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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감독의 ‘꾸역꾸역 정신’
힘들어도 자기만의 길 가는 열정
자유를 외치면서 유명 인사의 추천에
맹목적 추종은 진정한 자유 아냐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처럼, 어쩌다 보니 신문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문재(글재주)가 출중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터라 몇 달 하다 그만둘 줄 알았는데 햇수로는 어느덧 4년, 정확하게는 만 3년 3개월이나 되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마감일이 되면 어김없이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쓰다보니 어느덧 나이 앞의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원래도 많지 않았던 머리카락 숫자는 더욱더 줄어들었다. 이 칼럼의 마지막 회를 앞두고 무엇을 쓸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40대 초반의 여성 직장인의 질문을 듣게 되었다.
“저도 무료한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글 쓰면서 창의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원고를 쓸 수 있습니까? 비법을 가르쳐주세요.”
왜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때려치운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매일 숨 막히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출퇴근하다보니 칼럼 연재가 우아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육체노동이다. 메마른 오렌지의 마지막 즙을 짜내듯, 감성의 끝까지 짜내야 한다. 오죽하면 자신을 가리켜 ‘글로생활자’라 자임했겠는가? 창밖에 화사한 꽃비가 유혹하더라도 ‘꾸역꾸역’ 원고지를 채워야 한다. 직장인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로 꾸역꾸역 출근하듯 그렇게 한다. 직장인들처럼 나도 가끔은 ‘꾸역꾸역 인생’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다. 비루한 일상을 표현하는 말로 들렸던 ‘꾸역꾸역’이 가끔은 인생 역전의 감동과 연결되기도 한다. 월드컵 축구 U-20팀의 정정용 감독과 선수들이 만들어낸 스토리다. “우리는 꾸역꾸역 팀입니다. 어느 경기 하나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팀을 만나도 쉽게 지지 않을 겁니다.” 대회 초반 정 감독은 ‘흙수저’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언더독’이라 불렀던 이유다. 땀과 열정이 녹아든, 구수하고 향토색 짙은 언어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이나 글을 가리켜 아포리즘이라 한다. 자기만의 경험에서 우러난 짧고도 분명한, 그러면서도 울림이 있는 한두 마디를 뜻한다. 진정한 리더란 아포리즘을 아는 사람이다. 인공 조미료를 뿌린 것 같은 가공된 언어에 지친 사람들은 그의 솔직한 표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이끄는 축구팀은 기적처럼 결승에 올랐고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는 그 삶을 자기만의 언어로 예찬하고 있었다. 그는 성공의 비법을 멀리서 찾지 않았고, 꾸역꾸역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데서 찾았다. 주눅 들 대로 주눅 들어 있던 이 땅의 청년들, 삶이 무료해지고 우울한 이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 감독은 소통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리더다. 나이 어린 선수들과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 개념의 소통을 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런 추상적 개념 대신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에 주목해보자. 무엇보다 경기장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파악하는 공감 능력이다. 선수 시절 그 역시 주목받지 못했고, 부상으로 일찍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으며 철저히 흙수저로 일관해왔기에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알았다. 아픔과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이 곧 공감이다. 저명한 경영전문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많은 리더는 착각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밝고 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곧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글과 말에 능한 것과 소통 능력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 능력자는 입이 아니라 귀를 빌려주는 사람이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귀를 닫는다. 우선 마음이 열려야 귀가 열리고, 귀가 열려야 입이 열리는 법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스트레칭이 중요하다. 운동하기 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스트레칭을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경직된 마음의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는다. 살다보면 넘어지는 순간이 있다. 피하고 싶지만 고통은 다가온다. 넘어지지 않으려다 더 크게 다치기도 한다. 빨리 다시 일어나려고 하다 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스트레칭 부족과 서두름의 결과다. 마음을 푸는 데 최고의 스트레칭은 유머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진지하기만 하면 금방 질식할 것 같아 도망가고 싶다. 며칠 전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라는 일명 ‘마짱’이라 불리는 84살 일본 할머니가 쓴 책인데, 이처럼 유머 있는 책 제목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누구나 나이 먹는 것은 두렵지만, 그는 60살 퇴직 후 오히려 넘치는 호기심을 채우며 하고 싶은 일을 척척 해나간다.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식단을 조절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일부러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 그저 ‘자신이 즐거운가?’를 묻고 거기에 따르라 조언한다. 즉 자기 방식으로 살라는 것이다. 누구나 ‘내 삶의 주인 되기’를 원한다. 