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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가 물씬 나서 자연스레 고향이 느껴지는 곳. 해마다 12월31일이면 일본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그해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그래도 따뜻하게 사람답게 살았노라고 자위하고 싶어 찾는 곳. 바로 도쿄의 명소 아메요코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아메요코는 이색 지대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좌판을 깔아 놓고 쉰 목소리로 손뼉을 쳐 가며 “싸요, 싸. 천엔에 한 보따리!”라고 외치는 일본인이 눈에 띈다.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 정가에서 단 1엔도 깎아 주지 않는 시스템 사회의 일본인으로서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아메요코는 정형화된 일본과는 거리가 멀다.
아메요코 시장에서도 일본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곳이 있다. 번잡한 아메요코 시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서점 두곳이 그곳이다. 한곳은 시장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간단한 문구를 함께 파는 자그마한 서점이고, 나머지 한곳은 시장과 약 50미터 떨어진 오카치마치역 옆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은 시장 상인들이 주 고객이고, 오카치마치역의 대형 서점은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도매 잡화 백화점인 다케야를 찾는 이들이 이용한다. 이 서점들에 가 보면 상점 유니폼이나 앞치마를 두른 점원들이 선 채로 책을 읽는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도쿄의 유명한 서점가인 ‘진보초’의 한 서점에서 일본인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도쿄의 대표적 시장인 아메요코 안에도 서점이 둘이나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몇년 전, 아메요코 시장 옆 주오토리에 새로운 중형 서점이 들어서자 아메요코 시장에서 40여년째 한국 식당을 경영하는 야나가와씨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일본의 저력은 기본산업 기술이 탄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인의 의식 구조에 있다. 개개인은 소소한 것 하나라도 기록하고 그것을 단행본으로 엮어 함께 공유한다. 처음엔 나도 시장통에 왜 저런 서점이 필요한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꼭 서점 갈 일이 생기더라. 그제서야 일본인의 사고방식과 시장 안에 서점이 들어선 이유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이런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단기간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키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래지향적 안목 없이는 결코 시장 안에 서점이 들어설 수 없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신없이 들고 나는 시장통에서 상인들을 세상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매개가 서점이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알지 못했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서점에서 책을 보며 개요나마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문적인 독서가 아닌, 드문드문 책을 읽더라도 그런 습관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더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아메요코 시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크고 작은 서점이 두개 더 있다. 아메요코 시장 길 건너 우에노역 안에 제법 큰 서점이 하나 있고, 아메요코 옆 도로 주오토리에도 중형 서점이 있다. 말하자면 아메요코 시장을 둘러싸고 서점이 무려 네곳이나 있는 셈이다. 수십 미터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편의점이나 전철 구내 매점에 진열된 각종 잡지나 수백여권의 핸드북까지 포함하면, 우에노의 아메요코는 순수 상업지역임에도 곳곳에 책이 깔려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시장 한가운데에 서점이 있다면 사람들과 상관없는 ‘외딴섬’처럼 보이겠지만, 일본에서는 아주 자연스런 모습이다. 온갖 음식점과 유흥업소로 둘러싸인 한국의 대학가 주변과 괜찮은 식당 하나 없는 일본 대학가와 같은 이치다. 음식점은커녕 조용하다 못해 썰렁함마저 풍기는 일본 대학가에서는 유흥업소가 난립한 한국 대학가 풍경을 상상조차 할 수 없듯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장통에서 오도카니 둥지를 틀고 있는 작은 서점도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또한 급행 전철이 서는 웬만한 역 앞에도 당연한 듯 서점이 있다. 이렇듯 일본인들의 삶 속에 서점은 크든 작든, 어떤 환경이든 시스템 사회의 한 부속품처럼 자리 잡고 있다. 글 유재순 일본 전문 온라인매체 <제이피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