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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도서관 직원들이 2일 오후 ‘도림천에서 용나는 작은도서관’을 찾아 주민들이 대출 신청한 책을 ‘지식도시락’ 배달 차에서 내리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 살고 있는 전순옥(47)씨는 얼마 전까지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미리 인기 있는 학군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던 탓이다. 하지만 그냥 남기로 마음을 굳혔다. 전씨의 이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특이하게도 도서관과 독서 동아리였다.
“상호대차가 잘되는 도서관 시스템과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도서관, 독서 동아리 지원 등이 너무 맘에 들었어요. 다른 구로 가면 이게 가능할까 생각해 봤지요.”
전씨는 또래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인 독서 동아리 ‘책의 선물’에 참여하고 있다. 전씨는 “독서모임은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친목 모임으로 변질되곤 해요. 하지만 이곳은 구의 지원과 네트워크 활동으로 정체성이 잘 유지되고 있어요. 우리 아이는 물론이고 다른 애들까지 볼 수 있게 시야가 트였습니다. 이름 높은 학군보다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전씨의 말처럼 관악구는 독서 동아리 생태계가 어느 구보다 잘 갖춰져 있다. 구에 등록된 독서 동아리가 모두 273개로, 서울 25개 구 전체인 1006개의 27%나 된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관악구는 ‘지식문화도시’ ‘평생학습 인문학도시’를 표방하고 일찍부터 ‘책’의 가치에 주목해 왔다. 구민들의 독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구청에 도서관과를 운영하고 독서 동아리 관리와 지원에 힘을 쓰고 있다.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독서 동아리 등록제가 대표적이다. 관악구에 사는 주민 5명 이상이 모여 월 1회 이상 모임을 하는 동아리면 모두 등록할 수 있다. 구는 1년에 한 차례 공모를 해 선발된 동아리에 활동비를 지원한다. 2015년에는 80개 동아리가 총 34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올해는 89개 동아리에 각 30만~50만원씩 모두 3600만원을 지원한다.
금전적 지원도 의미가 적지 않지만, 독서 동아리가 연합해 네트워크를 짜고 활동 폭을 넓히도록 돕는 것도 흥미롭다. 관악구의 독서 동아리들은 활동 내용과 성격에 따라 89곳이 6개 그룹으로 나뉘어 동아리 대표를 중심으로 월 1회 정기모임을 한다. 지난 5월23일 관악구청에는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주부 회원들이 모였다. 엄마들은 아이와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 효율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은 뭔지, 책 내용을 서로 어떻게 나눌지 등을 함께 고민했다. 동아리 ‘황금돼지’에서 활동 중인 박미정(41) 회원은 이 자리에서 “관악구의 지원이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오늘처럼 다른 동아리와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폐쇄적인 동아리 운영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관악도서관 직원들이 도서관 주차장에서 30여 곳이 넘는 작은도서관에 배달할 책들을 분류해 차에 싣고 있다. 장철규 기자
독서 동아리의 토대인 도서관을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관악구에는 구립 공공도서관 5곳과 작은도서관 33곳이 있다. 독서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모든 구민의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도시’를 목표로 내세웠다. 작은도서관은 이용도가 떨어지는 동주민센터의 새마을문고와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만들었다.
도서관별로 장서 수가 차이가 나는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상호대차’ 비율을 높였다.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에 있는 자료의 대출을 신청하면 가져다주는 상호대차는 동아리 회원들 사이에서 최고의 정책으로 손꼽힌다. 관악구청 도서관과 강선영 주무관은 “지난해에만 35만권 이상의 책이 도서관을 넘나들었다. 이 책을 모두 쌓으면 관악산 높이의 11배나 된다”고 설명했다. 상호대차를 위해 책 운반 차량 3대가 하루에 두 차례씩 각 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다른 도서관으로 나르고 있다. 또 구청에서 대출증을 통합 관리해, 하나의 대출증으로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모두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독서 동아리 ‘투덜이들’의 회원인 유수진(43)씨는 “책은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나 말고 우리가 보이더라고요. 자연히 우리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고, 또 다른 모임도 만들게 됐지요. 이런 움직임이 커지니 마을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게 되고요. 지자체의 도움이 큰 힘이 됐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구청의 지원 정책에 아쉬움이 없진 않다. 유씨는 “가장 큰 어려움은 모임 장소다. 구 지원비는 장소 대여비로 쓸 수 없어 사비를 모아 공간을 빌리고 있다.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장소가 마련되면 모임도 더 활성화되고 다른 모임과의 연결고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구슬이 인턴기자 sr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독서 동아리 ‘투덜이들’의 회원인 유수진(43)씨는 “책은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나 말고 우리가 보이더라고요. 자연히 우리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고, 또 다른 모임도 만들게 됐지요. 이런 움직임이 커지니 마을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게 되고요. 지자체의 도움이 큰 힘이 됐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구청의 지원 정책에 아쉬움이 없진 않다. 유씨는 “가장 큰 어려움은 모임 장소다. 구 지원비는 장소 대여비로 쓸 수 없어 사비를 모아 공간을 빌리고 있다.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장소가 마련되면 모임도 더 활성화되고 다른 모임과의 연결고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구슬이 인턴기자 sr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