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문학의 향기 따라, 한옥의 정취 따라 걷는다

서울 도보관광 코스 성북동 4.2㎞

등록 : 2018-05-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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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이 살던 심우장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는 길

김광섭과 최순우, 이종석 흔적도

이종석 별장

서울시가 만든 ‘서울 도보관광 코스 성북동(길)’은 문학의 향기 따라 걸으며 쉼표 같은 한옥을 돌아보는 길이다. 그 길에 만해 한용운이 살던 ‘심우장’이 있다. 한옥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성북동 비둘기>를 쓴 시인 김광섭도 성북동에서 살았다. 시간도 멈출 것 같은 한옥, ‘최순우 옛집’과 ‘이종석 별장’도 있다. ‘길상사’ 계곡물 소리가 청아하다.

시의 향기를 찾아서

서울 도보관광 코스 성북동(길)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성북로를 따라가며 도로 양쪽으로 난 골목길에 있는 옛 한옥과 절, 시인과 소설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참나무닭나라와 병천순대집 사이 골목길로 140m 정도 올라가면 원익스카이빌이 나온다. 그곳이 김광섭 시인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다. 김광섭 시인은 이곳에 살면서 그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빌라로 변한 그곳에는 시인이 살던 때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빌라 뒤 골목길로 올라가면 시인이 이 마을에 살았던 1960년대 분위기의 오래된 골목길이 있다.

김광섭 집터였던 빌라 건물 뒤

다시 성북로로 나와서 길 따라 올라가다보면 한옥 방문 문살과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들을 배치한 것이 보인다. 이 마을에 살았던 조지훈 시인을 기념하려고 만든 조형물이다. 조형물 제목이 ‘시인의 방, 방우산장’이다. 조지훈 시인은 자신이 살던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했다 한다.

실제로 그가 살았던 집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가 소문난 국수집을 지나 부동산 간판이 있는 도로로 접어들어 50m 정도 가면 도로 왼쪽에 그의 시비가 있다. 그곳에 조지훈 시인의 집이 있었다. 그가 살던 집은 1990년대 후반에 철거됐다고 한다. 시비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그의 시 <승무>가 적혀 있다.

조지훈 시인의 시비 앞 한옥은 <친일문학론>을 펴낸 문학평론가 임종국이 살던 집터다. 임종국은 조지훈 시인의 제자였다.

한옥의 기운

다시 성북로로 나와서 길을 건너 성북동헤어살롱 골목으로 50m 정도 가면 골목 왼쪽에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최순우 옛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가 1976년부터 19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 집은 1930년대 서울 한옥의 전형이다. ‘ㄱ’자 본채와 ‘ㄴ’자 바깥채로 되어 있는데, 두 건물이 마주 보고 있어 터진 ‘ㅁ’자 형태가 된다.

본채 한쪽 문(뒤뜰 쪽 방문) 위에 ‘오수당’이라는 현판이 붙었다. ‘낮잠 자는 방’이라는 뜻이다. 마당 쪽문 위 현판에는 낮잠 자는 노인이라는 뜻의 ‘오수노인’이라는 글자와 함께 ‘낮잠막’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낮잠막’이라고 말하니, 그 방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방바닥에 비껴드는 손수건만 한 오후의 햇살 한 조각을 바라보며 하품을 하고 싶어진다. 한옥은 그렇게 몸과 마음에 숨구멍을 열게 한다.

최순우 옛집

성북로로 다시 나와 길을 건너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조선시대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던 선잠단(현재 공사 중)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길상사’로 가는 길이다.

한때 백석 시인에게 ‘자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고 김영한씨는 그가 운영하던 한식당 대원각이 절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다. 1997년 대원각 자리에 길상사의 문이 열렸다. 길상사에 있는 법정 스님이 살던 집으로 가는 길, 계곡을 옆에 두고 걷는다. 작은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가 청아하다.

수연산방과 심우장

길상사에서 다시 성북로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덕수교회 담장이 끝나는 곳에 낮은 철문이 열려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종석 별장’이 나온다.

조선말 부호로 알려진 이종석이 1900년께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관정’이란 이름을 얻었던 이 별장은 일제강점기에 정지용·이효석·이태준 등 문인들이 모였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종석 별장에서 나와 금왕돈까스전문점 골목으로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 한옥 솟을대문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이다. 이태준은 월북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해인 1988년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달밤> <장마> <밤길> <화관> 등 100여 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정지용·김기림·이상·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가 살던 집은 그가 붙인 당호 ‘수연산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1990년대 말에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꾸몄다. 수연산방 툇마루에 앉아 깊은 마당을 바라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

수연산방에서 나와 성북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길가에 한용운 상이 있는 곳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의자가 놓인 쉼터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이 살던 집터였다. 그곳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살던 집, ‘심우장’이 나온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마당 한쪽에는 만해가 직접 심었다고 전하는 향나무가 있다. 한옥 처마 아래 걸린 심우장 편액은 서예가 오세창이 썼다. 마루에 앉아 멋들어지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를 올려본다. 무성하게 자란 푸른 솔잎을 배경으로 처마가 날개를 폈다. 처마에서 머리를 내민 빗물 통에 누군가 눈을 만들어 놓았다. 화룡점정, 심우장 처마가 큰 새가 되어 푸르른 솔숲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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