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전쟁 상징→문화현장 거듭난 ‘평화문화진지’ 2주년 축제 풍성

11월2~3일 가족극·음악공연·마술 등 프로그램 다양…‘문화예술 전진기지로 발전’ 꿈 영글어

등록 : 2019-10-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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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아래 ‘남침 전차’ 차단 시설

국방부와 오랜 협의 끝 시민 품 안겨

베를린장벽 3점 등 평화상징물 전시

입주작가 7개 팀의 프리뷰전도 열려

도봉구 마들로932에 있는 ‘평화문화진지’는 옛 대전차방호시설을 헐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곳이다. ① 이곳의 전망대는 도봉산과 수락산, 중랑천 등 주변 경관을 전망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② 전망대 아랫부분이 옛 대전차방호시설로 전차(전시 실물)를 감추어 두는 곳이다. ③ 옥상에는 전쟁과 분단의 상징물임을 알리기 위해 각 방향으로 이정표를 세워 놓았으며, ④ 그 아래로 견학 나온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이 전시물을 구경하며 산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전차가 웅크린 전쟁의 상징물이 평화를 상징하는 문화 공간으로 바뀐 곳이 있다. 서울의 북쪽 끝,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잡은 문화공간 ‘평화문화진지’가 그것이다. 본래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전차의 진격을 차단하기 위한 대전차방호시설이었으나 서울시와 도봉구, 국방부가 손을 잡고 시민과 예술가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래서 군사용어가 가미된 평화문화진지라는 독특한 이름도 얻게 됐다.

 시민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공원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둥지가 되어주는 이곳이 개관 2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서울시와 위탁운영자인 도봉문화재단(이사장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올해 2주년 기념 활동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평화문화진지에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넣어 명실상부한 문화예술 전진기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평화문화진지 김용현 센터장을 통해 평화문화진지의 현황을 들어봤다.


 평화문화진지(Peace Culture Bunker)

군사시설인 옛 대전차방호시설을 공간재생사업을 통해 새롭게 조성한 서울시 소속 문화창작공간이다. 군사시설이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중요한 사례다.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문화·놀이 및 쉼터로 기능하는 공간이자, 미술작가 등 예술가들이 입주해 작품활동을 하는 스튜디오 또는 아틀리에 구실도 한다. 현재 7개 팀이 입주해 있다.

 있는 곳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도봉산역에서 가깝다. 창포원과 다락원체육공원이 인접해 나들이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웅장한 도봉산 전경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어 등산객 등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평화광장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 3점

 역사

평화문화진지가 있는 도봉구 마들로932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관리들의 여행숙소(다락원)와 시장 등이 있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 전차의 서울 진입 루트였다. 70년 한국군은 이 길목을 막기 위해 정북 방향으로 동서 길이 약 300m(현재는 260여m만 남아 있다)의 5개 동으로 이뤄진 긴 방호시설을 짓고 전차와 장갑차 10대를 배치했다. 이 전차들을 감추기 위해 방호시설 위로 3층짜리 아파트를 지어 군인관사로 사용했다. 대전차방호시설로 기능을 잃은 뒤에는 도봉구 최초의 시민아파트로 민간에 분양되었다가 2004년 노후화하면서 방호시설만 남기고 아파트는 철거됐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폐허가 되다시피 한 채로 오랫동안 흉물로 방치되어 있던 이 ‘분단의 유물’은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시설의 재활용을 결정한 서울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16년 관할 군부대와 리모델링 협약이 체결되었고 이듬해인 2017년 10월 “서울시민의 일상과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이 평화를 테마로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탄생을 기념해 독일에서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3점이 평화와 통일 염원의 상징물로 전시돼 있다. 위탁운영기관인 도봉문화재단은 이 베를린 장벽을 어떻게 예술문화적으로 활용할지를 고심 중이라고 한다. 기증 당시의 그라피티가 그려진 그대로 보존하기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운영

평화문화진지는 크게는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과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입주한 작품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7개 팀이 들어와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입주 기간 동안 성과를 모아 전시회를 열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9월 입주한 권은비 작가(비주얼 아티스트)는 “입주 작가 모집 취지와 제 작품 방향이 잘 맞아 입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도 분단과 냉전의 상처를 다룬 작품을 진행했다는 권 작가는 평화문화진지 입주를 계기로 한국의 분단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권 작가 외 입주 작가들은 이곳에 입주해 있는 동안 완성한 작품 전시 및 스튜디오 공개 등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시설물의 특성을 살린 벼룩시장 등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2주년 기념행사

11월2~3일 이틀 동안 일반시민을 상대로 가족극, 음악공연, 마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민동(1동) 공연장에서는 극단 하땅세의 가족극 ‘거인 이야기’(2일 오후 2시)와 ‘오버코트’(3일 오후 2시)가 무대에 올려지고, 국악 공연 ‘짙은 국악 난다 신명 난다’(2일 오후 4시), ‘거문고 앙상블 마리 콘서트’(3일 오후 4시)도 공연된다. 또 신체극 ‘내 삶에 ( ) 살고 있다’(이헌재 앤 컴퍼니)가 2~3일 오후 5시에 평화문화진지 공연장과 스튜디오를 돌며 공연될 예정이다. 대중음악 공연도 열린다. 정신대 할머니 돕기 등 사회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가수 홍순관씨의 ‘어떤 바람’이 2일 오후 6시 시민들을 초대한다. 10월30일부터 11월17일까지 평화문화진지 입주 작가 프리뷰전이 준비돼 있다. 11월9일 오후 1시에는 내년에 열릴 예정인 제1회 서울평화축제 개최를 알리는 축제가 펼쳐진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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