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이웃 할머니가 매일 슈퍼에 나오는 이유

등록 : 2016-10-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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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는 1층이 대형 슈퍼마켓을 낀 복합상가여서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슈퍼 바로 옆 스포츠센터에는 언제나 60~70대 할머니들로 꽉 차고, 또 그 옆자리에는 거의 100살에 가까워 보이는 노부부가 머리를 흔들며 채소 가게를 한다. 그 채소 가게 옆으로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하고 1회 마사지와 지압에 단돈 500엔이라는 홍보 문구로 노인들을 유혹하고 있는 물리치료실이 나란히 있다. 그렇다 보니 오다가다 늘 많은 노인들과 부딪치고, 그중에는 저녁마다 5년 가까이 슈퍼에서 마주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

며칠 전 저녁, 상품을 반값이나 100엔 단위로 ‘땡처리’하는 시간에 맞춰 슈퍼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낯익은 이웃 할머니와 마주쳐, 가볍게 묵례를 나누고 지나치려 할 때였다. 양이 넉넉한 돈가스 도시락을 반값인 199엔에 팔길래 얼른 3개를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습관처럼 주위를 살피는데, 예의 이웃 할머니가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식구가 많은가 보네?”

여느 때와는 달리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 나는 혹시 그 할머니가 내가 산 돈가스 도시락을 사려 했던 것인가 싶어 얼른 도시락 하나를 꺼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극구 손사래를 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야, 도시락 필요 없어. 이미 다 사놨어. 오늘은 그냥 온 거야. 정말, 정말이라구.” 몇 번 권하다가 하도 거절하기에 이번에는 내가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매일 시장 보러 오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확인시켜주러 왔지” 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 몰라 엉거주춤 애매한 표정으로 있자 할머니는 이내 알았다는 듯 다음 말을 이어갔다.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매일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야 돼. 그래야 고독사를 면하지. 그래서 오전에는 스포츠센터, 오후에는 슈퍼에 날마다 들리는 거야. 날마다 오던 사람이 안 오면 모두들 궁금해할 것 아냐. 그래서 며칠 안 보이면 우리 집에 와서 확인할 거구.”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그리고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날마다 만나다시피 하며 서로 이웃해 산 지 실로 5년 만에 슈퍼 안에서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이처럼 처절한 말이라니.

할머니의 말인즉슨 이랬다. 자신처럼 혼자 사는 노인들은 언제 어떻게 갑자기 사망할지 모르니 비상연락처를 적어놓은 메모지와 장례비용을 기본적으로 마련해놓고, 두서너 군데 매장을 정해 날마다 출근하듯 순례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각인시켜주기 위함이라는 것.

슈퍼의 경우, 날마다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니고 이삼일에 한 번씩 단 한 가지만 산다고 한다. 물론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그래야 다음 날에 다시 올 명분이 생기니까. 그래서 할머니는 집에서 거의 요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7시가 넘으면 반값에 파는 도시락을 사서 먹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이란다. 할머니는 덧붙여 슈퍼뿐만 아니라 다른 매장에 매일같이 얼굴을 비치는 할머니들은 거의 자신과 똑같은 이유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나 아직도 살아 있소!” 하고 알리기 위해. 또 며칠 얼굴을 안 비치면 집에 전화해 달라거나 구청에 연락해 달라는 무언의 읍소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저녁이면 매일같이 마주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반값 도시락 한 개를 바구니에 넣고 어슬렁어슬렁 슈퍼 안을 돌고 있는 노인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혹시 오늘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괜스레 서울에 잘 살고 계시는 90살 엄마 생각이 자꾸만 나 마음이 더 아려왔다.


현재 일본에는 100살이 넘는 초고령 인구가 6만5000명이 넘고, 80살 이상도 1000만 명이 넘는다. 그중 65세 이상 고령자 수는 무려 3384만 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26.7%(2015년 9월 현재)를 차지하고, 홀몸노인 수는 작년 기준으로 6000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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