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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기요타키강(사진 왼쪽)을 따라 조성된 삼나무 숲길. 마치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고요한 음악 속을 걷는 듯한 길이다.
교토 서북 산간 기요타키강 따라 6.5㎞
자연 숲길 조성…사계절 모두 걷기 좋아
파이프오르간 같은 삼나무 ‘고요’ 연주
시냇물 소리와 조화 이뤄 상쾌함 더해
절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풍광도 일품 천년고찰 3곳의 문화재들도 볼거리
13세기 풍자그림은 일본 애니 ‘원조’ 원효·의상 전설 그린 ‘일본국보’ 눈길 교토시 서북쪽 교외 다카오(高雄)는 하이킹 명소이다. 이곳 사람들이 ‘산비’(三尾)라고 부르는 3개의 산(도가노오산, 마키노오산, 다카오산) 사이로 ‘맑은 골짜기 시냇물’이라는 뜻의 기요타키가와(淸瀧川)가 청아하게 흐른다. 천변을 벗어나면 쭉쭉 뻗은 파이프오르간 같은 삼나무들이 고요를 연주한다. 산기슭에는 천년고찰들이 자신의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유서 깊은 사찰과 아름다운 자연의 변주로 이어지는 이 산책로는 교토시가 정비해놓은 자연 숲길(동해자연보도)과 하이킹 코스(교토 일주 트레일)와도 겹치면서 사계절 모두 걷기 마니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교토역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인 다카오에서 하이킹하려면 도가노오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바로 옆에 고산지(高山寺. 1994년 세계문화유산) 절이 있고 500~600m 간격으로 사이묘지(西明寺)와 진고지(神護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들은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막부 시대(1185~1333)의 건축물과 소장품 등을 합쳐서 무려 1만 점이 넘는 문화재가 있다는 곳이다. 이 절들을 ‘순례’하고 나면 본격적인 ‘숲길 걷기’가 시작된다.
절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풍광도 일품 천년고찰 3곳의 문화재들도 볼거리
13세기 풍자그림은 일본 애니 ‘원조’ 원효·의상 전설 그린 ‘일본국보’ 눈길 교토시 서북쪽 교외 다카오(高雄)는 하이킹 명소이다. 이곳 사람들이 ‘산비’(三尾)라고 부르는 3개의 산(도가노오산, 마키노오산, 다카오산) 사이로 ‘맑은 골짜기 시냇물’이라는 뜻의 기요타키가와(淸瀧川)가 청아하게 흐른다. 천변을 벗어나면 쭉쭉 뻗은 파이프오르간 같은 삼나무들이 고요를 연주한다. 산기슭에는 천년고찰들이 자신의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유서 깊은 사찰과 아름다운 자연의 변주로 이어지는 이 산책로는 교토시가 정비해놓은 자연 숲길(동해자연보도)과 하이킹 코스(교토 일주 트레일)와도 겹치면서 사계절 모두 걷기 마니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교토역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인 다카오에서 하이킹하려면 도가노오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바로 옆에 고산지(高山寺. 1994년 세계문화유산) 절이 있고 500~600m 간격으로 사이묘지(西明寺)와 진고지(神護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들은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막부 시대(1185~1333)의 건축물과 소장품 등을 합쳐서 무려 1만 점이 넘는 문화재가 있다는 곳이다. 이 절들을 ‘순례’하고 나면 본격적인 ‘숲길 걷기’가 시작된다.
보통 코스는 고산지 절에서 강 하류 쪽 버스정류장이 있는 기요타키 마을까지의 6.5㎞ 구간이지만, 시간과 체력이 되는 분은 기요타키에서 일본철도(JR) 사가노선 호즈쿄(保津峽)역까지 걷는 긴레이케(錦鈴溪) 계곡 구간(약 3.5㎞)을 더해도 좋다. 긴레이케 골짜기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될 만큼 경치가 수려하다. 하이킹 도중 마음을 바꿔 도롯코관광열차를 탈 수도 있다. 짧은 일정으로 하이킹을 즐길 수 없다면, ‘산비의 세 산사’만 구경하는 것도 훌륭한 관광코스이다. 특히 고산지는 우리나라 고승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을 ‘사표’로 삼은 절이어서 친숙한 인연을 느끼게 하는 절이다.
고산지 절(세계문화유산)의 선방 ‘세키스이인’(석수원). 자기 그림자를 따라 도는 듯한 선재동자상이 인상적이다.
도가노오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뒤가 고산지 후문이다. 버스길을 되돌아 얼마쯤 내려가면 절 진입로가 나온다. 이 절의 심볼이라 할 만한 마름모꼴의 부석을 밟으며 경내로 들어서면 삼나무와 적송 사이로 높이 선 금당이 눈에 들어온다. 774년 창건된 고산지는 1206년 묘에(明惠. 1173~1232)라는 승려가 왕의 비호 아래 화엄종 절로 재건했다. 9살에 절에 들어온 묘에는 ‘일생불범’(승려 계율의 하나. 일생 이성 접촉이 없는 것을 뜻한다)의 청정 비구로서 왕실과 막부, 일반 민중 등 전 계층에 걸쳐 공경을 받은 일본 중세의 손꼽히는 선승이다.
