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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코미디언들의 무리수가 논란이다. 이휘재는 연말 연기대상을 진행하면서 패딩을 입고 있는 배우 성동일한테 “제작진인 줄 알았다”고 놀리거나, “형” “누나” 등 사적인 자리에서나 부를 법한 호칭을 들먹였다. 가수 장기하와 공개 연애 중인 가수 아이유한테 “이준기와의 사이가 수상하다”고 하고, 배우 조정석이 수상 소감에서 연인인 가수 거미를 언급하도록 무리하게 유도하기도 했다. 코미디언 정이랑이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배우 엄앵란을 조롱하는 개그를 선보였던 <에스엔엘 코리아 시즌8>(티브이엔)은 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경고를 받았다.
모두 대본에는 없는 즉흥대사(애드리브)였다. 정이랑은 엄앵란을 패러디한 캐릭터 김앵란으로 등장해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부르는 설정에서 “가슴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부끄러워요. 잡아보려 해도 잡을 가슴이 없어요”라는 즉흥대사를 날렸다. 이휘재도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즉석에서 내뱉은 말이다. 생방송 중에 벌어진 일이라 편집도 안 됐다. 코미디언들의 무리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에 출연하는 이상준은 지난해 리얼리티 프로그램 <최고의 사랑-님과 함께>(제이티비시)에서 사고당한 야식 배달부를 조롱하는 얘기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논란이 될 걸 모르나?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개그를 시청자들이 웃고 넘길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관계자들은 코미디언 특유의 개그 본능에서 답을 유추한다.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증에 일단 뭐라도 던져야 속이 풀리는 것이다. 한마디 던졌는데 웃지 않으면, 어떻게든 웃도록 더 큰 무리수를 두게 된다. 이휘재가 성동일의 굳은 표정에도 연거푸 패딩 비하 개그를 날렸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대로 반응이 좋으면 분위기에 취해 선을 넘는다. 정이랑이 그랬다. 코미디언들끼리의 평소 거침없고 더 막 나가는 일상 대화가 방송에서 간혹 튀어나오기도 한다.
<라디오스타> 등 막말이 난무하는 토크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다룬 관찰 예능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앞다투어 제작되면서 튀어야 뜬다는 생존 본능도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을 빚는다. 말과 행동은 내면을 투영한다. 센스 넘치고 조리 있게 말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잘 웃기는 일도 많이 알아야 잘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코미디언들은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일이 아주 드물다. 정이랑도 엄앵란을 패러디하는 개그를 선보이면서도 그의 유방암 수술을 몰랐다고 한다. 남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건 웃음이 아니다.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방송담당 기자 myviolle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방송담당 기자 myviolle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