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찬서리 나무 끝의 까치밥 홍시 하나, 마음 덥혀준다

㊴ 강동구1: 암사동과 고덕동의 숲길

등록 : 2021-12-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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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움집터.

6천년 전 암사동에 살았던 사람들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게 바뀌었으나

나무와 새·물고기는 크게 다르지 않고

까치에 홍시 양보하는 마음도 여전해

기원전 5천~4천년 무렵 사람들이 살던 곳, 서울 암사동 유적을 겨울나무들이 품고 있다. 마른 잎 빈 가지 거대한 활엽수와 수양버들 길, 소나무 군락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며 아주 오래 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하루를 상상해봤다. 아파트 단지 높은 건물에 싸인 고목들의 힘겨운 겨울나기도 따듯해 보였던 건, 까치밥을 남길 줄 알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까치밥을 먹는 겨울새의 일상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던 산치성제의 전통이 400년 넘게 내려오는 숲을 뒤로하고 찾은 게내(고덕천), 어둠이 내리는 냇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비호하는 건 한 그루 수양버들이었다.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수양버들과 소나무가 어울린 길을 걷다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350년 가까이 된 향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참나무, 느릅나무, 벚나무. 기원전 6천~4천년 무렵 한강유역(현재 암사동 일대)에 숲을 이루었던 나무들이다. 당시 마을 앞 한강에는 가물치, 쏘가리, 붕어 참마자, 모래무지, 누치, 황복, 잉어 등이 서식했고, 하늘에는 솔부엉이, 멧새, 쇠딱따구리, 멧비둘기, 물까치, 직박구리, 곤줄박이, 박새 등이 날아다녔다. 당시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숲과 강에 먹을 게 많았고 살기좋았다.

강동구 강일동 벌말근린공원 숲에 4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산치성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 가면 6천여 년 전 한강유역의 자연환경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와 새, 물고기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게 바뀌었으니, 당시 최신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산물이었던 빗살무늬토기의 시대에서 지금은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것이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에 기댄 속도와 편리의 세상을 사는 사람들도 자연의 품에서 쉬고 위안을 받으니, 6천 년 전 사람들이 살던 암사동 유적을 찾아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 거닐었던 발자국을 상상하며 현재의 숲길을 거닐었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울린 작은 숲 아래 널찍한 길을 따른다. 6천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움집을 재현한 것과 그 집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구가 숲의 품에 안겼다. 상상의 폭을 넓히면 그때 그 사람들이 걸어 다닌 길, 물고기를 잡는 모습, 산짐승을 잡아 함께 먹는 모습이 그려진다.

강일동 게내수변공원 부근 고덕천 수양버들.

그들의 발자국이 놓인 곳을 상상하며 걷다가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어울린 산책길을 만났다. 듬성듬성 남은 수양버들 잎이 색이 바랬다. 낭창이던 푸른 가지도 물이 빠져 산들바람도 힘겨워 보인다. 수양버들 길과 마주한 소나무 군락은 겨울에 더 푸르다. 소나무 숲에 엄마, 아빠, 어린아이 둘뿐이다. 청설모를 따라 살금살금 걷는 아이들, 청설모는 아이들을 경계하지 않는 듯 잠시 멈추었다가 따라오라는 듯 느리게 소나무 줄기를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 몇 분은 숲보다는 양지바른 곳이 좋은가보다. 일상인 양 한데 모여 햇볕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눈다.

느티나무 고목 앞 감나무에서 까치밥을 먹는 새를 만나다

고덕동 130여 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 앞에 있는 감나무.

암사동 유적 숲길 산책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암사3동 주민센터 앞 프라이어팰리스아파트 104동 앞이었다. 350년 가까이 된 향나무가 그곳에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아파트 건물들 사이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늙은 향나무의 초록이 이 겨울에 힘겨워 보인다. 나무 앞에 서 있던 십여 분 동안 십여명이 나무 앞을 지나갔으나 나무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35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틴 나무의 초록은 혼자 빛나고 있었다.

향나무 고목에서 직선거리 약 1.2㎞ 되는 곳에 130여 년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고덕동 312-13 배재현대아파트 101동 뒤쪽, 느티나무 고목들은 몇 그루 나무와 함께 사람들에게 휴식 장소를 만들어준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이곳을 찾는다. 말없이 나무 그늘에 잠깐 머물다 익숙한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며 돌아간다. 이곳에 머물렀던 시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처럼 그들의 시간도 덤덤하게 흘렀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작은 쉼터에 남아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보는데, 주황빛 감 몇 개가 나무에 매달린 것을 보았다. 붉은 등불을 밝힌 것 같았다.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앞에 있는 감나무였다. 아무 소리 없는 그곳을 찾은 것은 새 한마리였다. 이쪽저쪽 나뭇가지를 옮겨 앉던 새는 감이 매달린 가지에 앉아 감을 쪼아먹는다. 오래전부터 새들이 먹었는지 감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 한 마리 새는 감을 먹느라 경계가 조금 느슨해진 것 같았다. 카메라를 꺼내고 촬영하는 동안에도 계속 감을 쪼아 먹는다.

20대 때 외우고 다녔던 김남주 시인의 시한 편이 떠올랐다.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먹을 것 부족한 겨우내 새들 먹으라고 감 몇 개를 따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김남주 시인은 그것을 조선의 마음이라고 노래했다.

400년 넘게 이어지는 산치성제의 숲으로들어가다

작은 새가 까치밥을 다 먹고 날아가고 나서야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지하철 5호선 고덕역을 지나 이마트 교차로를 건너 명일근린공원으로 향했다. 명일산 자락에 만든 명일근린공원을 지나는 2㎞ 정도 되는 숲길(명일산책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명일산책길 초입을 지나면 이내 작은 향나무가 줄지어선 향나무길이 나온다. 푸른향나무 앞에서 높게 자란 나무의 갈잎이 스산하다. 빈 가지 촘촘한 숲길을 걷는다. 언덕같이 낮은 산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다.

오솔길 옆 숲에서 ‘강동 아름숲’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았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피해를 본 숲에 강동구 주민과 여러 봉사단 사람들이 소나무, 이팝나무, 산수유, 산딸나무, 밭배나무, 철쭉 등을 심어 다시 살린 숲이란다.

서울둘레길(일자산) 이정표를 따른다. 숲길교를 건너 오솔길을 계속 따르다보면 동아아파트 앞 교차로가 나온다. 이렇게 명일산책길은 끝난다. 교차로에서 상일 동아아파트 쪽으로 건널목을 건너 상암로79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상일근린공원 시내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강일역 3번 출구 정류장에 내렸다. 300년을 훌쩍 넘겨 사는 느티나무를 보러 가는길이다.

겨울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이미 잎 다 진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 전해지는 전설이나 얽힌 옛이야기 하나 없는 나무가 을씨년스럽다. 햇빛 비끼며 바람이 차진다. 나무를 뒤로하고 벌말근린공원 숲으로 들어갔다. 벌말공원 관리사무소까지 580m다. 언덕 같은 낮은 산, 짧은 숲길이라도 겨울 숲 마른 나무 냄새가 짙다.

그 길에서 비석 하나를 보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충남 예산 현감이 이곳으로 피란 와서 정착했는데,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산치성제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비석에 새겨졌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4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산치성제의 숲을 뒤로하고 게내수변공원을 찾았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옛날에 냇물에 게가 많아서 게내라고 불렀다. 지금 이름은 고덕천이다. 해거름 고덕천 둔치를 오가는 사람들을 비호하는 건 냇가에 서 있는 수양버들 한 그루였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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