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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삶 질투하며 소유하고 싶은 엄마
엄마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은 딸
질투를 억누를 때 왜곡된 감정 표출
내면의 보석 발견, 확신이 중요
Q지난 2월1일자 내 삶의 주인되기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내용이 있어 다시 질문드립니다. 선생님의 답변 내용에 저의 어머니가 저를 질투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뚜벅이님의 남편은 주도권 싸움에 몰두했던 사람이고, 어머니는 딸의 삶을 질투하면서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의 어머니가 딸의 삶을 질투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요.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질투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성취나 행복을 시샘하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저의 어머니가 저를 질투한다고 하면,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제가 엄마를 돌보는 데 관심을 쏟는 대신 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안 좋게 여긴다는 의미인지…. 제가 제 어머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 중심을 갖기 위해 중요한 내용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뚜벅이 A가족 간 질투는 그리 낯설지 않은 주제입니다. <질투: 우리 삶을 뒤흔드는 내밀한 힘>의 저자 피터 투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질투를 소개합니다. 크로노스는 장차 자식에 의해 왕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자식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막내아들인 제우스를 죽이지 못해서 그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피터 투이는 크로노스가 자식을 살해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그들이 표상하는 젊음과 힘을 질투했다. 자신은 이제 잃어가기 시작한 그 젊음과 힘이 점점 늙어가는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낼 테니 말이다.”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낼 젊음과 힘을 가진 자식에 대한 질투는 신화 속 크로노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늙어감을 슬퍼하면서 자식을 부러워합니다. 자신보다 더 젊고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의식 수준이 높아진 자식은 선망과 질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음도 그렇지만 젊음이 상징하는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이야말로 탐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늙어 죽음으로 향한 길만 남은 것 같은데, 너는 아직 많은 꿈을 꾸고 또 펼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질투하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의아하시겠지만 질투의 감정은 그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스며듭니다.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는 <질투의 민낯>에서 인간은 사회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보다 가까운 사람,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 질투를 더 많이 느낀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 질투는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은 포유류 동물뿐 아니라 아주 어린 아이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심리학자에 따라서는 생후 6개월부터 질투의 씨앗이 나타나며, 1~5살 사이에는 명확하게 질투의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보편적인 감정인데도 질투만큼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감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분노나 우울함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어도 가까운 사람을 남모르게 질투한 이야기는 털어놓지 못합니다. 아니, 자신이 질투심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억누르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투를 억눌러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할 때, 여러 왜곡된 감정이나 태도로 변질됩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어쩌면 저렇게 이기적일까?” “성격이 나쁜 것 같아.” “잘못하고 있으니 용서해선 안 돼.” “너 나 질투하니?” 질투를 사랑과 염려로 위장하거나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경우엔, 아이가 너무 철이 없어서, 너무 밝기만 해서,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아이의 미래가 왠지 불안해서, 심지어 너무 당당해 보여서 아이의 삶에 개입해 참견하고, 불안을 조장하고, 훈계하고 비난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아이의 밝음과 당당함과 천진난만함과 가능성을 질투하고 방해하는 방식이지요. 물론 위장되거나 대체된 생각과 감정을 진짜 감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요. 지난번 보내주신 뚜벅이님의 사연을 보니 당신의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식에 대한 질투가 사랑과 정반대의 감정만은 아닙니다. 자식에게서 질투할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것은 자식이 가진 장점이나 미덕을 알아봤다는 말이고, 그래서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애착하게 되었겠지요. 그렇다면 뚜벅이님의 마음은 어떤가요? 성인이 된 뒤에도 어머니의 교묘한 통제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번번이 상처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당신도 어머니를 질투한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질투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질투가 심리학에서는 더 많이 언급됩니다.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엄마를 사랑하면서 아버지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아들의 마음)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아버지를 선망하면서 엄마를 미워하는 딸의 심리), 또는 유아가 엄마의 젖가슴에 대해 느끼는 질투 같은, 좀 낯설고 학문적인 접근은 젖혀두더라도 자식이 부모를 선망하고 질투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권력·재력·사회적 지위를 선망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경쟁심, 우월감 같은 복잡한 심경을 한꺼번에 경험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부모 노릇을 자처함으로써 부모를 능가하려는 아이들도 있지요. 부정적 감정을 의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많은 부작용과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알아차리면 약이 되지요. 질투는 우리가 자신을 수용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질투심이 강할수록 자신이 가진 미덕과 강점은 외면한 채, 외부의 대상과 자신을 일방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신을 괴롭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뚜벅이님도 그랬다면 이제 당신에게로 돌아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을 발견하세요. 