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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교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100년의 흔적이 뚜렷하고, 골짜기 양쪽 언덕 위 건물들이 이 집들을 둘러싸고 있어 아늑하다. 왼쪽 노란 건물은 옛 미쓰비시 합숙소였다 하고, 오른쪽 너머에는 일제하 일본 주택회사가 지은 신정대(神井台) 주택지가 있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새말교로 가자고 했다. 운전사가 길안내지도(내비게이션)에 그런 지명이 뜨지 않는다고 했다. 도로명 주소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작은 다리여서일까? 이제는 다리인지 길인지조차 아스라한 지형이 되었지만, 그 다리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높다란 다리다. 운전사는 “고고학 하시는 분이세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데를 찾아오자고 하셔서…”라며 막히는 시내 길을 벗어나 간신히 길을 찾으면서도 호기심과 존중을 보인다.
옛날 ‘목멱’이라 일렀던 남산의 남쪽 아랫자락에는 이런 골짜기가 많았다. 지금은 알아볼 수조차 없지만 여전히 골짜기 능선에 가까스로 세운 집들이 풍경을 이루기도 한다. 후암동 중에서도 지대가 높은 곳이니 ‘아래쪽 후암동보다는 일본식 집들이 많지는 않겠지’ 하는 추측은 빗나갔다. 100년이 넘어 보이는 집들뿐만 아니라 근현대로 넘어오는 건물들과 수목, 담장, 그것들이 자아내는 풍경은 100년의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 포개놓은 듯했다.
그런데 벽면에 아직도 일본 글자로 뭔가를 써 놓은 것이 보인다. 옛 일본식 집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은 아직도 일본인일까? 일본어를 조금은 알지만 도저히 해석이 안 된다.
지금은 두텁바위길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소월길 아래에 가로로 지나는 이 길은 후암동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길’이다. 이 길에서 세로 방향은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가파른 계단길이다. 가파름을 피하려는 사선 방향의 길들이 더러 있어 고마울 때도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끈질기게 삶을 이었고 지혜를 살려 주변을 잘 가꿨다. 일전에 ‘협소주택’이란 타이틀로 소개되었던 ‘자투리땅에 멋진 집짓기’가 소개된 곳이 이 근처이다. 삐뚜름, 꼬불꼬불,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도 하는 길 가장자리 땅에 재치 있게 세운 이 집들은 이제 후암동 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아간다.
후암동 사람들은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해 질 녘에 골목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쐰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울려 논다. 플라스틱 인조잔디 놀이터가 필요하지 않다.
후암로 20m도로변에 수리를 하고 있는 일본식 상가주택 하나를 만났다. 이미 본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나도 근처에 다다미방이 있는 옛집 2층을 얻어서 사무실 겸 카페로 쓴 적이 있다. 좁은 목재 계단을 오르며 100년 된 건물이니 그만큼 많이 낡았겠거니 했는데, 중천장(지붕과 방 사이에 종이나 판자로 평평하게 만든 반자를 얹은 천장)을 뜯어내자마자 빗나간 짐작이었음을 알았다. 목재의 색깔은 검게 변했지만 천장에 비 한 방울 샌 흔적이 없고, 부재 위치를 적어둔 일본 글자가 보이고, 이음매와 받침재는 여전히 견고했다. 다만 옛 다다미방 집이 사무실로, 학원으로, 봉제공장으로 용도가 바뀌어 오면서, 기둥을 뽑고 보강재를 걸어 공간을 통으로 넓힌 흔적이 뚜렷했다.
이 상가는 옆집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그 벽에는 아직도 100년 전의 대나무 수수깡 외엮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니 그때의 건축재를 볼 수 있지만, 이웃집과 방음 문제로 겪는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처녀 점쟁이 집인 이웃집에서 굿을 할 때면 징소리가 조금 들릴 뿐이다. 도로 쪽에서 보면 슬래브집처럼 보이지만 뒷마당에서 보면 지붕이 경사인 일본식 상가주택인 이 건물은 100년을 살아온 흔적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건너편에서 스무 가지 반찬으로 가정식 백반집 ‘여기래’를 꾸리고 있는 안만순(68·여) 씨는 “오매오매, 이 집도 일본집이여라우. 너무 튼튼해서 고칠 때 애 좀 먹었어라우” 하며 은근히 아직도 괜찮은 집임을 자랑한다. 점심때면 자주 가던 ‘광주 아줌마의 전라도 밥집’인 이 가게는 이웃집과 이웃집 사이 좁디좁은 틈으로 들어간 일본식 집인데, 이 동네에서 드물게 손님이 많다.
후암로 20m 도로는 무단횡단이 살짝 묵인된다. 대부분의 차는 시속 30㎞를 넘지 않고,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도 이따금 볼 수 있다. 많은 차주가 도로변에 차를 세우는데, 점심시간대에는 적법이지만 그 밖에는 불법이다. 그래도 주변 상가들을 보호하려고 묵인하고 있다. 원효대교를 지을 때 이 후암로가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로 설계되었는데, 미군기지를 관통할 수 없어서 실행되지 못했다. 만약 후암로가 원효대로가 되었다면 오늘의 후암동이 있었을까?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무성한 이 20m의 도로가 인간을 생각하는 도시의 척도라고 말하고 싶다. 글ㆍ사진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후암로 20m 도로는 무단횡단이 살짝 묵인된다. 대부분의 차는 시속 30㎞를 넘지 않고,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도 이따금 볼 수 있다. 많은 차주가 도로변에 차를 세우는데, 점심시간대에는 적법이지만 그 밖에는 불법이다. 그래도 주변 상가들을 보호하려고 묵인하고 있다. 원효대교를 지을 때 이 후암로가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로 설계되었는데, 미군기지를 관통할 수 없어서 실행되지 못했다. 만약 후암로가 원효대로가 되었다면 오늘의 후암동이 있었을까?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무성한 이 20m의 도로가 인간을 생각하는 도시의 척도라고 말하고 싶다. 글ㆍ사진 김란기 문화유산연대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