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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가쿠지(大覺寺) 관월대(觀月臺)에서 바라본 오사와이케(大澤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정원연못으로 관월대에서 바라보는 한가위 보름달이 유명했다고 한다.
교토 제일 경치 아라시야마 걷기코스
수십 곳 절과 신사 붙은 듯 모여 있어
덴류지 건축물과 정원 ‘세계문화유산’
신라도래계 후손이 창건한 절도 유명
시인의 고사 깃든 절과 암자 고즈넉 비운의 여인들이 살다가 간 비구니절
왕실문장 걸린 임금 처소 같은 고찰도 일본 최초 인공정원연못 지금도 여전 교토 서북쪽 아라시야마(嵐山)·사가노(嵯峨野) 일대는 교토에서 풍광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귀족들이 배를 띄우고 달구경을 했고, 조선의 신숙주에서 현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에 이르기까지 외국 귀빈들도 초대된 교토의 대표적인 명승이다. 요컨대 예나 지금이나 절경이란 뜻이겠다. 아라시야마유원지의 오이가와(大堰川) 도게쓰다리(연재 4회 참조)를 기준으로 상류 쪽 사가노에는 세계문화유산인 덴류지(天龍寺)를 필두로 크고 작은 절들이 점점이 모여 있다. 비교적 가까이 흩어져 있는 절들을 천천히 걸으며 구슬을 꿰듯이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최대 매력이다.
시인의 고사 깃든 절과 암자 고즈넉 비운의 여인들이 살다가 간 비구니절
왕실문장 걸린 임금 처소 같은 고찰도 일본 최초 인공정원연못 지금도 여전 교토 서북쪽 아라시야마(嵐山)·사가노(嵯峨野) 일대는 교토에서 풍광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귀족들이 배를 띄우고 달구경을 했고, 조선의 신숙주에서 현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에 이르기까지 외국 귀빈들도 초대된 교토의 대표적인 명승이다. 요컨대 예나 지금이나 절경이란 뜻이겠다. 아라시야마유원지의 오이가와(大堰川) 도게쓰다리(연재 4회 참조)를 기준으로 상류 쪽 사가노에는 세계문화유산인 덴류지(天龍寺)를 필두로 크고 작은 절들이 점점이 모여 있다. 비교적 가까이 흩어져 있는 절들을 천천히 걸으며 구슬을 꿰듯이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최대 매력이다.
걷기에는 가급적 관광시즌을 피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만추(晩秋)의 평일을 추천한다. 달 뜨는 시각에 맞춰 돌아오는 코스를 짜면 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사가노는 예로부터 달구경의 명승이었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는 ‘시구레’(時雨. 지나가는 가랑비)가 예보되어도 굳이 피하지 말기를. 궁상맞아도 외국에서 우무(雨霧)의 산사(山寺)는 접하기 힘든 정취이다.
코스는 덴류지에서 시작해 아타고야마 산기슭의 오타기넨부쓰지(愛宕念佛寺)까지 걷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사이의 여러 절 가운데 5곳의 작은 절과 각각 1곳의 암자와 신사를 지나는 코스이다. 두 번 오기 어렵다면 근처의 세이료지(淸凉寺)와 다이카쿠지(大覺寺)까지 가보기를 바란다. 사가노의 유서 깊은 고찰이다. 총 8~10㎞.
‘사가의 석가당’이라고 불리는 세이료지(淸凉寺)의 2층 산문. 신라도래계 고승이 10세기 말에 창건했다.
교외로 나가는 것이므로 일찍 길을 나서 제이알(JR)철도 사가노선이나 란덴(관광열차)을 타고 아라시야마역에서 내려 오이가와 강의 도게쓰다리로 간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강 풍경을 한껏 즐긴 뒤 덴류지로 향한다. 이 절은 왕의 보리사찰로 건립이 시작됐는데, 중간에 돈이 모자라자 ‘덴류지부네’(天龍寺船)라고 불린 중국무역선을 운영해 자금을 충당한 무소 소세키(1275~1351) 대사의 ‘수완’으로도 유명하다. 덴류지는 1345년 완공된 뒤 8번이나 소실됐다가 다시 지어진 ‘전설’을 갖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덴류지의 명성은 지천회유식 정원에 있다. 창건 당시 모습을 간직한 유명한 소겐치(曹源池) 연못을 가운데 두고 계절마다 옷을 바꾸는 수목의 아름다움과 주변 산들을 차경으로 삼은 경치가 빼어나다. 정원 만들기의 귀재였던 무소 대사의 걸작이다.
비구니 사찰 ‘기오지’(祗王寺). 푸른 이끼정원이 고요함과 정결함의 극치를 이룬다.
덴류지에서 나와 중앙상점가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대나무숲으로 가는 소로가 나오고 그 끝에 노노미야(野宮)신사가 있다. 노노미야는 신관에 뽑힌 왕녀가 신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머무는 재궁으로 검은 나무 도리이가 상징물이다. 신사에서 ‘죽림의 오솔길’을 따라 푸른 대숲이 수백 미터 이어진다. 하늘을 가린 대숲의 청량한 공기와 대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대숲을 나오면 관광객이 드물어지면서 ‘사가노 걷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조잣코지(常寂光寺)는 이 코스에서 처음 만나는 ‘작은 절’이다. 참도를 따라 오르면 흰 벽에 초가지붕을 한 인왕문이 보인다. 붉은 단풍잎이 인왕문 지붕 위로, 참도 위로 춤추며 떨어지는 풍경이 소문나 있다. 절 이름도 영원히 고요한 극락정토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람 뒤에는 아라시야마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듯한 아름다운 다보탑이 서 있다.