당신이 내면의 보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되면, 어머니의 질투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기도 쉬워질 겁니다.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여기서 저의 어머니가 딸의 삶을 질투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요.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질투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성취나 행복을 시샘하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저의 어머니가 저를 질투한다고 하면,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제가 엄마를 돌보는 데 관심을 쏟는 대신 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안 좋게 여긴다는 의미인지…. 제가 제 어머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 중심을 갖기 위해 중요한 내용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뚜벅이 A가족 간 질투는 그리 낯설지 않은 주제입니다. <질투: 우리 삶을 뒤흔드는 내밀한 힘>의 저자 피터 투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질투를 소개합니다. 크로노스는 장차 자식에 의해 왕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자식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막내아들인 제우스를 죽이지 못해서 그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피터 투이는 크로노스가 자식을 살해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그들이 표상하는 젊음과 힘을 질투했다. 자신은 이제 잃어가기 시작한 그 젊음과 힘이 점점 늙어가는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낼 테니 말이다.”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낼 젊음과 힘을 가진 자식에 대한 질투는 신화 속 크로노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늙어감을 슬퍼하면서 자식을 부러워합니다. 자신보다 더 젊고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의식 수준이 높아진 자식은 선망과 질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음도 그렇지만 젊음이 상징하는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이야말로 탐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늙어 죽음으로 향한 길만 남은 것 같은데, 너는 아직 많은 꿈을 꾸고 또 펼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모가 자식을 질투하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의아하시겠지만 질투의 감정은 그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스며듭니다.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는 <질투의 민낯>에서 인간은 사회적으로 거리가 먼 존재보다 가까운 사람, 자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 질투를 더 많이 느낀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 질투는 본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으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은 포유류 동물뿐 아니라 아주 어린 아이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심리학자에 따라서는 생후 6개월부터 질투의 씨앗이 나타나며, 1~5살 사이에는 명확하게 질투의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보편적인 감정인데도 질투만큼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감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분노나 우울함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어도 가까운 사람을 남모르게 질투한 이야기는 털어놓지 못합니다. 아니, 자신이 질투심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억누르고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투를 억눌러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할 때, 여러 왜곡된 감정이나 태도로 변질됩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어쩌면 저렇게 이기적일까?” “성격이 나쁜 것 같아.” “잘못하고 있으니 용서해선 안 돼.” “너 나 질투하니?” 질투를 사랑과 염려로 위장하거나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경우엔, 아이가 너무 철이 없어서, 너무 밝기만 해서,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아이의 미래가 왠지 불안해서, 심지어 너무 당당해 보여서 아이의 삶에 개입해 참견하고, 불안을 조장하고, 훈계하고 비난합니다. 이것이 부모가 아이의 밝음과 당당함과 천진난만함과 가능성을 질투하고 방해하는 방식이지요. 물론 위장되거나 대체된 생각과 감정을 진짜 감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요. 지난번 보내주신 뚜벅이님의 사연을 보니 당신의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식에 대한 질투가 사랑과 정반대의 감정만은 아닙니다. 자식에게서 질투할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것은 자식이 가진 장점이나 미덕을 알아봤다는 말이고, 그래서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애착하게 되었겠지요. 그렇다면 뚜벅이님의 마음은 어떤가요? 성인이 된 뒤에도 어머니의 교묘한 통제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번번이 상처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당신도 어머니를 질투한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질투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질투가 심리학에서는 더 많이 언급됩니다. 정신분석학이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엄마를 사랑하면서 아버지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아들의 마음)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아버지를 선망하면서 엄마를 미워하는 딸의 심리), 또는 유아가 엄마의 젖가슴에 대해 느끼는 질투 같은, 좀 낯설고 학문적인 접근은 젖혀두더라도 자식이 부모를 선망하고 질투하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권력·재력·사회적 지위를 선망하고 열등감을 느끼며,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경쟁심, 우월감 같은 복잡한 심경을 한꺼번에 경험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부모 노릇을 자처함으로써 부모를 능가하려는 아이들도 있지요. 부정적 감정을 의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많은 부작용과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알아차리면 약이 되지요. 질투는 우리가 자신을 수용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질투심이 강할수록 자신이 가진 미덕과 강점은 외면한 채, 외부의 대상과 자신을 일방적으로 비교하면서 자신을 괴롭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뚜벅이님도 그랬다면 이제 당신에게로 돌아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을 발견하세요. 당신이 내면의 보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되면, 어머니의 질투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기도 쉬워질 겁니다.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