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첫 느낌과 고유한 색깔이 중요
가볍거나 무겁거나 괜찮아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독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라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킨 뒤에 남는 깊은 여운, 그것을 가리켜 와인(포도주) 전문가들은 영어로 ‘피니시’라 한다. 글도 마찬가지여서 멋진 문장을 만나면 잠시 그 환상적인 느낌을 간직하고 싶다.
와인은 여러모로 글쓰기와 공통점이 많다. 멋있기는 하지만 선뜻 다가가기 힘들다. 그런데도 종종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와인이고 글쓰기다. 직장의 업무용 글쓰기든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글이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른바 ‘인정 욕구’다. 자아 발견 열망도 크다. 글쓰기를 배우려는 수요는 날이 갈수록 커지지만 공교육에서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가르치는 분마다 백인백색 주장이 달라서 곤혹스럽습니다.”
내가 서울시 50플러스 산하의 교육기관이나 서울시민대학 같은 공공기관의 글쓰기 교양 강좌에서 가끔 듣는 하소연이다. 훌륭한 와인처럼 좋은 글 쓰는 쉬운 기준은 없을까? 와인에 비유해 5가지로 크게 정리해본다. 먼저, 첫 느낌의 중요성이다. 사람 관계가 그러하듯 와인이나 글쓰기도 첫인상이 80%를 지배한다. 훌륭한 포도주를 입술에 적시면 더 다가가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만나면 자꾸 읽고 싶어지며 마음의 의자를 바짝 당기게 한다. 반대로 시큼한 맛이 나는 와인은 마시기 싫어 처음부터 멀리하게 된다. 상투적인 문장은 상한 와인과 같다. “뻔한 대신 펀(fun)하게 시작하세요!” 둘째, 고유한 색깔이다. 주로 혀의 미각에 의존하고 ‘원샷’을 즐기는 한국식 음주법과 달리 와인은 빛깔을 즐기고 코로 냄새를 맡은 뒤 그다음에 혀로 살짝 음미한다. 가장 간편한 선택 기준은 색상이다.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 ‘레드 와인’, 노란색에 가까우면 ‘화이트 와인’, 그리고 부드러운 분홍색이 보이면 ‘로제 와인’이라 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와인에는 저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루비 레드 색상을 띤다. 매혹적인 갈색이라고도 한다. 매력이 있는 글에서도 다른 색이 보인다. 곧 글쓴이의 개성이다. “당신의 글에서 당신만의 색을 보여주세요!” 셋째, 가벼운 와인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와인은 묵직한 대로 다른 맛이 있다. 관건은 균형과 조화다. 알코올·산도·농도·타닌의 4개 요소가 조화와 균형을 이뤘을 때 전문가들은 ‘좋은 와인’이라 평한다. 균형을 잃으면 거칠거나 텁텁하다. 반대로 알코올이 너무 약하면 힘없는 와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가벼운 글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글은 묵직한 대로 맛이 있어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됩니다!” 네 번째, 과장된 표현의 경계다. 와인을 삼키고 난 뒤 목젖을 넘겨 지속되는 그 마지막 뒷맛이 얼마나 길게 지속되느냐를 초 단위로 측정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어로 ‘코달리’(caudalie)라 표현하는 우아한 느낌이다. 이 말은 동시에 와인이 친해지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와인에 대한 절대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하고 싶은 나머지 실제 이상의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인데, 가끔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볼썽사납다. 신뢰를 잃기 쉽다. 남녀 관계를 할 때 거짓된 감정 표출처럼 말이다. 영어권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스스로 아는 것 이상의 과도한 표현, 즉 ‘오버스테이트먼트’를 삼가라고 가르치는 이유다. “잘난 척하고 싶은 유혹을 삼가라!” 다섯 번째, 글에서 나의 이야기, 나만의 목소리가 실려 있어야 한다. 좋은 와인 산지일수록 다른 작물이 자라기 힘든 토양이다. 물이 잘 빠져야 하는 까닭인데, 그런 토양에서 포도나무는 강인하게 영양분을 빨아올린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겨낸 뒤에 비로소 신의 물방울로 완성된다. 와인의 역설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에서도 좋은 글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이야기도 커진다. 훌륭한 와인을 마시면 병에 붙어 있는 레이블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좋은 글에서도 글쓴이의 얼굴이 나타난다. “역경이란 단어를 뒤집으면, 글쓰기의 훌륭한 경력이 된다. 아름다운 내 얼굴을 감추지 말자!” 와인처럼 글쓰기도 처음과 마지막이 너무도 중요하다. 마지막 문장은 메시지다. 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첫 문장으로 설레게 하고, 마지막 문장으로 울림이 있게 하라!” 하지만 이 말이 오히려 독이다. 글쓰기에 익숙지 못한 초보자들은 이 말에 그만 기가 죽는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와인에 쉽게 다가가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거다. 즐기면서 하나둘 배우면 된다. 탁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즐기면서 날마다 쓰는 거다. 꾸준함이 글쓰기의 탁월함을 만들어줄 테니까. 좋은 와인처럼 글쓰기도 명상과 성찰에 유용하다. 상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와 만나야 한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공감 글쓰기' 강좌를 하면서 수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과 만났다. “저는 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고 싶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언니는 농아였습니다. 저는 그 언니의 통역사였습니다. 