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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페티예에서 패러글라이딩 하는 모습.
대학 졸업 뒤 인턴 끝나 시작한 여행
입사 2년차 때 휴가 모아 영국 찾은 뒤
해마다 한 나라씩 유럽 등지를 다녀와
2005년 퇴직 다음해 산티아고도 걸어
어린이집 등에서 일해 ‘자금’ 모으면서 실크로드 여행 등 장기 계획 ‘차곡차곡’
돌아와 일하면서 벌써 다음 여행 준비 “환갑 때는 마추픽추에서 살사춤 출 것” “환갑은 마추픽추에서 살사춤을 추며 맞고 싶어요.”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동남아를 돌고 입국한 여행가 김하정(53)씨의 꿈이다. 김씨가 지금까지 방문한 나라는 총 43개국이 넘는다. 제주 집에 내려가기 전에 잠시 서울에 머물던 김씨를 지난 2월 초에 만났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인턴으로 회사에 취업했다. 정직원이 되길 기대했는데 잘 안 됐다. 마침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어 김씨는 여권만 만들어 따라나섰다. 홍콩·마카오·타이 등이 첫 해외여행지였다. 다음해 공사에 들어가 사보를 제작했다. 입사 2년차에 휴가를 모아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후 해마다 한 나라씩 유럽을 돌았다. 1998년 신문에 난 ‘역사와 산’이라는 등산 동아리의 회원 모집 공고를 봤다. 대학생 때부터 허리가 안 좋았던 김씨는 건강을 위해 홀로 등산하던 터라 흔쾌히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 뒤로 다달이 전국 곳곳의 산에 올랐다.
어린이집 등에서 일해 ‘자금’ 모으면서 실크로드 여행 등 장기 계획 ‘차곡차곡’
돌아와 일하면서 벌써 다음 여행 준비 “환갑 때는 마추픽추에서 살사춤 출 것” “환갑은 마추픽추에서 살사춤을 추며 맞고 싶어요.” 코카서스 3국(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과 동남아를 돌고 입국한 여행가 김하정(53)씨의 꿈이다. 김씨가 지금까지 방문한 나라는 총 43개국이 넘는다. 제주 집에 내려가기 전에 잠시 서울에 머물던 김씨를 지난 2월 초에 만났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인턴으로 회사에 취업했다. 정직원이 되길 기대했는데 잘 안 됐다. 마침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어 김씨는 여권만 만들어 따라나섰다. 홍콩·마카오·타이 등이 첫 해외여행지였다. 다음해 공사에 들어가 사보를 제작했다. 입사 2년차에 휴가를 모아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후 해마다 한 나라씩 유럽을 돌았다. 1998년 신문에 난 ‘역사와 산’이라는 등산 동아리의 회원 모집 공고를 봤다. 대학생 때부터 허리가 안 좋았던 김씨는 건강을 위해 홀로 등산하던 터라 흔쾌히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 뒤로 다달이 전국 곳곳의 산에 올랐다.
인도네시아 길리 트라왕안섬 수중에서 다이빙하는 모습.
2005년 퇴사하자 시간과 퇴직금이 생겼다. 마침 한비야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김씨의 가슴을 뛰게 했다. 다음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이탈리아를 돌며 배낭여행의 자유를 누렸다.
2년 뒤 인도를 여행하고 네팔로 들어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할 계획을 세웠다. 김씨는 꾸준히 등산해와서 고산병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300여m 앞두고 오한과 두통이 와 걷기 힘들었다. 옆 팀의 포터가 김씨에게 고산병이라 알려주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도움을 줬다. 주변에서 하산을 권했지만 혼자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산장에는 전기가 없어서 있는 옷을 다 껴입고 우비까지 입고 잤다. 새벽에 깨어보니 고산 증세는 한결 나아졌다. 그때 창밖을 보았다. “달빛에 반사된 안나푸르나 설산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어요. 주변이 고요해서 세상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고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려갔으면 이 아름다운 것을 못 봤겠구나 싶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모스크.
2009년 학습지 회사에 들어가 4년을 일했다. 그 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 교사로 3년을 다녔다. 일하면서 실크로드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론리플래닛 여행가이드북을 사서 공부하며 어느 경로로 갈지 정했다.
