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장애와 예술? ‘만남과 소통’으로 풀어가고 싶어요”

⑦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부문 선정 김미란 연출이 꿈꾸는 새로운 ‘장애 연극’론

등록 : 2021-10-2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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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김미란 연출은 올해 창작극 제작 프로그램 ‘창작공감’의 연출부문에 선정된 뒤 공통주제로 제시된 ‘장애와 예술’을 ‘다른 언어를 쓰는 두 배우의 만남과 소통’이라는 방식으로 풀 계획이다. 김 연출 뒤편 유리에는 오는 12월 그가 연출하는 쇼케이스 공연에 출연할 농인배우 박지영씨와 청인배우 이원준씨의 ‘인생 연대표’가 그려져 있다.

경영학 석사 마친 뒤 연극계에 입문

다큐멘터리 연극인 ‘버베이팀’에 관심

인터뷰·증언 등으로 실재적 인물 다뤄

‘정체성 찾는 사람들’ 무대에 올리면서

그들만의 언어 주목해 ‘인간’ 복원 노력

쇼케이스 때 농인과 청인 2인극 준비

‘장애 연극’으로 카테고리화하지 않고


‘다른 언어 두 배우’ 소통 방식에 주목

“서로 알아가는 과정 모아 공연 꾸릴 것”

“다른 언어를 쓰는 두 배우의 만남과 소통.”

지난 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김미란(38) 연출에게 ‘장애와 예술’의 관계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장애와 예술’은 국립극단이 올해 새롭게 시작한 창작극 제작 프로그램 ‘창작공감’의 연출부문 선정자들에게 공통으로 제시한 주제다.

김 연출은 지난 2월 강보름·이진엽 연출과 함께 ‘창작공감’ 연출부문에 선발됐다. 촉망받는 세 연출가는 이후 국립극단 스태프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세 사람의 작품은 오는 12월 쇼케이스 공연으로 1차 선보인 뒤 내년에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김미란 연출도 오는 12월3~5일 선보이는 쇼케이스 공연에서 농인배우 한 명과 청인배우 한 명이 출연하는 2인극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김 연출은 “장애와 예술 문제를 다룰 때 굳이 ‘장애 연극’이라고 카테고리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장애 개념을 중심으로 한 장애 연극’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측면으로만 흐를 수도 있다는 우려일 것이다.

김 연출은 농인배우와 청인배우가 한 무대에 서는 이번 공연을 ‘다른 언어’를 쓰는 두 배우가 소통하는 과정으로 인식해보는 것에서 출발하려 한다. 김 연출은 “나도 예전에는 농인들이 쓰는 수어를 한국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을 준비하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며 “수어는 한국어와 체계가 다른 하나의 다른 언어”라고 강조했다. 김 연출은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만큼 농인들의 문화인 농문화도 비장애인 문화에 종속된 것이 아닌 자기 특색을 가진 문화라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농인배우 박지영(맨 왼쪽)씨가 지난 10월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수어통역사(오른쪽 둘째)를 매개로 청인배우 이원준씨(오른쪽 셋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에 따라 김미란 연출은 지난 9월부터 매주 진행하는 쇼케이스 연습에서 두 배우가 나눈 대화를 기록해나가고 있다. 지난 7일에도 농인배우 박지영씨와 청인배우 이원준씨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며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워크숍을 하고 있었다. 김 연출은 또 “각자의 출생연도부터 현재까지 중요한 사건들을 벽에 적어 공유하는 작업도 진행했다”며 “두 분 다 배우니까, 서로의 인생을 텍스트로 생각하다 보면 서로 어떻게 다가갈까 아이디어가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출연 배우들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로 쇼케이스 공연을 꾸릴 예정이다.

김미란 연출의 장애와 예술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는 ‘버베이팀 연극’에 관심이 많은 김 연출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버베이팀 연극은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나 증언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혹은 동시대적 사건과 역사 속에서 소외된 인물을 다루는 연극을 가리킨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하나인 버베이팀 연극은 1990년대 영국에서 시작됐으며, ‘말/글자 그대로’라는 ‘버베이팀’의 의미에 걸맞게 현실의 언어를 텍스트로 가능한 한 온전히 무대에 옮겨오려는 실험성이 강하다.

오는 12월 쇼케이스 공연에 출연할 출연진과 스태프의 워크숍 모습.

김 연출은 “제가 하는 작업 중 몇몇은 분류를 한다면 버베이팀 연극에 속하는 것 같다. 몇 년 전부터는 1년에 하나씩 만들어보고 있다”며 “역사 서술방식 중에 거시적 역사보다 미시적 역사 즉 개인 서사를 구축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연극의 미장센보다 사람과 그의 이야기에 관객이 더 집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런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이런 연출 경향은 그가 2009년 부산대 경영학과에서 ‘국제 주가지수 변동성 발생 간격’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뒤늦게 연극에 뛰어들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논문 쓰기와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유사성을 발견한다. 김 연출은 “인터뷰하고, 그것을 모아서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본을 쓴다”며 “대본 작업하는 방식이 논문 쓸 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이런 것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 사람이 또 저렇게 해보면 어떻게 나올까, 등 논문 쓸 때처럼 궁금증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그의 연극은 논문과는 달리 ‘인간(개인)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그가 처음 시도한 다큐멘터리 연극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결과보고서>(2019)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九江九山)’은 2018년 1월 전남 강진군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극단체다. 이들은 고용노동부 청년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2017년 1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단단한 지역 공연단체로 자리 잡겠다는 의욕을 갖고 출발했지만, 지역 자치단체의 무관심 등으로 ‘유령단체’가 되어갔다. 김 연출은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구강구산’ 단원들과 1년간 수십 차례 인터뷰한 뒤 그 인터뷰를 모아 ‘그들의 언어로 쓰인 결과보고서’로 재탄생시켰다.

김 연출의 다른 다큐멘터리 연극도 모두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소리꾼과 탈꾼, 무용가 등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한 결과로 연극을 만들면서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며 그들만의 언어에 주목하려 노력해왔다고 한다.

김 연출은 특히 인터뷰한 모든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인터뷰를 거친 뒤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의 모습을 찾게 된다고 한다.

김 연출은 또한 그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언어는 모두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 연출은 “각자의 사람은 모두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며 “가령 무용수의 경우는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두박근이나 삼두박근 등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무용수 개인으로 더 들어가면, ‘무용수의 언어’ 또한 그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일 뿐이고 개인의 고유한 언어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연극 경험을 ‘장애와 예술’에도 적용하고자 한다. 이번 무대에서 농인배우와 청인배우는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만남과 대화의 순간들을 기록해나갈 것이다.

사실 김미란 연출이 오는 12월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는 그 자신도 아직 모른다. 인터뷰를 한땀 한땀 해가며 연극을 만들어내는 그의 스타일답게, 현재 그는 매주 꾸준히 연극에 쓰일 수 있는 조각을 모아가고 있다. 대본은 이런 과정을 거쳐 11월이 돼야 나올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내든, 우리는 ‘장애라는 개념에 집중하지 않은 장애 연극’을 꿈꾸는 한 예술인의 도전 정신을 보게 될 것 같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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