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상실의 아픔 돌아보면 내 마음 한 뼘 자라나

상실의 계절과 잃어버린 관계의 소중함

등록 : 2019-04-04 14:53

크게 작게

17년 ‘발 노릇’ 해준 자동차와 이별

말 못하는 고민 묵묵히 들어줘

감정 없는 사물인데도 인연 느껴

오해·편견의 인간관계서 오히려 상처

감정이 없는 사물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걸까? 오랫동안 내 발 노릇을 해주던 자동차가 17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았다. 운전면허증을 얻은 뒤로 한국과 외국에서 수많은 자동차를 운전했지만, 이 자동차와 내 인연은 참으로 각별했기에 이별은 쉽지 않았다.

외형이나 브랜드로만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국산 자동차지만 소중한 친구나 다름없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나오던 날, 제일 먼저 나를 기다고 있던 것도 바로 이 자동차였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의 의무를 완수했다는 홀가분함,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당혹스러워하던 나의 민낯을 제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위로했다.

“괜찮아. 세상에는 아직 너를 기다리는 곳이 많이 있어. 걱정은 잠시 놓아두고 자유의 바람을 먼저 느껴봐. 나랑 함께 달리자!”


그렇게 우리는 새롭게 출발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놓지 못한 채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아이처럼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태우고 여기저기 안내했다. 강연장에서 강연장으로 함께 다니며 지금까지 내가 몸담았던 곳과 또 다른 신세계가 있다는 것도 일깨워주었다.

두 아들이 각각 입대하던 날, 굳은 표정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보다 더 굳은 나를 데리고 훈련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것도 바로 그 친구였다. 한국에서 청년들에게 입대란 자립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자녀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순간은 안쓰럽지만 건강한 성인이 되려면 반드시 자립의 순간을 넘겨야 한다.

군부대를 드나들면서 자립이란 반드시 사회에 막 나온 청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내 자동차는 깨닫게 해주었다. 사는 동안 시기별로 다른 자립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이 마흔에 맞는 자립, 중년에 어울리는 자립, 퇴직 이후의 자립, 자녀들이 출가해 떠난 다음의 자립은 각각 다르다. 인생이란 결국 자립의 과정이 아닐까? 자립의 힘을 길러야 한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내 고민과 어려움을 묵묵히 들어주고 끝내 그 비밀을 지켜준 것도 자동차 친구였다.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로 함께 달려간 것이 몇 차례인지 모른다. 최후의 순간까지 큰 사고 없이, 큰 고장 없이 임무를 다하고 수명을 마쳤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렇지만 오랫동안 수고한 친구에게 작별의 순간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짧은 이 한마디였다.

“그동안 고마웠어….”

‘5292’라는 숫자로 끝나는 그 자동차는 그렇게 영원히 내 곁을 떠나갔다. 떠나보낸 것은 자동차뿐이 아니다. 화창한 이 봄날 많은 것이 내 곁을 떠나갔다. 옛 직장에서 함께한 직원들이 석별의 선물로 준 가방과 신발과도 이별했다. 하나같이 정들었던 것이지만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인연이란 반드시 사람과 사람, 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오랫동안 함께 하다보면 사람처럼 물건도 정이 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신고 다니던 신발은 구멍이 나고 밑창이 닳아서 결국 외국 출장길에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유효기간이 다 된 것이다.

물건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관계에도 유효기간이란 것이 있는 걸까? 몇몇 사람들과도 인연이 다한 느낌이다. 만나고 싶어서 연락을 시도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 혹은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다. 어떤 경우는 오해에서 빚어진 경우라 생각되지만 또 다른 경우는 짐작조차 안 된다.

한 사람과 맺은 인연은 이제 어쩔 수가 없다. 상대방 가족이 어떤 문제를 일으킨 것을 알지만, 이를 발설하면 그 집안의 파경이 우려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니, 오히려 그 가족이 자신의 실수가 드러날까 우려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한 경우다. 진실을 말하면 그 가족 관계가 깨질 것 같고, 그대로 지내자니 나는 하루아침에 치사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다.

또 다른 경우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지인의 부탁을 받고 그를 도우려고 나름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적지 않은 시간과 열정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냉랭해졌음을 느낀다. 그렇다 해도 그에게 진짜 탈락의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상할 테니까. 탈락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의 기준 이하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데 다른 데서 이유를 찾으려 한 경우다. 서운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이상한 방식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험담으로 관계를 악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제 이상으로 나에게 기대를 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 해준 충고가 새삼 생생히 기억난다.

“사람을 새로 사귈 때 뭔가를 기대하지 마세요. 그래야 상처받지 않습니다.”

근거 없는 기대감이 오해와 상처를 만든다. 또 다른 한편으로 뭔가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안다. 관계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술자리에서 혹은 차를 마시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세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요즘 바쁘다는 말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그에게 질투의 감정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천박함이 원인이다. 소통은 참으로 어렵지만, 상실은 나를 성찰하게 한다.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l 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