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A4 50장짜리 ‘끝까지 써보는 습작’ 한달에 서너번 해요”

연극의 탄생 ③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부문 선정 김도영 작가가 들려주는 ‘희곡쓰기’

등록 : 2021-06-10 16:09 수정 : 2021-06-1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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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지원형 작품개발 사업 ‘창작공감’의 작가 부문에 선정된 김도영 작가가 지난 2일 대학로에 있는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자신의 희곡 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작가는 “좋은 주제와 이미지가 떠오르면 대사까지 넣어서 끝까지 써본다”며 “그 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출발해 인물을 더 채우고 드라마도 만들어 넣으면서 실제 무대에 올릴 작품을 만들어나간다”고 설명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작품 끝’ 가본 뒤 재미 느껴야 본격 작업

스스로 만족 못하면 과감히 폐기해버려

기준 통과 때 등장인물의 ‘전사’부터 완성

인물 뚜렷해진 뒤 본격적으로 집필 시작


‘역사 속 개인들의 인간성 회복’에 주목

한국전쟁 배경의 ‘금조 이야기’ 집필 중

“2차 세계대전을 깊이 공부하면서 제 나름의 세계관·역사관을 만들었습니다.”

국립극단이 올해 작품개발 사업으로 진행하는 ‘창작공감’의 작가 부문에 지난 3월 말 선정된 김도영 작가는 작품의 철학적 근간이 되는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부터 설명했다. 김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2일 대학로에 있는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이루어졌다.

김 작가는 그간 <무순 6년>(2018), <수정의 밤>(2019), <왕서개 이야기>(2020) 등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아왔다. 1950년 중국 무순 전범관리소의 이야기를 담은 <무순 6년>은 일본인 전쟁범죄자들을 처벌이 아닌 반성과 교화로 대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왕서개 이야기>는 일본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이름과 국적마저 모두 바꾸고 살아오던 ‘왕서개’가 21년 만에 오래된 진실을 듣기 위해 가해자들을 찾아가 복수하는 이야기다. 모두 역사라는 큰 줄기 속에 묻혀 있던 개개인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상처 받은 인간성 회복을 다룬 극들이다. 김 작가는 이렇게 ‘역사 속 개인의 인간성 회복’에 주목하게 된 계기로 작품 <무순 6년>을 꼽았다.

“이 작품을 쓰면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알려고 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어디서 먼저 시작했는지, 국지전에서 시작한 전쟁이 내전이 되고, 전면전이 됐다가 다시 냉전에 이르게 됐는지 등의 전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제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갔습니다.”

김 작가는 “처음에는 작품을 쓰기 위해 책을 읽었지만, 역사책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생겨서 그때부터 계속 역사책을 읽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경험한 인간성 상실과 회복의 모습에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국립극단의 지원 아래 현재 집필하고 있는 <금조 이야기>(가제)도 이런 작가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올해 말 낭독회로 진행될 <금조 이야기>는 남의 집 메밀밭 일을 하는 40살 전후의 여성 금조가 한국전쟁으로 피란을 가면서 만나는 피란민들 이야기다. 김 작가는 “금조는 피란을 떠나면서 주인집에 맡겨놓은 딸을 잃어버리는데, 이때 금조가 느끼는 상실감 등을 피란민들이 느끼는 역사 속의 인간 상실감 등과 함께 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현재 <금조 이야기>를 낭독회 일정에 맞춰 착실하게 써나가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김 작가는 사실 이 작품을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보았다.

“좋은 주제와 이미지가 떠오르면 대사까지 넣어서 끝까지 써봅니다. 1주일 정도 진행되

는 그 과정을 저는 ‘습작’이라고 부릅니다.”

김 작가는 보통 한 달에도 몇 개씩 꾸준히 습작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작품 끝까지 가본 뒤 본인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런 습작의 분량은 대략 A4 용지로 50장 정도다. 거의 희곡 한 편 완성본에 가까운 분량이다.

