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도쿄 버스 안에서 나는 가끔 창피하다

등록 : 2016-08-25 14:10 수정 : 2016-08-25 14:58

크게 작게

일본 버스는 ‘경로당 버스’라고 할 만큼 천천히 달리기로 유명하다. 승객 또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한 낮에는 대부분 걷기 불편한 노인들이다. 그런 만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유유자적 책을 읽을 수도, 바깥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으니, 한낮의 버스 안 풍경은 그야말로 한가로움 그 자체다. 그런데 이 같은 고요함과 평화를 깨뜨리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일부 민폐 한국인들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날도 버스를 타니 한국인 모녀가 타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모녀가 버스 안에서 붕어빵과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다. 버스 타기 전에 샀는지 팥소가 아직 따끈따끈하다느니, 오늘은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서 좋았다느니 잡담을 나누며 먹고 있었다. 물론 대낮이니만큼 승객은 몇 되지 않았고,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사달은 몇 정거장도 안 가 일어났다. 달리던 버스가 신호등 앞에서 멈추는 순간, 모녀가 마시던 음료수가 엎질러진 것이다. 그들은 당황해서 허겁지겁 티슈를 찾았고, 내 가방 속에 있던 휴지까지 꺼내 닦고서야 겨우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때 일본인 승객들이 보내는 경멸 어린 시선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뒷거울(백미러)로 가만히 모녀를 지켜보던 운전사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버스 안에서 음식물 섭취는 금지돼 있으니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그러자 모녀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그 말을 받아 한목소리로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라고 외쳤다.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또 내가 직접 욕을 먹은 경우도 있다. 그날도 니시와세다에서 다카다노바바 역으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의자에 앉자마자 어디선가 우리말이 자꾸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예쁘장한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학생이 급한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버스 안에서 통화를 하는가 싶었다. 금방 통화를 마치려니 했는데, 두세 정거장을 가도 끊을 기세가 아니었다. 통화 내용도 같은 일본어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그날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 일본인 승객들은 몇 번이나 그 여학생을 째려보며 어서 끊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 또한 참다못해 뒷자리로 옮겨 가서는 그 여학생에게 조용히 말했다.

“전화 좀 그만 끊어 줄래요? 급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인들이 아까부터 학생을 째려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여학생의 반응이 압권이었다. 내 말에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리고 마치 내게 들으라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말했다.


“아이, 재수 없어. 야! 버스 안에서 이상한 한국 아줌마를 만났는데, 근데 나한테 전화를 끊으라니 마라느니 잔소리를 한다야. 웬일이니? 오늘 점심 더럽게 맛없겠다!”

물론 이런 사례는 극단적일 수도 있다. 같은 동네에 한국인이 많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 관광객이 급증한 뒤로는 민폐 한국인들이 더 많아졌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한국인과 거의 날마다 마주칠 정도다. 통화 내용도 안 해도 그만인 수다 수준이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하다.

일본인들은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리면 다음 역에서 내려 전화를 받고, 그런 다음 전철이나 버스를 탄다. 진짜 다급한 일이 아니면 공공장소인 대중교통 공간에서 절대로 통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는 있는 대중교통 이용 매너다.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