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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마을 깊숙한 곳의 왕릉
푸른 숨을 쉬고 싶은 사람 기다려
가족 나들이, 연인 산책, 사색의 공간
왕릉은 도심의 오아시스
선릉
가족의 나들이 장소, 연인들의 산책 코스, 혼자만의 사색의 공간, 왕릉은 도심의 오아시스다. 빌딩 숲, 마을 깊숙한 곳, 쉴 새 없이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옆에 자리잡은 왕릉은 푸른 숨을 쉬고 싶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 있는 조선의 왕릉을 찾았다.
빌딩 숲속 푸른 숲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를 감싼 건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들이 만든 숲이다. 숲의 비호 아래 쉬는 듯 걷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와 흰 머리카락 곱게 넘긴 할머니는 숨 쉬는 속도로 걷다가 긴 의자가 나오면 나란히 앉아 쉰다. ‘삐쫑삐쫑’ 새소리 명랑한 숲에서 서로 꼭 안은 연인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건 500년 넘은 은행나무다. 강남의 중심이자 테헤란로가 지나는 강남구 선릉역 빌딩 숲 한쪽에 조선 시대 제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 제11대 임금 중종의 능인 ‘정릉’이 있다. 이곳의 공식 이름은 ‘서울 선릉과 정릉’이고 보통 ‘선정릉’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선릉이라고 알려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를 감싼 건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들이 만든 숲이다. 숲의 비호 아래 쉬는 듯 걷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와 흰 머리카락 곱게 넘긴 할머니는 숨 쉬는 속도로 걷다가 긴 의자가 나오면 나란히 앉아 쉰다. ‘삐쫑삐쫑’ 새소리 명랑한 숲에서 서로 꼭 안은 연인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건 500년 넘은 은행나무다. 강남의 중심이자 테헤란로가 지나는 강남구 선릉역 빌딩 숲 한쪽에 조선 시대 제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 제11대 임금 중종의 능인 ‘정릉’이 있다. 이곳의 공식 이름은 ‘서울 선릉과 정릉’이고 보통 ‘선정릉’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선릉이라고 알려졌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정릉
선정릉 입구로 들어가서 선릉 방향으로 간다. 재실(제례를 준비하던 곳) 건물 옆 500년 넘은 은행나무를 보고 역사문화관을 지나면, 성종의 능으로 향하는 홍살문이 보인다. 능 옆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간다. 능을 지키는 문인석 무인석이 강남의 빌딩을 바라보고 서 있다.
성종의 능에서 정현왕후의 능으로 가는 길에 푸른 나무와 파란 하늘이 빛난다. 정현왕후의 능은 소나무 숲에 있다. 능을 지키듯, 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 듯 자란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현왕후의 능에서 중종의 능인 정릉으로 가는 길은 선정릉에서도 손꼽히는 산책길이다.
수양버들 숲에 오솔길이 났다.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 아래 풀밭이 촉촉하다. 그 숲, 그 길가 긴 의자는 그 자체가 쉼표다. 잔디의 푸른빛이 능의 봉분에서 정자각이 있는 곳까지 넓게 퍼져 흘러내리는 것 같다. 능을 에워싼 강남의 빌딩들 앞에 선 붉은 홍살문 하나 오롯하다.
선정릉 수양버들 숲.
능 뒤로 이어지는 산책길
왕복 10차선이 넘는 서초구 헌릉로 헌인릉 입구 삼거리에서 400m 정도 들어가면 조선 제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 제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인 ‘인릉’이 나온다. 이곳의 공식 이름은 ‘서울 헌릉과 인릉’이다. 사람들은 줄여서 ‘헌인릉’이라고 한다.
헌인릉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인릉이 보인다. 인릉 오른쪽에 헌릉이 있다. 인릉에서 헌릉으로 가는 길 옆 숲은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오리나무 숲이다.
헌릉
인릉
헌릉의 비각에는 신도비(왕의 공덕을 새긴 비석)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보물 제1804호로 지정된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이고 다른 하나는 숙종 때 세운 신도비다. 원래의 신도비가 임진왜란 때 손상되자 숙종 때 새 신도비를 세웠다.
태종 헌릉 신도비.
헌인릉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은 헌릉 뒤를 한 바퀴 도는 숲길이다. 헌릉 뒤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600m 정도 된다. 헌릉 홍살문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면 키 큰 소나무들이 풍경을 이룬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나오다 보면 헌릉과 인릉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왼쪽에 있는 계단은 헌릉, 오른쪽 계단은 인릉으로 가는 길이다. 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능 아래서 보는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도 능 뒤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로 유명하다. 성북구 마을버스 성북22번 종점에서 내려 조용한 마을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정릉 출입문이 나온다. 높은 언덕 같은 능 앞에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넓은 마당이 있다. 긴 의자는 어린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쉼터다.
산책로 출발 지점은 능을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있다. 넓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은 점점 좁아지다가 이내 오솔길이 된다. 오솔길과 나무로 만든 계단이 숲과 잘 어울린다.
숲속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보다 앞서 걸으며 재잘댄다. 여러 갈래 길 중 가장 긴 코스인 2.5㎞ 정도 되는 길을 다 걸은 아이들은 산책길이 끝나는 재실 옆 380년 된 느티나무 앞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쌩쌩하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뒷산 숲길.
고즈넉한 능역, 걷기 좋은 숲길
텅 비었을 때 가득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왕릉이다. 사람 한 명 없는 왕릉은 그 자체로 완성된 풍경이 된다. 홍살문과 참도, 정자각, 비각, 능의 봉분, 석물들 그리고 그곳을 감싼 숲, 그 숲에 난 오솔길, 어느 것 하나 빠지면 그 풍경이 무너질 것 같다.
규모가 작을수록, 사람이 없을수록 왕릉은 더 고즈넉하다. ‘강릉’(조선 제13대 임금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은 경기도 남양주시, 구리시와 가까운 곳에 있다(삼육대학 바로 옆). 서울 도심에서 멀기도 하고 능역도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이 덜 찾는다. 그만큼 왕릉에 깃든 풍경의 고즈넉한 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강릉에서 도로를 따라 약 1.2㎞ 떨어진 곳에 ‘태릉’(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이 있다. 태릉도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1.8㎞ 숲길은 10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개방된다.
태릉 산책로에 핀 구절초
서울에 있는 조선의 왕릉 가운데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의릉’(조선 제20대 임금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이다. 성북구 석관동 지하철 6호선 돌곶이역에서 이문삼거리 사이 이문로, 상가와 음식점이 있는 도로에서 조용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어 가다보면 의릉이 나온다.
의릉을 감싸고 있는 산이 천장산이다. 천장산 기슭에 난 중간 산책로(산책로에 160년 된 향나무가 있다)도 좋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산길이 더 좋다. 오르막 계단길이 다소 힘들 수도 있으나 구간이 길지 않다. 아기자기한 산길을 오르다보면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시야가 터진다. 정상에 서면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락산과 불암산도 보인다. 몸을 움직여 바라보면 한강 건너 송파구 일대와 롯데월드타워도 보인다.
‘천장산’, 하늘이 감춘 산이란 뜻이다. 하늘이 감추려 한 건 무엇일까? 해발 140m 정도 되는 낮은 산 앞에 펼쳐지는 이런 풍경은 아닐까? 왔던 길을 되짚어 능으로 내려가는 길, 나무 사이로 능의 일부와 정자각이 보인다. 의릉에 묻힌 경종의 엄마가 바로 사극의 단골 주인공인 장희빈이다.
의릉 뒤 천장산 산책로.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