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올림머리’ TV 보던 일본인, 나를 힐끔 보다

등록 : 2016-12-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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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텔레비전에는 이른 아침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특집 방송 일색이다. 물론 박 대통령 위에 군림했던 최순실에 대한 보도도 빠지지 않고 있다. 방송 점유 시간이 얼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추월할 정도다. 그만큼 박 대통령-최순실에 대한 일본의 방송 보도는 연일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문제는 그런 일본 방송을 매일같이 고문처럼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우리 같은 한국인들이다. 덕분에 일본인들을 만나면 먼저 우리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묻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실제로, 진실로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몸과 영혼을 쥐고 국정을 흔들었나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기껏해야 “우리도 그것이 진짜 궁금해요”라는 궁색한 답변뿐이다. 또한 일본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과연 최순실이 청와대에서 굿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굿에 대해서 관심이 높은지 잘 모르겠지만, 최근 만나는 한국인마다 주변의 일본인들이 “진짜 청와대에서 굿을 했는가” 하고 묻는 통에 창피해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1980년대 중반 유학을 위해 일본에 거주하기 시작할 즈음, 그때 한국의 거리는 최루탄 가스로 자욱했다.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 정권 타도와 민주화 실현을 위해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최루탄 가스를 쏘며 강경일변도로 대응했고, 학생들과 시민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이런 장면은 고스란히 일본 텔레비전에도 보도가 됐다. 당시만 해도 일본 언론에 한국 관련 뉴스가 보도돼도, 어느 정도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시위 군중 속에 꽤 여러 번 섞여 있었다는 자긍심이,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6·29선언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문민정부를 들어서게 했다는 일말의 자부심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면서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일본인들이 먼저 전두환·노태우를 비판하면 듣기 싫어 화제를 돌리곤 했다. 말하자면 내가, 같은 한국인들이 그 두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괜찮은데, 막상 일본인이 비판하면 괜히 자존심이 상하고 듣기 싫어 굳이 옹호는 아니지만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막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같은 한국인끼리 만나면 우리가 전두환·노태우를 비판하는 것은 괜찮은데 일본인이 비판하는 왜 그리 싫은지, 혹시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그 애국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꽤 여러 번 이야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이런 류의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던 그때는 정말이지 무한대의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망 그 자체다.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박 대통령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저 정도로 수준 이하였나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오늘 방송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꽃다운 아이들이 어른들의 구조를 간절히 기다리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시간에 전담 미용사를 불러 1시간 반 가까이 머리를 만졌다는, 그뿐만 아니라 일부러 부스스해 보이기 위해 머리를 흩트린 연출까지 했다는 뉴스가 벌써 열 번도 넘게 나오고 있다. 아마도 시시각각 이 내용을 보도하는 것 같다.

한국 식당에서 텔레비전으로 그 장면을 보던 한 일본인이 힐끔 나를 쳐다본다. 그 표정이 참으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하다. 설마 하는 느낌 반, 그리고 역시 한국은 어쩔 수 없어 하는 느낌 반. 과연 어느 쪽이 그 일본인의 속내일까. 양쪽 모두 한국인으로서 면이 안 서는 것은 매한가지.

그렇게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복잡한 조우를 매일같이 마주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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