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 현재 몸으로 겪고 계시군요. 더구나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의 신분이시니 얼마나 힘들까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더구나 ‘유리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남녀의 벽을 이겨내고 인정받았으니 대단합니다.
스트레스의 핵심은 사람 관계입니다.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는 것은 관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이쪽에서 편하게 대한다 하여도 상대방은 어렵습니다. 명령하는 위치와 평가받는 입장은 다르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후회스러운 순간도 많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한 부서를 책임지는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새로운 능력을 요구받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축구에서 최고의 개인기를 발휘하는 메시 같은 선수가 감독으로서도 유능한지는 미지수입니다. 물론 과거의 명성이나 기량, 무엇보다 후광 효과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 선수들을 대하다 보면 간혹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가 종종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의 스타플레이어 출신 야구 지도자가 미국 메이저리그로 지도자 연수 겸해서 코치로 일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 야구단의 단장과 감독이 부르더니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하면 자네는 곧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예? 왜…왜 그렇습니까? 제가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그러십니까? 제가 영어가 부족한 때문입니까?”
그는 익숙지 못한 영어 혹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인종적 편견이라고 억울해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자네는 칭찬할 줄 몰라. 매일 선수들의 나쁜 점만 보려고 하는 것 같아. 그래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네.”
“장점이 보여야 칭찬을 하죠. 사실, 문제투성이지 않습니까? 제 역할도 그 문제를 고쳐주는 것이고 말이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동안 정말 이를 악물고 선수들의 장점만 보려고 했습니다.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단점을 지적하려는 마음을 꾹꾹 눌렀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비로소 자신도 모르게 “잘했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지적당하고 야단맞는 것을 당연시하던 문화권에서 배우고 성장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선수들의 좋은 점, 그리고 잠재력을 발견하는 시력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는 무릎을 쳤습니다.
“아, 바로 그거구나! 이것이 한국과 미국 야구 지도자의 차이구나!”
그렇습니다. 리더와 지도자는 꾸중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팀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개인기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능력과 개성을 존중해줘서 결국은 팀을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입니다. 일 그 자체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주변과의 소통을 잊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샘이 악화됩니다. 리더는 지독한 감정노동자이고 그래서 더 외롭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여성 부서장이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자유롭게 의견 개진하라고 해서, 그 부서장의 제안에 대한 솔직한 제 의견을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 뒤, 돌아온 반응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참 많이 아시네요!”
그분은 문을 꽝 닫고 휙 나가버렸습니다. 업무적인 의견을 본인의 지휘능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분이 남자 상사였다고 하면 오해를 풀기 위해 술 한잔 하자고 말씀드렸을 텐데, 아쉽게도 그분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제외하면 제 경우 오히려 여성 상사들이 더 편했습니다. 비교적 사내 정치에 거리를 두고, 학교와 출신을 따지지 않았던 점도 좋았습니다. 반면에 트라우마처럼 항상 심정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버릇이 생긴 것은 아쉬웠습니다. 여성 상사가 남성 부서원들 대하기 어렵겠지만, 남성 부서원 역시 여성 상사를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군대 등의 이유로 나이와 직위가 역전된 것 역시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한국적인 상황이지요.
직장인들은 피해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크든 작든 그렇습니다. 현재 상황이 불편하시면 1대1 진솔한 대화를 해보세요. 상대방들이 거리를 두면, 이쪽에서 먼저 다가가 보세요. 반드시 소주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커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니까요. 리더는 이겨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 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