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과거는 뒤로 남겨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50대 초반 남성 “어떻게 하면 평생직장 꿈 이어나갈 수 있나요?”

등록 : 2016-04-21 16:21 수정 : 2016-05-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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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여행 책자에 실린 것과 달리 실제 유목민의 삶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는 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직장인들은 회사를 나와야 합니다. 저 역시 몇 년 있으면 퇴사해 또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는 5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필자께서는 회사를 나와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퇴직 이후 평생직장의 꿈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직장은 영원히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여기에 직장인의 비애가 있습니다. 오래 근무하던 직장을 나오면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바뀝니다. 게임의 규칙이란 근무 시간, 능력 평가, 일하는 방식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말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지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다섯 가지 게임 규칙으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첫째, 후광효과를 잊어야 합니다. 잘 알다시피 직업이란 글자는 직(職)과 업(業)의 조합입니다. 회사를 나오면 직은 사라집니다. 타이틀, 직위, 명함, 회사의 이름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오랫동안 내 이름을 수식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죠. 이른바 후광효과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를 혼동합니다. 후광을 곧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죠. 과거와 직위라는 이름의 백미러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백미러를 자꾸 보다 보면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업(業)이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가리킵니다. 그것만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째, 기획 능력입니다. 기획이란 뭘까요? 한국처럼 ‘기획’이란 단어가 흔한 곳도 없을 겁니다. 조직의 컨트롤타워인 ‘전략 기획’을 필두로 영업 기획, 서비스 기획, 마케팅 기획, 사업 기획, 플랫폼 기획 등 한국인들은 기획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한국 직장에서 ‘기획’부서는 1인자의 숨은 뜻을 관철하는 부서입니다. 때문에 그 부서들은 1인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합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기획이란 이처럼 뜻도 다양하고 쓰임새도 달라서 혼동하기 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획은 조금 다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제안 능력’입니다. 나의 아이디어와 무형자산을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기자들은 수습 시절에 선배에게 ‘기사는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발로 쓰는 것’이라고 배웁니다. 기사는 책상 앞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써야 한다는, 현장 정신을 말하는 것인데, 이 표현을 빌리면 ‘제안은 머리가 아니라 피부 감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요즘 일본에서 쓰타야 서점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마쓰다 무네야키는 기획을 정신 활동의 정수라 말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는 제안’이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제안서를 읽는 사람을 설레게 해야 합니다. 감동을 줘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획입니다.


셋째, 스토리텔링 능력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여기서 스토리텔링이란 프로젝트 설명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디어뿐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빠진 기획안은 공허합니다. 궁극적으로 그 일을 해내는 주체는 사람이니까요. 최고의 상품은 ‘나’ 자신입니다. 자기 이름 석자처럼 좋은 브랜드는 없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경험과 지혜, 실패와 역경조차 훌륭한 경력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막힙니다. 기획안에 ‘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어딘가 허전하고 어딘가 겉도는 느낌이 듭니다. 기획서 뒤로 숨지 마세요. 떳떳이 자기 얼굴을 보여 주세요.

넷째, 불확실한 숫자와 익숙해져야 합니다. 직장인이란 일정한 숫자에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월급, 휴가 일수, 출퇴근 시간, 이달의 목표 같은 숫자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수치(數値)가 나쁘면 수치(羞恥) 당하는 존재가 바로 직장인입니다.  

반면 자유직은 출퇴근 시간, 월급, 업무 영역도 일정치 않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두 발을 계속 굴려야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나아가듯이, 하루도 쉼 없이 두 발을 굴려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정상에 오르고서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이대호, 오승환 선수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서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해진 미래도 없구요. 지금 나에게는 공 한개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설지만 빨리 익숙해지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컨트롤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도전 정신입니다. 돈만을 위해서라면, 수치만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굳이 미국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위기조차도 차분히 감내하는 것, 이는 제2의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다섯째, 내 삶의 디자인 능력입니다. 디자인이란 반드시 콧수염을 기르고 야구 모자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업무 공간, 커피숍조차 ‘모바일 오피스’라 즐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하고 다르게 살겠다는 각오입니다.  

원고 독촉이나 강연 기획안 제작하느라 잠자리에 늦게 들더라도 다음 날 새벽이면 설렘으로 눈을 떠야 합니다. 내 아이디어가 퇴짜를 맞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피나는 과정이 나를 전문가와 거장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요. 퇴직 이후에도 성장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습니다. 하루하루 공부해야 합니다. 오래전의 히트곡 한곡으로 연명하는 가수의 모습은 얼마나 처연합니까. 아무리 젊더라도 성장을 멈추고 학습을 포기하면 그 사람이 곧 ‘꼰대’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과거는 뒤에 남겨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렇습니다. 바뀐 게임의 규칙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과거라는 이름의 백미러는 이제 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가 찾아옵니다. 자유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것, 평생 천직이 제가 생각하는 자유입니다. 타이틀, 권력, 연봉, 이런 것 앞에서도 기죽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날마다 설레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자유란 간절함입니다. 절박하다면 자유는 찾아옵니다. 자유의 가장 큰 적은 비교하는 마음입니다.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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