“결말까지 써본 뒤 스스로 재미있나, 즐거운가 등의 기준을 가지고 살펴보고,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폐기합니다.”

하지만 습작한 다음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 출발해 인물을 더 채우고 드라마도 만들어 넣으면서 실제 무대에 올릴 작품을 만들어나간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제목을 다시 정한다. “또 등장인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이 공연이 3인극인지, 5인극인지, 8인극인지 명확히 한다.”

만일 5인극으로 정했다면 다섯 등장인물에 대한 각자의 전사를 쓰기 시작한다. 전사는 등장하는 5명의 모습이 선명해지고 개개인별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때까지 쓴다. 그런 정도로 작품이 뚜렷해지면 이제는 전사 쓰기를 멈추고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대사 쓰기가 쉬워지는 등 작품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좋습니다.”

사실 김 작가가 애초부터 이런 방식의 습작을 했던 것은 아니다. 공고를 다녔던 김 작가는 애초 동일계 진학 제도를 통해 2007년 전기공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2008년 휴학한 뒤 배낭을 메고 인도·네팔 등을 여행했다.

그 여행에서 느꼈던 것을 글로 쓰고 생각이 강해지면서, 2009년 문창과로 전과했다. 그 이후 김 작가는 다양한 글쓰기를 해오면서 자기 나름의 ‘습작’ 방식을 시험하면서 현재 방식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작가의 모습은 ‘인간적인 작가’다. “연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초고가 내가 나를 위해 쓴 글이라면, 캐스팅하고 나면 배우에게 맞도록 희곡을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려 합니다. 해당 배우 등을 잘 관찰해 그 사람의 말투, 뉘앙스, 톤 등이 살아나게 수정하면 희곡이 안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다양한 지원을 1년 동안 이어가는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덜 고독하면서도 설레게 한다”고 평가했다. 우선 올해 함께 창작공감의 작가 부문에 선정된 배해률·신해연 작가와 격주로 만나 스터디를 하는 것이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고독감을 줄여준다. “대다수 공모전이 완성된 작품으로 경쟁하는 데 반해 창작공감 프로그램은 1년 동안 같이 대화하면서 ‘한 목욕탕에 같이 앉아 있는 기분’과 같은 ‘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는 달리 공연을 위해 연출이나 배우를 만나 그들과 또 어떻게 작품 해석을 놓고 얘기할까를 생각하면 벌써 설렌다고 말한다.

아마 이런 작가의 감정은 앞으로 완성될 <금조 이야기> 희곡 속에 녹아들어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람객에게도 크든 작든 전달될지 모르겠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동물 움직임 파악 첫걸음, ‘내 몸 사랑’!

이윤정(사진 왼쪽 아래) 안무가가 김도영·배해률·신해연 작가와 극작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몸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다.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상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난 2일 대학로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이윤정(사진 맨 왼쪽) 안무가가 김도영·배해률·신해연 작가에게 한 말이다. 이윤정 안무가는 무용가에서 출발해 공연예술과 다원예술, 연극 등에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는 ‘몸 전문가’다.

세 작가가 이날 배우고자 한 것은 ‘동물의 움직임을 어떻게 연극에서 표현할까’였다. 모두 현재 집필하는 희곡에 동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김도영 작가는 야생 표범으로 존재하다 들개로 변해가는 동물의 모습을, 신해연 작가는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했다가 우울증에 걸린 긴팔원숭이를, 배해률 작가는 동물원에서 불법적으로 방생한 작은발톱수달을 표현하는 방법을 궁금해했다.

이윤정 안무가의 답은 “인간의 몸을 잘 알면 다른 동물들의 모습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안무가는 이날 많은 시간을 세 작가가 자신의 몸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안무가는 “우리 몸은 세포가 계속 죽고 또 살아난다는 점에서 몸이 초 단위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며 “그렇게 설계된 몸으로 예술창작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발 등의 마시지를 통해 자신의 신체와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눈을 감고 발 마사지를 하는 세 작가는 모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몸과 대화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희곡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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