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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버스로 곳곳을 순환하다가 넓은 창밖으로 만나는 도심 풍경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나는 아스팔트 도시 출신이다.' 밤 기차로 도시를 가로지르던 시인 브레히트가 수첩을 꺼내 첫 줄을 적었다. 무엇이 그를 불쑥 각성시켰나. 골목과 대로를 비추는 버스 창가에 앉아서, 도시를 누비며 질문을 던져 본다. 여름을 만끽하던 도시인(市人)들의 얼굴이 하나둘 시인(詩人)으로 변해 가는 것을 보니, 여기에 확실히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궁금할 때는 말 걸어 볼 일이다. 도시의 속살은 도시를 먹고 자란 우리들을 닮았다.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 마음이 닿는 곳에 내려 걷다가, 어느새 돌아온 충직한 버스에 다시 올라 남은 여정을 이어 가는 형태가 도시에서는 어울린다. 고궁 처마 끝 햇빛, 네온이 번진 물빛, 역동적인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껏 뒤섞인다. 출발지마다 창백했던 도시의 낯빛은 도착지 즈음에서 노을 진 혈색을 기분 좋게 내비쳤다. 서울의 도심을 여유롭게 누비는 ‘시티투어버스’로 시작해 경북 대구, 전남 신안·무안, 충남 서천, 경기 수원으로 이어진 도심관광 코스를 바람처럼 달려 본다. 여름의 길목에서, 생기 가득한 도시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여행객을 기다린다. 글·사진 전현주 문화창작자
가까이 있어 더 모른다. ‘서울’이 그렇다. 통근버스와 통학버스만 날마다 타다 보니 가는 곳, 보는 곳, 먹는 곳들이 딱 정해져 버렸다. 습관화된 일상을 바꿔 볼 수 없을까.
알짜배기 콕콕 야무지게 구경하기
한국관광공사와 서울시가 마련한 시티투어버스가 답이다. 마음 굳게 먹고 나가야 겨우 한두 곳 보는 명소들을 줄줄이 맛있게 엮었다. 두 시간 정도면 광화문에서 명동, 남산, 강남, 여의도 일대를 유유히 흐르며 도심 고궁과 명소 곳곳을 골라 볼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시티투어버스는 몸 가볍게 산책하는 서울 시민들과 마실 나온 관광객들의 기특한 교통편이 되었다.
시티투어로 돌아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서울역사박물관.
두 아이와 손 잡고 박물관 기행
세빛섬 부근에서 트롤리버스에 오른 한원주(45. 강원)씨는 아이들 손 잡고 농업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두루 보러 가는 길이다. “친척 경조사가 있어서 서울도 여행할 겸 하루 먼저 올라왔어요. 여덟 살, 열 살짜리 사내 둘 데리고 다니는 게 차 없으면 힘든 일이라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좋더라고요. 더운 날 많이 안 걸어도 되고, 무엇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저녁에는 애들이랑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같이 책도 볼 예정이에요.”
아이들에게 박물관을 보여 주려고 시티투어를 이용한 한원주씨 가족. 한씨는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고 많이 걷지 않아도 돼서 시티투어버스를 선택했다 한다.
티켓 한장으로, 발길 닿는 대로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서울의 밤과 낮을 만끽해 본 나는 서울 태생인데도 보는 것마다 새로웠다. 신록의 남산 자락은 어제의 초록과 달랐고, 해방촌 언덕은 작은 집들의 리듬이 새삼 경쾌하다. 강남역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성을 추모하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 함께 애도하고, 세빛섬에서 만난 고등학생들과 웃다 보니, 반나절 동안 서울을 한 바퀴 돌았다. 눈도 쉴 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내린다. 호젓한 정원에 앉아 커피 한 잔에 핫도그 하나 먹고, 다시 돌아온 광화문. 도시의 냄새가 한결 달라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을 모르기에…”
명동에서 버스에 오른 이연희(53. 천안)씨는 새벽에 KTX를 타고 와서 서울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도 여지껏 서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행 삼아 남편이랑 왔는데, 참 편리하네요.” 손부채질 하며 한강공원에서 버스에 오른 권오건(18. 경기)군도 ‘서울을 답사’하는 길이었다. “학교에서 현장학습 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광화문에서 버스를 탔어요. 조별로 자유롭게 서울을 여행 중인데, 우리 셋은 한강에서 놀았고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