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동네 카페들 ‘독서 활동의 허브’가 되다

광진정보도서관, 독서 동아리-카페 연결해 공간 사용료 3년째 지원

등록 : 2019-06-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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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모임 한 번에 3만원씩 지원

카페 주인이 동아리 리더로 나서고

동아리 회원들이 직접 카페 열기도

“공공도서관, 지역상권 활성화도 기여”

5월22일 광진구 구의동 협동조합 ‘공간 책바람’에서 철학 독서 동아리 ‘책바람’ 회원들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올 초 광진구 구의동의 한 아파트 상가 4층에 ‘공간 책바람’이 문을 열었다. 커피와 차를 파는 작은 카페처럼 보였지만, 크기가 제각각인 방이 3개나 있어 2~14명까지 다양한 모임을 갖기 좋은 곳으로 동네에 소문이 났다. 방마다 달린 폴딩 도어(접히는 문)를 다 열면 30명 넘는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구조라, 다양한 강연도 매달 열린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광진구 철학 독서 동아리 ‘책바람’ 회원들이다.

협동조합 ‘공간 책바람’의 박정희 이사는 “광진정보도서관의 일반 독서회 2반 회원 가운데 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엄마들이 2014년부터 철학 스터디 모임을 따로 만들었다. 독서모임을 하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일반 카페는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마땅한 장소가 많지 않았다. 안정적인 공간을 계속 꿈꾸다 회원 가운데 7명이 의기투합해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으로부터 시작해 함께하다’(책발함)는 뜻을 가진 ‘공간 책바람’은 다양한 독서 동아리가 편안한 환경에서 책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이곳에서 모임을 하는 독서 동아리끼리 책 정보를 공유하도록 돕고,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이 근처에 저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독서 동아리가 되게 많아요. 독서모임을 편하게 할 수 있고, 지역주민을 위한 강연회도 열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어요. 인문학에 관심 있는 지역주민이 언제든지 오실 수 있고, 책 읽는 정보가 교류되는 지역 독서 활동의 허브가 되고 싶습니다.”


엄마들이 ‘공간 책바람’을 과감하게 열 수 있었던 데는 광진정보도서관의 ‘독서 동아리 공간 나눔 지원사업’이란 뒷배가 있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2017년부터 독서 동아리와 카페를 연결해 모임비를 지원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만 지원한다. 동아리 모임마다 1회 3만원씩 공간사용료를 제공하는데, 카페는 동아리 회원에게 1인 1잔을 강요하지 않고 회원이 음료를 주문하면 20% 깎아줘야 한다.

협동조합 ‘공간 책바람’의 윤경숙 이사장은 “지난 3년 동안 일반 카페를 이용하면서 광진정보도서관이 카페에 공간 사용료를 지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 수많은 독서 동아리를 다 수용할 수 없는 공공도서관에서 넘쳐나는 동아리를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네 카페와 연결한다는 발상이 참 바람직하고 ‘우리도 공간을 만들면 지원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공간 책바람’은 매달 12차례 독서 동아리 모임이 열려 36만원의 지원비를 도서관에서 받는다. 연결된 지역 독서 동아리는 모두 9곳이다. “인근 중학교 출신 학부모 독서 동아리가 4곳이나 와요. 이 학교에는 학년마다 학부모 동아리가 활성화돼 있는데, 아이가 졸업한 뒤에는 모일 공간이 없잖아요. 우리도 지원비 덕분에 수도·전기 요금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큰 도움이 되죠.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걸 계기로 사람들이 모이는 게 더 중요해요. 토론하기 적합한 공간이라고 지역에 입소문이 났거든요.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 됐는데 말이죠.”

지난해까지 2년 동안 광진구의 카페 40여 곳이 독서 동아리 모임 700여 차례로 모두 2천여만원의 공간 사용료를 지원받았다. 광진정보도서관이 ‘독서 동아리 공간 나눔 지원사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2010년부터 시작한 독서 동아리 인큐베이팅(양성) 프로그램인 ‘책 읽는 엄마 학교’에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다른 도서관과 달리 사서가 독서 리더로 참여해 3년 동안 동아리를 양성하는 게 특징이다.

오지은 광진정보도서관장은 “사서가 직접 독서 동아리를 인큐베이팅하는 곳은 광진구가 유일하다. 3년 뒤 동아리가 졸업할 때 가장 큰 문제가 공간 문제”라며 “도서관의 공간은 한정돼 있으니 동아리를 지역의 카페와 연결해 지역사회의 소상공인도 함께 지원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졸업한 독서 동아리가 사서 없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공간뿐 아니라 추천 도서를 단체 대출하는 등 콘텐츠를 제공하고, 회원이 독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한다.

한 해 6, 7개 동아리가 졸업하면서 지금은 성인 독서 동아리만 84개나 된다. 광진정보도서관은 올해부터 ‘책 읽는 아빠 학교’도 시작했다. 오 관장은 “독서 동아리와 연결해준 카페 가운데는 ‘독서 동아리를 활성화하면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와 대응할 수 있겠구나’ 싶어 사장이 직접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거나, 독서 리더 교육을 받은 경우도 있다. 공공도서관이 카페라는 영리 공간을 독서 동아리와 연결해 지역 독서 활동의 거점으로 만들고, 지역사회의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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