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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란 서지학 교수. 뒤편에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져온 고문헌들이 보인다. 임영란 교수 제공
문헌정보학과 진학 뒤 자퇴까지 고민
‘고서 연구’ 서지학 공부 뒤 생각 바뀌어
큰 서점 근무한 뒤 컴퓨터 출판사 운영
IMF 사태로 회사 폐업, 빚더미 올라
2003년 39살에 서지학 대학원 진학 박사 과정 뒤 44살에 대학 연구원·강사
학생 이해 도우려 고서 싸들고 가 수업 학계 ‘아웃사이더’, 그러나 ‘성공한 학자’ 서지학을 가르치는 임영란(60)씨는 항상 고서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간다. “학생들에게 내 책이니 만져보라고 해요. 그때 아니면 학생들이 어디서 고서를 접하겠어요.” 대림대에서 강의하는 임씨는 30대 초반엔 지금과 달리 컴퓨터 전문 출판사를 운영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가 터지면서 회사 문을 닫았고 그는 한동안 신용불량자였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삶의 고비를 벗어나 서지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그는 속리산에서 봄엔 나물을 캐고 가을엔 버섯을 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픈 동생으로 가세가 기울어 대입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부모님이 그에게 교대 진학을 권했지만, 그는 교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선생님이 문헌정보학과를 추천했다. 국립대 문헌정보학과에 들어간 임씨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근로장학생으로도 일했다. 2학년 땐 ‘정보학’과 ‘도서관 경영’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전공 수업이 본인과 맞지 않아 자퇴를 고민했다. ‘서지학’을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서지학은 동양 고서를 대상으로 조사, 연구, 기술하는 학문으로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된다. 임씨는 사서가 된다면 이용자들에게 ‘고문헌’ 관련 정보를 잘 제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2003년 39살에 서지학 대학원 진학 박사 과정 뒤 44살에 대학 연구원·강사
학생 이해 도우려 고서 싸들고 가 수업 학계 ‘아웃사이더’, 그러나 ‘성공한 학자’ 서지학을 가르치는 임영란(60)씨는 항상 고서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간다. “학생들에게 내 책이니 만져보라고 해요. 그때 아니면 학생들이 어디서 고서를 접하겠어요.” 대림대에서 강의하는 임씨는 30대 초반엔 지금과 달리 컴퓨터 전문 출판사를 운영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사태가 터지면서 회사 문을 닫았고 그는 한동안 신용불량자였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삶의 고비를 벗어나 서지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그는 속리산에서 봄엔 나물을 캐고 가을엔 버섯을 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픈 동생으로 가세가 기울어 대입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부모님이 그에게 교대 진학을 권했지만, 그는 교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선생님이 문헌정보학과를 추천했다. 국립대 문헌정보학과에 들어간 임씨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근로장학생으로도 일했다. 2학년 땐 ‘정보학’과 ‘도서관 경영’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전공 수업이 본인과 맞지 않아 자퇴를 고민했다. ‘서지학’을 배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서지학은 동양 고서를 대상으로 조사, 연구, 기술하는 학문으로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된다. 임씨는 사서가 된다면 이용자들에게 ‘고문헌’ 관련 정보를 잘 제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영인본(왼쪽 두루마리 책). 오른쪽은 케이스. 강정민 작가 제공
1986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데, 지도교수가 ㄱ문고의 아르바이트를 권했다. ㄱ문고는 당시 종로서적 다음으로 컸고, 소장한 고서가 많았다. 그는 고서를 정리하는 일을 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인천 부평의 친척 집에서 출퇴근했는데 야근이 많아 1호선 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날이 빈번했다.
“막차 탄 취객들 때문에 끔찍했어요. 막차라 내리지도 못하고….”
더는 취객을 견딜 자신이 없어 사장에게 한 달만 사옥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가 일하는 건물은 적산가옥이라 빈 곳이 많았다. 물론 장판도 안 깔려 있었지만 여름이라 잘 만했다. 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그는 한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적산가옥의 어두운 복도에선 밤이면 귀신이 나올 거 같았다. 얼마 안 되어 그는 정직원이 됐다.
