이던 옥류샘을 지나 숲속 너른 터에 도착했다. 무너미 고개와 연주대 방향으로 길은 갈라진다. 관악산계곡나들길은 무너미고개 쪽으로 이어진다. 이정표에 적힌 연주대 방향으로 향했다. 숲은 가을을 버리고 겨울로 접어들었다. 앙상한 가지에 간신히 매달린 마른 잎 몇몇 개. 그런 길을 걸어 폭포에 도착했다. 가을의 끝자락 어느 날이 그곳에서 지고 있었다.
관악산 칠성당계곡 폭포. 폭포 위에서 본 풍경.
물소리 울리는 계곡, 빈 가지 겨울숲
세 번째 발걸음을 놓은 관악산 계곡의 하루는 지난번에 걸음을 멈췄던 폭포에서 시작했다. 55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 안에 있는 건설환경종합연구소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 인근에 숲으로 드나드는 입구가 있다. 그곳에서 폭포까지 멀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폭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폭포부터 시작한 발걸음은 연주대로 향했다. 웅덩이에 낙엽이 수북하게 가라앉아 맑은 물을 갈색으로 물들였다. 고이고 다시 흐르는 물소리는 청량했다. 칠성당계곡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커다란 바위가 계곡에 널브러진 풍경에 계곡이 끝난 줄 알았는데 올라가다보면 물소리가 또 들린다. 땅으로 스몄다가 어디선가 다시 솟구치거나 바위 아래로 물이 흘렀던 것이다.
신림, 신성한 숲은 빈 가지로 가득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드는 산비탈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공중에서 빈 가지를 서로 엮어 완강하게 버티는 모습이다. 겨울숲의 온기를 그 풍경에서 보았다.
바가지가 놓인 샘터를 지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한다. 계곡 중간에 홀로 선 고사목이 잎 다 떨군 살아 있는 나무보다 꼿꼿하다. 가파른 돌계단에 올라서서 돌아보면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는 계곡이 눈 아래 밟힌다.
펑퍼짐한 돌무지 위에 작은 돌 몇 개를 얹어 쌓은 돌탑이 가득하다. 돌탑이 있는 숲 속 너른 터는 쉼터다. 돌무지 위에 작은 돌탑 하나 쌓고 다시 걷는다. 계곡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즈음 전망 좋은 곳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깔딱고개가 나왔다. 계절의 경계, 가을에서 겨울 숲을 걸어온 걸음을 내처 옮겨 정상에 올랐다. 신성한 숲, 관악산 신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