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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수많은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두 정상이 손 꼭 잡고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었고, 손 꼭 잡고 기념행사도 감상했다. 수많은 언론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경쟁적으로 담아냈다. 방송 3사는 물론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등도 실시간 중계했다. 같은 행사를 누가 더 잘 담아내느냐는 언론의 역량을 보여준다. 생중계가 결정된 날부터 각 사들은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두고 전략을 짰다. 한국방송(KBS)은 도라산 현지에서 뉴스를 진행했고, 문화방송(MBC)도 다양한 전문가를 초대해 해설을 곁들였다.
무엇보다 에스비에스(SBS)는 다양한 그래픽으로 시선을 끌었다. 두 정상의 이미지를 하단에 넣고 대화를 요약해주는 등 화면 전체를 활용해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지상파의 책무는 저버렸다. 에스비에스는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수어는 청각장애인들의 언어다. 수어 통역을 하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방송사들은 평소에도 현행법상 수어 방송 의무방영 최소치인 5%만 간신히 지키고 있는데, 에스비에스는 역사적인 날에도 청각장애인을 외면한 것이다.
한국방송1(KBS1)과 문화방송은 생중계에 맞춰 수어 방송도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두 방송사는 대략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수어 방송을 했다. 한국방송은 수어통역사 7명을 투입해 1시간씩 번갈아 방송했다. 문화방송도 3명을 동원했다. 에스비에스는 회담이 끝난 뒤인 밤 11시30분 토론 프로그램에서만 수어 방송을 했다.
에스비에스가 수어 방송을 잊어버렸을 리는 없다. 전날 한 장애인단체에서 “장애인들도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 내용을 알 수 있게 해달라”는 성명까지 냈다. 그래픽 효과를 고려하다 보니, 오른쪽 화면 하단에 들어가는 수어 방송을 빼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남북회담을 잘 담아내는 일에, 청각장애인의 불편함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에서는 수어 통역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화면 오른쪽 하단이 아니라 더 좋은 곳을 찾으려는 노력도 한다. 수어 통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야 한다. 오른쪽 화면에 동그라미가 나온다고 집중에 크게 방해되지도 않는다. 청각장애인을 외면하면서, 남북이 하나 되는 감동의 순간을 잘 전하는 게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남북도 손잡는 시대에, 우리 주변의 손을 잡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myviolle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