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솔 향기, 바람이 통하는 편한 숲길

강북구 북한산둘레길 1코스와 2코스 일부 구간 4㎞

등록 : 2018-08-02 14:36

크게 작게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 앞

건널목 건너 직진하면 둘레길 안내판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 길

소나무숲길 소나무

꿈틀거리며 자라는 소나무를 보며 숲길을 걷는다. 그 길에 소나무처럼 늘 푸르게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역사의 뿌리가 있으니,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이 수련하던 봉황각과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4·19민주묘지가 그곳이다. 그리고 971그루 소나무 숲에서 걸음을 멈춘다.

백운천을 거슬러올라 만나는 봉황각


백운천 옆길

북한산둘레길 1코스(소나무숲길)와 2코스(순례길)의 일부 구간을 더해 약 4㎞ 구간을 걷는다.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 앞 건널목을 건너서 직진하면 북한산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 옆 이정표를 따라 백운천을 거슬러 걷는다.

도선사 부근에서 흘러내린 백운천이 주택가 길옆으로 흐른다. 어떤 집 담벼락을 뚫고 나온 소나무가 시냇물 쪽으로 비스듬히 굵은 줄기를 뻗었다. 담을 만들 때 소나무를 자르지 않고 담에 구멍을 내서 소나무를 자라게 한 집주인의 마음을 읽는다.

물길을 거슬러올라갈수록 물길 폭이 좁아진다. 옛 시골 여름 물비린내 나던 시냇가 풍경이다. 바위와 크고 작은 돌, 모래, 물풀이 있는 뜻밖의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시냇물을 바라보던 눈길을 하늘로 돌린다. 백악산(북악산) 인수봉과 백운대가 파란 하늘 아래 빛난다.

봉황각

불볕더위를 퍼붓는 태양에 맞서서 붉게 빛나는 만남의 광장 백일홍을 뒤로하고 봉황각으로 향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인 봉황각은 천도교 제3세 교조 손병희가 1912년에 세웠다.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이 수련하던 곳이다. 1912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전국의 천도교 고위 교역자 483명이 이곳에서 수련했다. 1919년 3·1독립운동도 이곳에서 구상했고, 천도교 지도자들은 3·1독립운동 당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봉황각이란 이름은 천도교 제1세 교조 최제우가 남긴 시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에서 딴 것이라 한다. 현판 글씨는 오세창이 썼다. 봉황각 부근에 손병희 선생의 묘가 있다. 봉황각 마당으로 올라서기 전 왼쪽에 비틀리고 구불거리며 자란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봉황이 앉아 있는 듯, 막 날개를 펴려는 듯, 보는 방향과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소나무를 보며 걷는 길

솔밭공원 옆에서 본 백운대와 인수봉

봉황각에서 나와 만남의 광장 쪽으로 가다가 소나무숲길 이정표를 따르다보면 소나무숲길을 알리는 아치형 문이 나온다. 소나무숲길이라는 이름은 북한산둘레길의 여러 길 가운데 소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길은 대부분 숲 그늘이라 땡볕 길보다 덜 덥다. 폭염에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지만, 바람이 통하는 길목을 만나면 숲 그늘을 지나는 바람에 더위가 가신다. 제멋대로 굽고 비틀리며 자란 소나무는 외떨어져 있어도, 무리 지어 자라는 모습도 다 운치 있다.

바닷가 해송숲처럼 소나무 군락에 난 길은 아니지만, 길을 걷다보면 운치 있는 소나무를 가끔 만난다.

한 뿌리에서 두 줄기로 자라 높은 곳에서 구불거리며 가지를 뻗은 소나무,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사행천을 닮은 소나무, 한 아름 굵은 줄기가 곧게 자란 소나무, 애국가의 노랫말 ‘철갑을 두른 듯’이 어떤 형상인지 금세 알 수 있는 소나무… 갖은 모습의 소나무가 그 길에 있다. 어떤 나무는 길을 걷는 사람을 마중 나온 냥 길 가운데 서 있고, 어떤 나무는 길을 안내하는 목책 밖 먼 곳에 홀로 서 있어 사람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다.

국립4·19민주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북한산둘레길 2코스 순례길 4·19전망대에서 본 국립 4·19민주묘지 전경

소나무숲길이 끝나는 솔밭공원 옆에 식당이 몇 곳 있다. 20년 된 국밥집에 들러 뚝배기에서 설설 끓는 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열치열, 속이 뜨거워지니 35도가 넘는 폭염도 견딜 만했다.

폭염을 뚫고 북한산둘레길 2코스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짧은 오르막 계단길을 올라서서 숲그늘을 700m 정도 가다보면 도착지점인 4·19전망대가 나온다. 1960년 4월,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사람들이 묻힌 국립 4·19민주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민의 이름으로 일군 4·19민주혁명의 역사적인 의미를 불꽃으로 형상화한 조형물 ‘정의의 불꽃’이 보인다. 4월혁명 기념탑과 분향소, 그 앞에 양쪽으로 줄 선 철탑 조형물들, 그리고 멀리 푸른 언덕에 작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글자 ‘4·19 정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역사의 뿌리가 이 길의 처음과 끝에 뻗어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서 왔던 길로 돌아가 솔밭공원에 도착했다. 소나무숲 그늘에서 작은 꽃들이 쉰다. 푸른 풀밭에 피어난 붉은 원추리꽃이 밝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 이곳저곳으로 뛰고 달린다.

공원 한쪽 바닥분수에서 솟아나는 물줄기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미 온몸이 다 젖었다. 아이들 웃는 얼굴이 햇볕보다 밝고 맑다. 그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 모든 사람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놀게 하고 쉬게 하는 그곳은, 971그루의 소나무가 만든 소나무 숲이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