경제적 자립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흔히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생각과 판단을 타인에게 의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유명 인사의 추천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고, 타인의 큐레이팅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힘들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영원한 자유인 괴테가 말한 ‘새벽 3시의 정신’이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끝>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l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왜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때려치운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매일 숨 막히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출퇴근하다보니 칼럼 연재가 우아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육체노동이다. 메마른 오렌지의 마지막 즙을 짜내듯, 감성의 끝까지 짜내야 한다. 오죽하면 자신을 가리켜 ‘글로생활자’라 자임했겠는가? 창밖에 화사한 꽃비가 유혹하더라도 ‘꾸역꾸역’ 원고지를 채워야 한다. 직장인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로 꾸역꾸역 출근하듯 그렇게 한다. 직장인들처럼 나도 가끔은 ‘꾸역꾸역 인생’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다. 비루한 일상을 표현하는 말로 들렸던 ‘꾸역꾸역’이 가끔은 인생 역전의 감동과 연결되기도 한다. 월드컵 축구 U-20팀의 정정용 감독과 선수들이 만들어낸 스토리다. “우리는 꾸역꾸역 팀입니다. 어느 경기 하나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팀을 만나도 쉽게 지지 않을 겁니다.” 대회 초반 정 감독은 ‘흙수저’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언더독’이라 불렀던 이유다. 땀과 열정이 녹아든, 구수하고 향토색 짙은 언어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이나 글을 가리켜 아포리즘이라 한다. 자기만의 경험에서 우러난 짧고도 분명한, 그러면서도 울림이 있는 한두 마디를 뜻한다. 진정한 리더란 아포리즘을 아는 사람이다. 인공 조미료를 뿌린 것 같은 가공된 언어에 지친 사람들은 그의 솔직한 표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이끄는 축구팀은 기적처럼 결승에 올랐고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는 그 삶을 자기만의 언어로 예찬하고 있었다. 그는 성공의 비법을 멀리서 찾지 않았고, 꾸역꾸역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데서 찾았다. 주눅 들 대로 주눅 들어 있던 이 땅의 청년들, 삶이 무료해지고 우울한 이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 감독은 소통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리더다. 나이 어린 선수들과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 개념의 소통을 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런 추상적 개념 대신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에 주목해보자. 무엇보다 경기장에 나서지 못하는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파악하는 공감 능력이다. 선수 시절 그 역시 주목받지 못했고, 부상으로 일찍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으며 철저히 흙수저로 일관해왔기에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알았다. 아픔과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이 곧 공감이다. 저명한 경영전문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많은 리더는 착각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밝고 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곧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글과 말에 능한 것과 소통 능력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 진정한 소통 능력자는 입이 아니라 귀를 빌려주는 사람이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귀를 닫는다. 우선 마음이 열려야 귀가 열리고, 귀가 열려야 입이 열리는 법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스트레칭이 중요하다. 운동하기 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스트레칭을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경직된 마음의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는다. 살다보면 넘어지는 순간이 있다. 피하고 싶지만 고통은 다가온다. 넘어지지 않으려다 더 크게 다치기도 한다. 빨리 다시 일어나려고 하다 더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스트레칭 부족과 서두름의 결과다. 마음을 푸는 데 최고의 스트레칭은 유머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진지하기만 하면 금방 질식할 것 같아 도망가고 싶다. 며칠 전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라는 일명 ‘마짱’이라 불리는 84살 일본 할머니가 쓴 책인데, 이처럼 유머 있는 책 제목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누구나 나이 먹는 것은 두렵지만, 그는 60살 퇴직 후 오히려 넘치는 호기심을 채우며 하고 싶은 일을 척척 해나간다.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식단을 조절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일부러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 그저 ‘자신이 즐거운가?’를 묻고 거기에 따르라 조언한다. 즉 자기 방식으로 살라는 것이다. 누구나 ‘내 삶의 주인 되기’를 원한다. 경제적 자립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흔히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생각과 판단을 타인에게 의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유명 인사의 추천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고, 타인의 큐레이팅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길을 잃은 줄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힘들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영원한 자유인 괴테가 말한 ‘새벽 3시의 정신’이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끝>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l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