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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세요

노마드 삶 꿈꾸는 30대 남성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요”

등록 : 2016-04-06 17:57 수정 : 2016-05-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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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30대 직장인 남성입니다. 계절 탓인가요? 아니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때문인가요? 자꾸만 어디인가를 향해 뛰쳐나가고 싶어 일에 집중이 안 됩니다. 회사를 사직하고 오래전부터 꿈꿔온 자유인, 유목민처럼 일하고 싶은데 주변의 만류가 큽니다. 물론 요즘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설마 내가 이상한 건 아니겠죠?  

A. 최근 제가 만난 지인 얘기부터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저를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푹 쉬었습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딸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안심을 했는데, 약 6개월 다니다가 갑자기 사표를 내버린 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낸다는 겁니다. ‘거친 기업문화’가 싫었던 것이 사직의 이유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강제로 술 마시게 하는 회식문화가 끔찍이도 싫다’고 했고 직속상관들의 강압적인 지휘 방식과 언어 표현, 회의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직장을 다니며 감정이 없는 줄 아니? 오로지 가족을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다녔는데, 그 정도 이유로 쉽게 그만두면 어떻게 해?”  

그러한 제 지인의 말에 딸은 이렇게 항변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 이유라니요?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거란 말이에요. 아빠 세대와 우리 세대는 추구하는 것이 다르잖아요? 세상이 바뀌었고, 가치관도 달라요. 결코 그까짓 게 아니란 말이에요. 아빠와 대화하다 보면 벽을 느껴요, 벽!”  

제 지인은 그날 이후로 부녀간이 아니라 마치 타인처럼 생각되고 심각한 단절감에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심각한 세대 갈등입니다. 이렇듯 요즘 한쪽에서는 취업절벽으로 상실감에 빠져 있는가 하면, 또다른 한쪽에서는 직장문화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박차고 나오는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미생>에도 이런 대사가 있던가요?  

“우리는 누구나 가슴 한쪽에 사표를 품고 산다.”  


“내 직업에 만족한다” 15%에 불과  

한국 직장인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역시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표현일 겁니다. 그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죠. 그냥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때려치운다”는 표현을 하는 데서 읽히듯, 뭔가 감정의 진한 골이 깊게 패어 있음을 읽게 됩니다. 혹은 자유인으로 일하고 싶다는 오랜 로망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오래전 그런 표현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조니 페이첵이란 가수가 불렀던 노래 ‘일자리를 구한 뒤 때려치워라!’(Take this job and shove it)가 그것이죠.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고용환경이 환상적이었던 197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그 여파인지 미국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사직하거나 사표를 내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노동시장이 탄력적인 때문이기도 합니다. 근로자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미국에서도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연례 연방 고용전망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근로 만족도는 2010년 72%에서 2014년에는 64%로 뚝 떨어지고 있고, 자기 직업에 만족한다는 근로자는 1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인들 가운데 일부는 요즘 앞의 노래 제목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바꾸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구한 뒤 그 일을 사랑하자!”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뀐 탓이죠. 실리콘밸리처럼 전문 분야의 지식이 있거나 경험이 있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당당히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상당수 다른 분야에서는 노동시장이 위축된 결과입니다.  

한국은 더 심합니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에게 “일에 푹 빠져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도대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는 답이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인사고과와 연봉에 불만이 있어서, 혹은 폭압적인 성과 목표,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일터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불공평한 인사와 직장문화에 대한 불만, 그리고 불안한 미래가 오늘날 한국 직장인들을 지배하는 ‘3불(不)’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탈출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유입니다.  

저도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해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떠돌며 일하고 싶었습니다. 창의적인 인생을 꿈꿨습니다. 오죽하면 회사를 1년 휴직했겠습니까. 스스로 이렇게 다짐하기도 하였죠.  

“직장생활 이만하면 충분해.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훌쩍 떠다니며 자유영혼으로 살고 싶어!”    


유목민에게도 지옥 같은 겨울이 있다  

싱싱한 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유목민처럼 한군데 고착되지 않고 일을 따라 방랑하며 살고 싶다는 것은 제 젊은 날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제 소망처럼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제 계획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또 세상이었죠. 결국 시간이 지나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라는 책을 썼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다가 유목민 전문가인 일본 교토대학 스기야마 마사아키 교수가 했던 말이 눈에 번뜩 들어왔습니다.  

“여름철의 초원은 천국이다. 그러나 일단 추위가 오면 지옥으로 변한다. 유목민들은 오로지 참고 견디며 생활한다. 로맨틱한 것은 없다. 유목민은 흐리멍텅해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유목민 생활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닙니다. 도시의 유목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휴직 때뿐 아니라, 퇴직 후에 일 없는 도시 유목민의 허상을 처절히 실감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쳇바퀴 일상에서 해방된 것이 그렇게도 좋았지만, 그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인들의 넥타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간절했던 겁니다. 1년6개월가량 지나 마침내 작은 일이 하나둘 나에게 찾아오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는 사직은 만류하고 싶은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불만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면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나가도 늦지 않습니다. 게다가 갈수록 시장은 급변해서 블루오션이었던 곳이 하루아침에 레드오션이 되기도 합니다. 장기적인 시장예측은 전문가들에게도 너무도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킬러 콘텐츠가 없다면 더더욱 만류하고 싶습니다.  

직장인의 삶은 고달픕니다. 그러나 일거리가 없는 도시의 유목민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봄바람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그 바람은 무척이나 변덕스러우니까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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