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걸으며 생각하며

1300년 길의 역사에 새겨진 ‘상인들의 도시’ 교토

㉝ 시조거리의 니시키시장에서 상경 다치우리까지 교토의 실핏줄 ‘길’

등록 : 2024-01-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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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도리 동쪽 끝 야사카신사에서 바라본 기온거리. 보이지 않지만 길 끝의 시조대교를 건너면 시조가와라마치네거리가 나온다.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타운이다.

‘교토’ 이전부터 상업의 역사 간직한 ‘길’

귀족·사무라이들과 경쟁한 상인들 자취

시조가와라마치, 교토 관광산업의 중심

‘혼모노’ 니시키시장 400년 역사 자랑


도요토미 때 만든 데라마치 지금도 북적

150년 신쿄고쿠, ‘역사 짧은’ 쇼핑타운


부자 동네에만 남은 노점상 ‘다치우리’

교토가 장사꾼 도시였다는 역설의 증언

교토라는 역사지도에서 절과 신사를 지우면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오롯이 길이 두드러질 것이다. 시조도리(四條通)처럼 천몇백년전부터 있던 길이 지금도 있는가 하면, 가와라마치도리(河原町通)와 같이 17세기 강변의 빈민가가 교토 최대의 대로가 된 길도 있다. 이런 큰길들 사이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작은 길들이 교토라는 고도의 실핏줄을 이루고 있다. 많은 역사가 무분별하게 사라져버린 인류사 속에서 그래도 이만큼 길이 역사를 간직한 도시도 드물 것 같다.

교토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최소 한 번 이상은 걷게 되는 곳이 시조가와라마치 일대이다. 동서로 가로축을 이루는 시조도리 길과 남북으로 세로축을 이루는 가와라마치도리 길이 만나는 시조가와라마치네거리는 150만 인구의 세계적인 관광도시 교토의 최대 번화가이다. 이 네거리를 기점으로 전통적인 상업도시 교토의 뒷길을 걸어본다.

니시키시장. 길이 약 390미터에 길폭은 3~5미터. 진열대가 있는 점포도 많아 실제로는 더 좁게 느껴진다. 점포수는 약 130개로 백년 이상 업력의 노포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교토를 종교와 문화의 도시로만 알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조닌(町人)과 마치슈(町衆)들이 활약한 경제도시의 얼굴이 나타난다. 교토는 정치권의 상층 지배계급과 경제권의 중간층 상인계급이 길항을 거듭하며 내실이 발전한 도시였다.

시조가와라마치네거리 동쪽은 가모가와강변의 유흥가이고 서쪽은 길게 뻗은 상점가이다. 이 시조도리 북쪽에 ‘교토의 부엌’이라고 하는 니시키(錦)시장이 있고, 시장 동쪽 입구에서 북쪽으로 뻗은 길이 신쿄고쿠(新京極) 길이다. 신쿄고쿠도리와 나란히 달리는 길은 데라마치(寺町)라고 한다. 이 두 길이 교토도심의 전통적인 상점가이자 관광타운이다. 시조거리와 니시키시장은 무려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데라마치는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 신쿄고쿠는 19세기말에 탄생한 비교적 역사가 짧은(?) 길이다.

교토의 관광쇼핑타운 신쿄고쿠상점가. 개설 150주년을 맞은 2022년 모습이다. 데라마치쇼핑타운에서 바로 연결된다.

이 길의 상점가는 공통적으로 아케이드 형태를 하고 있다. 전통상점들이 백화점 등 대형마켓에 맞서기 위해 형성했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 소상인들이 스크럼을 짜고 거인을 포위하고 있는 듯도 하고, 말 탄 장군 같은 백화점을 따라 작은 상점들이 대열을 지은 것 같기도 하다.

시조도리는 교토가 수도가 되기 이전부터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있던 신라도래계 하타씨 일족의 대로였다(길을 뜻하는 한자 路(로)는 일본어로 ‘지’이다. 한국어 길(路)의 남부 방언은 ‘질’이다). 중세의 내란 이후 도시 틀이 왕궁이 있는 상경과 서민들이 주로 사는 하경으로 나뉘었는데, 이 시조도리가 하경의 중심축이었다.

옛 노점상의 이름이 남아 있는 시모(下)다치우리 길. 교토고엔(옛 왕궁)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왼쪽 길모퉁이 건물은 교토성공회 성아그네스교회.

