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그렇다면 마음을 먼저 기부해 보세요, 조건없이

30대 여성 “친구들이 자꾸 내 곁을 떠나가네요”

등록 : 2016-05-04 18:24 수정 : 2016-05-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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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얼마 전에 친구와 절교했어요. 오래된 친구여서 마음의 상처가 깊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제 주변에서 하나둘 친구들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범하게 넘기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제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것들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것은 아닌지 무척 속상합니다.  

A. 우선 제가 좋아하는 음악 함께 들어 볼까요. 캐럴 킹이 부른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You’ve got a friend)라는 제목의 오래된 팝송입니다.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가 힘들고 곤란할 때/ 사랑스런 마음이 필요할 때 / 그리고 도무지 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때/ 그때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노래가 말하듯 가족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가 바로 친구이지요. 외롭고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친구를 찾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친구를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함께 나누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우정은 최고의 치유책, 최상의 힐링이지요.  

평생을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행운입니다. 아니 성공한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네요.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게 친구이고 헤어지기 쉬운 것 또한 친구입니다. 종종 가짜 우정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저도 고백하겠습니다. 벌써 3년이 되어가는군요. 제가 언론인이라는 직업과 대표이사라는 직함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편으로 홀가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안을 떨치지 못해 심리적으로는 엉거주춤한 상태였습니다. 몇몇 친구(라고 믿었던)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음색은 이전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바쁜데 어떻게 하지? 다음에 연락할게!”  

그때서야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와 ‘다음에 연락한다’는 메시지는 곧 보고 싶지 않아 둘러대는 외교적 수사라는 것을. 진짜 만날 뜻이 있으면 바쁘더라도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지요.  

우리 사회는 친구라는 말을 남발합니다. 그저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로 부르거나 나이가 같다고 만나자마자 친구로 말 트자는 사람도 종종 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동창생이고 동년배일 뿐입니다. 진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만남을 통해 뭔가를 바라느냐, 즉 대가의 유무 차이입니다. 뭔가 바란다면 그것은 우정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지요. 대부분의 큰 사기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아닌, 가까운 이웃에게 당합니다.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전화 한 통 없다면 그 역시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를 가장한 비즈니스 관계였을 뿐이죠. 당시 선배 한분이 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앞으로 섭섭한 일이 많이 생길 것인데,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당신의 업보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해 준 게 정말 있었는지 되돌아보세요.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아, 정말이지 얼굴이 후끈거렸습니다.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 정곡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저의 얼굴이었던 겁니다. 비로소 저는 세상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나이를 먹을수록 휴대전화기의 전화번호는 늘어나지만, 진정한 친구는 점점 줄어듭니다. 인생의 패러독스, 삶의 역설입니다. 갈수록 친구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줄어들고 새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고 합니다. 특정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특히 학교 졸업, 결혼과 아이를 낳으면서, 회사를 이동할 때, 이혼이나 배우자 사망, 사업 실패 같은 인생의 전환기에 친구들이 많이 떨어져나간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학력, 아이큐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친구 관계에 만족하는 비율이 떨어졌다는 <영국 심리학회지>(the British Journal of Psychology)의 연구 결과입니다. 아마도 사교를 맺는 사회활동보다는 연구나 프로젝트 같은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론도 곁들여졌습니다. 흔히 ‘가방끈 길이’와 효도, 그리고 우정은 반비례한다는 우스개가 있는데, 그런 말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음을 과학적인 연구에서 입증하고 있는 셈이죠. <영원한 친구>(Best Friend Forever)의 저자이기도 한, 아이린 러바인 뉴욕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내 친구는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더 이상 공통분모가 없어지는 것뿐이에요.”  옛 친구와는 길이 달라져서 인연이 다한 것뿐,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제프리 그레이프 교수의 연구 결과인데, 남자가 여자보다 친구를 사귀는 데 훨씬 서투르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요. 할머니들은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데 비해, 상대적으로 할아버지들은 적습니다.  

언제인가 한국 방송가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연예인 박경림씨의 인맥 비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인간관계 제1원칙은 이렇다고 합니다.  

“내가 남에게 준 것은 잊어버려라. 하지만 내가 남에게 받은 것은 확실히 기억해라!”  

그러면서 그녀는 ‘불쑥불쑥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강한 척하지만 무척 약한 사람들입니다. 서양인들의 비즈니스 금언 한마디가 떠오르는군요. ‘Give & Take’(주고받기). 물론 우정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 표현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이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주는 게 먼저, 받는 것은 나중입니다. 그래야 비즈니스가 성사됩니다.  

친구 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친구는 내가 먼저 마음을 주어야 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다면 과감히 그 ‘케미스트리’(화학반응)를 상대방에게 먼저 전해 보시길 권합니다. 금방 유대감이 생길 겁니다. 앞서 ‘Give & Take’에서 ‘Give’라는 단어를 ‘기부’(寄附)로 바꿔 보고 싶습니다. 기부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그렇듯, 우정도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손 교수 이메일(ceonomad@gmail.com)로 연락해 주세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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