당시 회사는 ‘고서 경매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개막일 아침, 사장이 그를 급히 찾았다. 행사 당일에 담당자가 잠적해버렸다며 사장이 임씨에게 전시회 진행을 맡겼다. 그는 얼떨결에 몇 시간 준비한 뒤 경매전을 진행했다. 당시 신문에 전시 담당자로 임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일 잘하는 그에게 사장은 전시기획, 도록 제작, 고서 경매 등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겼다. 퇴사하겠다고 하면 사장이 월급을 올려주며 만류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그는 건강에도 무리가 와 입사 3년 차에 결국 퇴사하고 다음해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티베트 지역 불경인 <패엽경>. 강정민 작가 제공
1년 뒤 ㄱ문고에서 주 5일 근무에 10시 출근 5시 퇴근하는 일자리를 제안했다. 당시엔 주 6일제로 근무하던 때라 좋은 조건이었다. 다시 입사했지만, 근무시간은 지켜지지 않았고 휴일에도 출근했다. 해가 바뀌자 임씨 남편이 컴퓨터 전문 출판사를 인수했다. 임씨는 ㄱ문고를 퇴사하고 출판사에서 일했다. 출판사 운영 6년 차에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 회사는 문을 닫고 그는 빚더미에 올랐다. 살던 집을 정리하니 아이 둘을 데리고 길에 나앉을 판이라 동생네에 얹혀살아야 했다.
신문에서 ‘학교 도서관 사서 보내기’ 캠페인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학교 사서가 월급은 적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4년간 학생들은 그를 잘 따랐고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우수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2002년 ㄱ문고에서 창립 40주년 전시 담당자를 구한다며 연락해왔다.
“내 손때가 묻은 자료니까 숙명처럼 전시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해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열린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5개월간 전시 업무를 마무리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간 만난 교수나 고서 수집가들이 그에게 공부를 더 하라고 권한 것도 그가 대학원 입학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2003년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그의 나이 만 39살이었다.
<격몽요결> 본문. 강정민 작가 제공
다음해, 임씨는 고서 목록화 작업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그는 대학을 돌며 고문헌 목록 작업을 2007년까지 했다. 작업한 건수만큼 정산받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작업한 대학의 사이트에 들어가 목록 오류를 잡아주고 있다.
박사 과정 뒤 44살에 ㄴ대학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대학의 시간강사로 출강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는 학점 인증제로 문헌정보학이 개설된 숭의여대와 대림대, 동국대 등에서 서지학 등 고문헌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서지학은 한자 지식이 필요해 학생들이 꺼리는 과목이다. 학생들의 이해를 도우려고 운전도 안 하는 그가 관련 고서를 싸 들고 수업에 들어간다. 어떤 해엔 주당 27시간을 강의했다. 사서 커뮤니티에선 그가 열정적인 강사로 소문이 났고, 학교에서 여러 해 우수 강사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굴까?
“제 수업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학생들이죠. 동생이 제가 학생들 이야기할 때 표정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대학의 문헌정보학부에서는 서지학 강의를 개설하지 않는다. 서지학 전임교수도 없고 고서 수집가도 줄면서 서지학은 학문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서지학 관련 정책결정권이 주어진다면 그는 뭘 하고 싶을까?
<해동문헌총록>. 강정민 작가 제공
“그야 박물관과 도서관에 있는 고서 목록을 규격에 맞게 재정비하는 거죠. 특히 박물관에 고서가 많은데 (한국)목록규칙에 맞게 정리가 안 돼서 연구에 활용을 못해요.” 그는 자원봉사로라도 기관에서 소장한 고문헌에 대해 목록화 작업을 하고 싶단다.
서지학을 공부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일까? “필사본으로 된 책의 본문을 끙끙거리고 해석해서 ‘누가’ ‘왜’ 썼는지 그걸 알아내면 희열을 느껴요. 세상에 이걸 아는 사람은 저밖에 없잖아요. 서지학 공부해서 아이들도 키우고 밥도 먹고 살았으니 고맙죠.”
책임감이 강한 그는 서지학계에서 아웃사이더다. 인생의 고비 때문에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전임교수 자리는 꿈꾸지도 않았다. 시간강사지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그를 열정적인 교수로 기억한다. 그래서 꾸준히 연락하는 제자가 많다. 제자들의 반응이나 서지학에 대한 열정을 보면 임영란 교수는 누구보다 성공한 학자이다.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