2017년 3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실크로드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튀르키예를 돌고 페르시아 문화를 간직한 이란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페르시아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저녁에 이슬람 사원에 들어갔는데 친절한 아줌마가 음식과 차를 나눠주고는 집으로 초대했다. “그분이 집으로 가더니 히잡을 벗으며 ‘왜 이런 걸 쓰는지 몰라’ 그러더라고요.” 아줌마는 김씨에게 ‘어디서 왔는지’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그분이 ‘나는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네가 부럽다’고 했어요.” 이란은 한국인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나라였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 420㎞쯤 위치한 이스파한은 한때 이란을 통일했던 사파비 왕조(1501~1736)의 궁궐이 남아 있는 도시로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란 중부 도시 야즈드에선 조로아스터의 주신 아후라마즈다의 상징물인 불이 1500년간 꺼지지 않고 있었다. 페르시아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에 놀라움을 느꼈다. 주변국을 돌아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3개월간의 실크로드 여정을 마쳤다.
이집트 시나이산의 일출 모습.
김씨가 한국에 들어와서 어린이집 일자리를 찾는데 마침 제주도에 일자리가 있었다. 당장 제주도로 내려가 어린이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어린이집 동료를 따라 해녀학교에 원서를 냈다. 수영은 못했지만 해녀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다. 2020년 4월 해녀학교에 입학해서 잠수를 배웠다. 처음엔 숨 참는 실력이 꼴등이었는데 졸업할 때는 2등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본사를 둔 스쿠버 다이빙 교육 회사 ‘파디’(PADI)에서 발급하는 프리다이빙과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땄다. 수영을 못해도 충분히 딸 수 있었다.
2022년 하반기에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조지아 등을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열대 산호초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길리섬’에 들렀다. 2017년에 방영된 <티브이엔>(tvN) 리얼리티 프로그램 <윤식당>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그곳에서 그는 바닷속에 들어가 다이빙하며 실컷 놀았다. 제주에서 자격증을 딴 덕에 여행이 훨씬 풍성하고 즐거웠다. 김씨가 보여준 수중 사진은 광고에서나 보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데 각별히 주의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해 떨어지면 혼자 돌아다니지 않아요. 그리고 밤에 공항으로 떨어질 땐 숙소로 같이 이동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아침까지 공항에서 기다려요. 그리고 여권을 잃을지 몰라 여권 사본과 여권용 사진을 각각 두 군데 따로 보관해요.”
세계여행을 한다면 어느 정도의 기간에 얼마의 비용을 예상해야 하는지도 물었다. “대략 1년에서 1년 반을 잡더라고요. 비용은 천양지차지만 보통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다니는 사람들은 3천만원 전후로 맞춰 다니는 것 같아요.”
조지아 카즈베기 트루소밸리 트레킹. 뒤에 만년설이 보인다.
여행을 위해서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든 것을 버렸어요. 물건도 많이 사지 않고요. 여행 가면 샴푸 하나에 옷가지도 딱 필수적인 것만 가져가요. 그래도 불편하지 않아요. 그때 평소에 불필요한 걸 너무 많이 가지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죠.”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다. “영어는 기본회화 외엔 진짜 못해요. 요즘은 ‘말하는 번역기’라는 앱이 있어 아랍어까지 다 되니까 언어는 진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예전엔 상상도 못할 일이죠.”
김씨가 다음에 여행할 곳은 중남미다. 그래서 살사댄스도 배우고 간단한 스페인어도 배우고 있다. 노년엔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내는 꿈도 있다. 칠순에도 팔순에도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가가 꼭 될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려고 보니 김씨의 삶이 여행으로 꽉 채워진 것 같았다. “선생님 생활은 여행 안 할 때도 여행을 준비하시는 거네요?” “그렇죠.” “그럼, 여행을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네, 전 여행을 위해 살아요.”
우린 둘 다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김하정씨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무언가를 위해서 산다. 취업하려고, 승진하려고, 아파트를 사려고,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려고 등등. 그럼 난 뭘 위해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프리터족(프리와 아르바이터의 합성어. 몇 년간 일해서 돈 벌고 몇 개월은 여행 등 여가생활에 힘쓰는 사람)인 김하정씨가 부럽게 느껴졌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나도 몇 년은 여행을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
강정민 작가
사진 김하정씨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