‘교토의 부엌’ 니시키시장의 유래도 재미있다. 본래는 세간살이를 팔던 시장통인데 어느 효심 깊은 승려의 ‘똥’ 때문에 발음이 비슷한 ‘똥거리’가 됐다가 이를 불쾌하게 여긴 왕이 이름을 비단(니시키)으로 바꿨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간살이시장이 비단시장으로 된 뒤 깨끗한 지하수가 흐르는 이 일대에 생선장수와 채소장수가 모여들면서 시장의 주 종목이 바뀌었다고 한다. 17세기 초부터 식재료시장으로 이름나기 시작해 지금껏 교토시민들에게 “혼모노(本物·진짜)는 니시키”라는 시장의 명성을 400년째 이어가고 있다.

니시키시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화가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이다. 청과물가게 장남으로 태어난 이토는 가업을 동생에게 넘겨주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시장통의 생선과 채소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니시키거사’(錦街居士)를 호로 삼은 이토의 대표작 <동식채회>(動植綵繪)는 일본의 국보이고, 열반에 든 부처를 무로, 스승을 둘러싼 제자들을 배추 등 각종 채소로 묘사한 유머 넘치는 <과소(채소)열반도>는 니시키시장을 지키는 명신(明神) 같은 작품이다. 그의 시장통 그림들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야채와 생선 그림일 것이다.

니시키시장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니시키텐만구신사. 이 신사 앞에서 신쿄고쿠(新京極)거리가 교차한다.

니시키시장이 있는 니시키고지길 동쪽 끝 니시키텐만구(錦天滿宮) 신사에서 북쪽으로 뻗은 신쿄고쿠는 메이지유신 뒤 왕궁이 도쿄로 옮겨가면서 침체해진 교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1872년부터 조성된 ‘신흥상가’였다. 상점에 이어 소극장 시바야와 미세모노(각종 구경거리로 장사하는 곳) 등이 들어오면서 ‘신번화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교토 토박이들에겐 “촌티 나는” 여행객들이나 가는 시큰둥한 거리였지만 150여년 지난 지금은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이다.

데라마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 방어를 위해 쌓은 토성 옆으로 교토의 절들을 몰아넣는 바람에 생긴 거리 이름이다. 처음엔 세금 징수와 군사시설 활용이 목적이었는데 절 앞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근대에는 고서점과 화랑이 밀집했다. 메인스트리트의 위상을 잃은 지 오래지만 여전히 교토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신쿄고쿠와 밀접한 구간은 아케이드상가로 이어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쇼핑타운을 이루고 있다.

16세기부터 상권이 형성된 데라마치상점가. 지금도 관광객들의 쇼핑 명소이다.

데라마치와 오이케도리 길이 만나는 곳에 교토시청이 자리하고 있다. 교토시청을 기준으로 서쪽 일대는 교토의 원도심 같은 동네이다. 이 지역은 옛 왕궁 자리인 교토고엔 공원과 막부의 정청인 니조성(세계문화유산) 사이이다. 서울로 치면 경복궁 좌우의 북촌이나 서촌 같은 동네다. 내친김에 이 동네도 돌아본다. 신마치도리(新町通)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무로마치도리(室町通)와 니시노토인도리(西洞院通) 길이 나란히 남북으로 달린다.

교토가 내란으로 폐허가 된 뒤 다시 재생하는 과정에서 2조거리 남쪽에 서민 중심의 새로 생긴 동네가 ‘신’(新)마치였다. 신마치길을 따라 들어선 상점들은 품목별로 동업조직인 ‘마치자’(町座)를 조직해 배타적인 상권을 형성했다. 특히 3조, 4조, 7조 신마치의 상인들은 자신들을 ‘마치비토’(町人. 마을 사람)로, 그 외 상인들을 ‘시골장사꾼’(里商人)으로 구별하는 텃세를 부렸다.

교토시청 앞의 데라마치 아케이드. 오른쪽 가게가 360년 전통의 문방구점 규코도(鳩居堂)이다.

교토가 상인의 도시였다는 것은 길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교토 가미교구에 상, 중, 하 세 개의 다치우리도리(立賣通)라는 길이 있다. 다치우리는 우리말로 가판, 또는 노점상이다. 교토의 귀족과 무사계급이 주로 모여 사는 상경에 살길이 막막한 서민들이 들어와 길에 좌판을 펴고 장사한 것이 기원이다. 원래는 조닌들의 동네인 하경에도 다치우리가 있었으나, 막부를 등에 업은 점포상인들의 위세에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한다. 서민 동네에 오히려 노점이 발붙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하경에는 다치우리길이 없다. 이 역시도 교토가 상인의 도시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길의 역사’이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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