세계문화유산 덴류지의 유명한 연못 소겐치. 주변 산을 차경으로 삼은 이 연못은 일본 지천회유식 정원의 백미로 꼽힌다.
조잣코지를 나오면 논밭가에 숨은 듯이 서 있어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작은 초가집이 한 채 있다.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가 머물며 <사가일기>를 썼다는 라쿠시샤(落柿舍) 암자이다. 현관 옆에 도롱이와 삿갓이 걸려 있으면 주인이 집에 있다는 표시이다. 암자 주인은 마쓰오의 제자인데, 팔려던 감이 하룻밤 새 다 떨어져버려 그만 이름이 ‘감 떨어진 집’이 되었다고 한다.
라쿠시샤에서 15분쯤 슬슬 걸으면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 두 부처를 모신 니손인(二尊院)이 나온다. 도요토미와 도쿠가와 두 가문 모두로부터 보시를 받아 번영을 누렸다는 절이다. 니손인은 풍격 있는 총문과 가람까지 100m가량 이어지는 넓은 참도가 볼만하다. 좌우로 단풍나무가 무성해 가을이 한창일 때는 ‘홍엽의 마장(馬場)’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절 안에는 일본의 유명한 가인 후지와라노 데이카의 산장 시우정(時雨亭)의 옛 자취도 있어서 전통시 동호인들의 발길도 잦다.
오타기넨부쓰지(愛宕念佛寺)의 오백나한상. 40여년 전 일반 신도들이 깎았다고 하는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살아 있다. 절 누리집 사진.
니손인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걸으면 이번엔 기오지(祗王寺)가 숨은 듯이 나타난다. 기오지는 사랑을 잃은 비운의 여인들이 비구니가 되어 살다간 슬픈 이야기가 깃든 비구니 사찰이다. 대숲과 푸른 단풍나무의 조화 속에 고적한 암자, 깊이 햇살을 머금은 삼나무 이끼, 흩어진 듯 모인 듯한 단풍나무 군락이 더없이 정결한 자태를 이룬다. ‘이끼 정원’의 백미 중 하나이다.
기오지에서 나와 아다시노넨부쓰지(化野念佛寺)로 가는 길에는 일본 전통마을을 볼 수 있는 사가도리이모토 보존지구가 있으므로 옛집 구경을 하면서 잠시 쉬는 것도 좋다. 기오지에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아다시노넨부쓰지에는 8천여 개의 석불과 석등이 장관을 이룬다. 아다시노넨부쓰지는 일본 고대의 명승 고보 대사가 들판에 버려진 시신들을 거두어 풍장을 지낸 데서 유래했다. 해마다 8월23·24일에는 1천 개의 등을 켜고 공양법회를 연다. 여기서 또 15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오타기넨부쓰지이다. 오타기넨부쓰지의 명물은 1200기나 되는 오백나한상이다. 40여 년 전 절의 주지가 일반신도 희망자를 모아 이 나한상들을 깎았다고 한다. 초심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하나같이 표정이 살아 있다. 조각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병이 낫는 치유체험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자기 얼굴과 닮은 나한이 한 개쯤은 꼭 있다는 “손님 끄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고사가 깃든 라쿠시샤. 하룻밤 새 감이 떨어져 ‘감 떨어진 집’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타키넨부쓰지까지 왔다면 사가노의 작은 절 순례는 얼추 한 셈이다. 시간과 체력이 되는 분은 발길을 세이료지와 다이카쿠지 쪽으로 돌려보자.
세이료지는 독특한 중국 양식의 목조 석가여래입상이 유명해 ‘사가의 석가당’으로도 부른다. 987년 조넨이라는 화엄승이 중국 유학 때 이 입상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화사에게 부탁해 모각품을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조넨은 속성이 하타(秦)씨였다고 묘비에 기록돼 있는 사람이다. 하타씨라면 사가노 일대를 옥토로 개간하고 교토를 수도로 만든 숨은 주역이었던 신라도래계 호족이니, 우리와도 인연의 끈이 있는 절이다. 보통의 일본인에게는 고대소설 <겐지모노가타리>의 모델인 미나모토 도루의 산장 이름 ‘세이카칸’(棲霞觀)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은 일본 역사상 왕자 신분에서 처음 성씨를 받은 ‘겐지(源氏) 1호’이다.
니손인(二尊院)은 넓은 참도가 100미터가량 계속되는데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터널을 이룬다.
다이카쿠지는 절이라기 보다는 어소(왕의 처소) 같은 곳이다. 일본에 왕이 2명이던 시절인 남북조시대에는 남조 왕통의 중심이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지금도 16개의 국화문(왕실문장)을 새긴 흰 가림막이 절 현관에 걸려 있다. 다이카쿠지는 유서 깊은 건물도 많지만, 건물 곳곳을 장식한 명화들이 볼만하다. 대표적 어용화사인 가노파의 그림들이다. 대현관에는 가노 에이토쿠의 <소나무 산수도>가 있고, 침전에는 가노 산라쿠의 <모란도> <홍엽도> 등이 있다. 모모야마 시대(16~17세기 일본 미술 사조)의 대표작으로 명성이 높다.
고대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다이카쿠지 옆에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인공 정원지인 오사와이케(大澤池)가 지금도 푸르르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붉은 용머리를 장식한 배들이 등롱을 밝히고 달빛 일렁이는 물 위를 떠다녔다고 한다. ‘관월(觀月)의 저녁’이란 연회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