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야카다부네'의 화려한 시절은 가고…

등록 : 2016-08-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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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해마다 휴가철이면 일본인들은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를 외칠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일본은 그야말로 거칠 게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일본의 모든 것을 배우겠다고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런 만큼 일본인들은 여유가 있었고, 그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친절과 포용,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쳐났다.

당시 일본에서 지냈던 우리네 같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 시대의 일본인’을 자주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친절을 베풀었던, 약자를 도울 마음의 준비가 늘 되어 있는 사람들처럼 80년대의 일본인들은 1등 국민으로서 완벽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가 한국보다 더 살벌하다.

그래도 5~6년 전까지만 해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10년, 20년’을 외치면서도 한 가닥 동아줄을 결코 놓지 않았다. 과거의 황금 시절을 되살릴 자신이 일본인들에게는 있었으니까.

지난 7월 말, 창립 20주년을 맞는 한 일본 중소기업의 기념식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초대 장소가 회사도,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호텔의 이벤트 홀도 아닌 철도 역인 몬젠나카초 역에서 가까운 선착장이었다.

그날 저녁, 20여 명이 참석하는 창립 20주년 기념 회식이 작은 배 안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그 배를 타고 ‘오다이바’를 지나 도쿄 앞바다를 돌며 야경을 배경으로 일명 ‘야카다부네(屋形船, 뱃놀이)’라고 하는 연회를 즐기는 것이다. 야카다부네의 하이라이트는 해마다 도쿄 앞바다에서 3만 발의 폭죽을 터트리는 불꽃놀이를 배 안에서 보며 연회를 즐기는 것이다.

이날,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에서 보낸 나로서는 텅 빈 도쿄 앞바다를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의 피폐해진 경제야 내가 일본에 살고 있으니 날마다 피부로 체감하는 것이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1년에 단 한 번뿐인 야카다부네의 불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참혹했다.


수백여 척이 흥청거리던 그 큰 바다에 10여 척도 채 안 되는 배들이 떠 있었고, 그중에는 80명 정원의 배에 고작 10여 명이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것이 여러 척일 만큼 일본은 극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다.

적어도 80년대와 90년대까지는, 7~8월이면 분위기가 달달한 무지개다리(레인보 브리지) 아래에 밤바다 연회를 즐기는 배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부어라, 마셔라, 찰칵으로 귀결되는 밤바다의 풍경이 여름밤의 일상 풍경이었기에 수개월 전부터 배를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외국인인 나조차 일본 경제가 황금기였던 80년대에는 신문사, 방송사, 잡지사, 출판사로부터 밤마다 초대를 받아 야카다부네를 즐기기도 했다. 잘나가는 기업체는 바닷가재 같은 특별요리는 물론 게이샤까지 초대해 연회를 즐기곤 했다.

1인당 5000엔부터 시작되는 야카다부네의 비용은 최고 3만 엔까지 하는데, 최근에는 얼마나 불황인지 5000엔 미만 가격으로 10명이라도 요리와 술을 마음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다베노미호다이(무한 리필)’를 한다고 선전하는 선박 주인들도 부지기수다. 오랜 불황이 1년에 딱 한 번뿐인 뱃놀이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2만 엔씩 회비를 모아 선상 동창회를 열었다는 교토 출신의 가와시마(69) 씨는 한마디로 이렇게 일본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2만 엔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2만 엔만큼의 정신적 여유도 일본인에게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야카다부네에 갈 엄두를 못 내는 겁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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