말 없는 소통에 대해 쓰고 싶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왜 자꾸 떨어지는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싫었는데, 이제 다시 일어나고자 합니다.” 글쓰기는 가장 좋은 치유 수단이다. 힘들지만 글쓰기 강좌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가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깊어가는 가을, 와인 한잔하면서 새로운 나와 만나보자!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내가 서울시 50플러스 산하의 교육기관이나 서울시민대학 같은 공공기관의 글쓰기 교양 강좌에서 가끔 듣는 하소연이다. 훌륭한 와인처럼 좋은 글 쓰는 쉬운 기준은 없을까? 와인에 비유해 5가지로 크게 정리해본다. 먼저, 첫 느낌의 중요성이다. 사람 관계가 그러하듯 와인이나 글쓰기도 첫인상이 80%를 지배한다. 훌륭한 포도주를 입술에 적시면 더 다가가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만나면 자꾸 읽고 싶어지며 마음의 의자를 바짝 당기게 한다. 반대로 시큼한 맛이 나는 와인은 마시기 싫어 처음부터 멀리하게 된다. 상투적인 문장은 상한 와인과 같다. “뻔한 대신 펀(fun)하게 시작하세요!” 둘째, 고유한 색깔이다. 주로 혀의 미각에 의존하고 ‘원샷’을 즐기는 한국식 음주법과 달리 와인은 빛깔을 즐기고 코로 냄새를 맡은 뒤 그다음에 혀로 살짝 음미한다. 가장 간편한 선택 기준은 색상이다.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 ‘레드 와인’, 노란색에 가까우면 ‘화이트 와인’, 그리고 부드러운 분홍색이 보이면 ‘로제 와인’이라 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와인에는 저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루비 레드 색상을 띤다. 매혹적인 갈색이라고도 한다. 매력이 있는 글에서도 다른 색이 보인다. 곧 글쓴이의 개성이다. “당신의 글에서 당신만의 색을 보여주세요!” 셋째, 가벼운 와인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와인은 묵직한 대로 다른 맛이 있다. 관건은 균형과 조화다. 알코올·산도·농도·타닌의 4개 요소가 조화와 균형을 이뤘을 때 전문가들은 ‘좋은 와인’이라 평한다. 균형을 잃으면 거칠거나 텁텁하다. 반대로 알코올이 너무 약하면 힘없는 와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가벼운 글은 가벼운 대로, 묵직한 글은 묵직한 대로 맛이 있어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됩니다!” 네 번째, 과장된 표현의 경계다. 와인을 삼키고 난 뒤 목젖을 넘겨 지속되는 그 마지막 뒷맛이 얼마나 길게 지속되느냐를 초 단위로 측정하기도 하는데, 프랑스어로 ‘코달리’(caudalie)라 표현하는 우아한 느낌이다. 이 말은 동시에 와인이 친해지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와인에 대한 절대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과시하고 싶은 나머지 실제 이상의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인데, 가끔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볼썽사납다. 신뢰를 잃기 쉽다. 남녀 관계를 할 때 거짓된 감정 표출처럼 말이다. 영어권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스스로 아는 것 이상의 과도한 표현, 즉 ‘오버스테이트먼트’를 삼가라고 가르치는 이유다. “잘난 척하고 싶은 유혹을 삼가라!” 다섯 번째, 글에서 나의 이야기, 나만의 목소리가 실려 있어야 한다. 좋은 와인 산지일수록 다른 작물이 자라기 힘든 토양이다. 물이 잘 빠져야 하는 까닭인데, 그런 토양에서 포도나무는 강인하게 영양분을 빨아올린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와 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겨낸 뒤에 비로소 신의 물방울로 완성된다. 와인의 역설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에서도 좋은 글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이야기도 커진다. 훌륭한 와인을 마시면 병에 붙어 있는 레이블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생산자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좋은 글에서도 글쓴이의 얼굴이 나타난다. “역경이란 단어를 뒤집으면, 글쓰기의 훌륭한 경력이 된다. 아름다운 내 얼굴을 감추지 말자!” 와인처럼 글쓰기도 처음과 마지막이 너무도 중요하다. 마지막 문장은 메시지다. 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첫 문장으로 설레게 하고, 마지막 문장으로 울림이 있게 하라!” 하지만 이 말이 오히려 독이다. 글쓰기에 익숙지 못한 초보자들은 이 말에 그만 기가 죽는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와인에 쉽게 다가가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거다. 즐기면서 하나둘 배우면 된다. 탁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즐기면서 날마다 쓰는 거다. 꾸준함이 글쓰기의 탁월함을 만들어줄 테니까. 좋은 와인처럼 글쓰기도 명상과 성찰에 유용하다. 상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와 만나야 한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공감 글쓰기' 강좌를 하면서 수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과 만났다. “저는 2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고 싶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언니는 농아였습니다. 저는 그 언니의 통역사였습니다. 말 없는 소통에 대해 쓰고 싶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왜 자꾸 떨어지는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싫었는데, 이제 다시 일어나고자 합니다.” 글쓰기는 가장 좋은 치유 수단이다. 힘들지만 글쓰기 강좌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가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깊어가는 가을, 와인 한잔하면서 새로운 나와 만나보자!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