고산지에는 금당을 비롯한 여러 전각이 있지만, 절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묘에가 거주했던 세키스이인(石水院, 일본국보)이다.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기요타키의 강바람을 쐬며 잠시 참선에 빠져볼 수 있는 고요한 선방이다. 세키스이인이 소장한 최고 명품은 ‘조수인물희화회권’(일본국보, 진품은 박물관에 있다)이다. 원숭이, 토끼, 개구리 등 동물을 의인화해 인간 세상을 풍자한 13세기 두루마리 그림이다. 일본이 왜 애니메이션 왕국인지 “역사적으로 여실히 입증하는” 듯하다. 박물관에 가 있어 볼 수 없었지만 원효와 의상의 일화를 그린 <화엄종조사회전>(국보. 1223~1228년 제작 추정)도 명작이라고 한다.
세키스이인에 전시된 13세기 두루마리 그림 ‘조수인물희화’(복제본)의 한 장면. 일본만화의 ‘원조’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진품은 교토박물관에 있다.
두 신라 화엄종 고승을 흠모한 묘에가 당시 전란으로 남편과 가족을 잃은 여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이 두루마리 그림책을 만들었다. 의상 편(4권)은 의상 대사와 중국 여성 선묘 낭자의 전설을, 원효 편(3권)은 해골 물을 마시고 깨침을 얻은 대사가 왕비를 치유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고 한다. 특히 원효 편은 그림에 대사를 넣어 만화 ‘말풍선’의 원조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의상과 선묘 낭자 이야기는 영주 부석사 창건(676) 설화로 <삼국유사>(1281)에도 등장한다. 묘에는 이 이야기를 중국에서 편찬된 <송고승전>(988)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고산지는 또 묘에가 선물받은 중국 차씨로 일본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곳으로도 알려졌는데, 세키스이인 옆에 “일본 최고(最古)의 차밭”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옛날에는 다카오에서 생산되는 차를 다른 차와 구별해 ‘본차’(本茶)라고 할 만큼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고산지를 상징하는 마름모꼴 진입로 부석도
고산지를 나와 다시 기요타키강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붉은 다리 건너편에 사이묘지(서명사)가 있다. 9세기 초 창건된 절로 도쿠가와막부 시대에 재건됐다. 석단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끔 지은 산문이 아주 고풍스럽다. 문 옆에는 수령 700년의 노송나무가 천왕상처럼 서 있다. 절 앞 다리 아래 시내는 여름에는 물놀이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이묘지에서 천변을 따라 걸어서 다카오바시(고웅교) 다리를 건너면 진고지 안내판이 보인다. 진고지는 고산지와 사이묘지의 본찰로 일본 진언밀교의 성지로 추앙받는 큰 사찰이다. 9세기 이전에 처음 세워졌다는 이 절에는 일본국보 17점과 2833점의 중요문화재가 있다고 한다. 가히 문화재의 보고 같은 곳이다. 관광객에게는 400여 개의 돌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야 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불만(?)일 것이다. 광대한 경내에 자리잡은 여러 전각이 한결같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잘 소개돼 있지 않지만, 일본 고대의 3대 범종 중 하나라는 진고지의 종(일본국보, 875년 제작)을 만든 장인은 백제계 도래인 후손이다.
금당에서 내려다본 진고지(신호사) 경내
절 안쪽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다카오산 긴운케(금운계) 계곡 풍경도 장관이다. 일본에는 맑은 날 높은 곳에 올라 찻잔 등 작은 질그릇을 아래로 던져 공중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며 행운을 점치는 ‘가와라케나게’라는 전통놀이가 있는데, 이곳이 그 발상지라고 한다. 전망대 옆 가게에서 작은 그릇을 파니 하나 사서 던져보는 것도 관광의 즐거움일 것이다.
진고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400계단을 내려와 기요타키바시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하이킹 코스가 펼쳐진다. 굽이굽이 꺾어지는 시냇물과 마치 줄을 맞춰 심은 듯한 삼나무숲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아름다운 경치가 발걸음을 더욱 상쾌하게 해준다. 종착지인 기요타키 마을까지 넉넉잡고 1시간30분 정도 코스다. 이곳 삼나무는 ‘기타야마스기’(北山杉)라고 불리는 교토 특산품이다. 고산지에서 차로 10여분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나카가와 지역이 기타야마스기의 주산지라고 하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고도>(古都)의 무대로 유명하다.
다카오산의 긴운케(금운계) 계곡
교토의 기타야마스기는 수직으로 곧게 뻗고 마디가 없어 최고의 목재로 꼽힌다. 30여년의 긴 시간과 손길을 요하는 목재산업이다. 교토가 잦은 화재와 전란으로 건물이 소실돼도 두 번, 세 번 다시 지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양질의 목재가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삼나무숲길을 나와 친카바시(침하교) 다리를 건너면 다시 천변길이다. 피곤을 느낄 참이면 잠시 냇가로 내려가 발을 담그고 시원한 바람 속에 ‘벤또’(도시락)를 까먹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강에서 벗어나 임도를 걸으면 긴레이쿄(금령교) 다리가 보인다. 냇가에서 바비큐와 물놀이,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을 보면 마을이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바로 버스를 타러 가도 되지만, 다리를 건너지 않고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주점 등이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보는 것이 좋다. 거기서 도엔바시(도원교)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면 ‘산비 하이킹’의 종착지 기요타키버스정류장이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