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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만 보는 대통령

등록 : 2016-12-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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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티브이(TV) 시청을 즐긴다고 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재미있게 봤는지 차병원에서 사용한 가명도 ‘길라임’이다. 박 대통령이 1993년 펴낸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을 보면, 교양프로 <동물의 세계>를 가장 좋아한다고 되어 있다. 티브이를 좋아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는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하는 마력이 있다.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한 대통령의 마음도 이해된다. 일본드라마 <너는 펫>에 빠져 한때 내 가명이 ‘스미레’였으니. 극 중 여자주인공 이름이다.

제작사들도 이런 걸 노린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가장 오래됐고 손쉬운 게 ‘궁금증 유발’ 작전이다. 한 회가 끝나고 다음 회 예고편을 내보내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두둥’하며 끝내 안달나게 만든다. 요즘은 주 2회 방송하는 드라마를 주말에 한 편처럼 묶어 재편집해 내보낸다. 재방송이 ‘재탕’이 아닌 새로운 버전이 되면서 또 보게 만드는 것이다. 드라마 관계자는 “본방송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결국 본방송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고 했다.

본방송 시청률이 좋지 않거나, 전개가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오면 ‘감독판’ 카드를 꺼낸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1·2회 반응이 좋지 않자, 주말 재방송 시간에 피디가 다시 편집한 ‘감독판’을 내보냈다. 본방송에서 삭제된 16분을 추가했다. <낭만닥터 김사부>도 잘라냈던 장면을 넣어 1·2회 특별판을 12일 방송했다. <에스비에스>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려고 편성까지 바꿨다.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를 토·일이 아닌, 토요일에 2회 연속 내보내고 있다. 주말에 각각 한 편씩 방송할 때는 한 자릿수였던 시청률이 연속 방송 뒤 두 자릿수로 상승했다. 편성이 자유로운 케이블은 지금까지 방송한 것을 모아 연속 방송도 한다.

작정하고 “이래도 안 빠져들래” 유혹하는 데, 장사 없다. 내 취향에 맞고, 구미가 당기면 계속 보고 만다. 황금 같은 금·토요일 밤 8시에 <시그널>을 보려고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는 젊은층이 많았다. 드라마에 깊이 빠져들면 ‘아껴뒀다 몰아보기’로 이어진다. 주말 꼼짝도 안 하고 아이피티브이(IP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못 본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된다. 해본 사람은 안다.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꿀맛을.


그러나 뭐든 과하면 화를 부른다. “드라마나 보고 있고”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평소 할일 척척 해놔야 엄마한테 욕먹지 않는다. 나만 잘하면, 티브이 시청도 건전한 여가 문화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보는 대통령이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방송담당 기자 myviolle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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