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상사와 싸우더라도 조직과 싸우는 모습은 금물

약탈형 상사에 시달리는 30대 중반 직장여성 "너무 속상해요"

등록 : 2016-08-25 15:37 수정 : 2016-08-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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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0대 중반의 직장여성입니다. 회사 창립기념 행사에 참석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미래 비전을 나타낼 전시 아이디어를 전사적으로 공모했는데, 제 직속 상사가 수상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은 저였고, 제안서를 만든 것 역시 저였는데, 공적을 가로채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제가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말이 안 된다며 일축해버리더니, 경영진이 그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얻은 뒤에는 조금 손질해 자기 이름으로 제안했던 모양입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제가 야근이나 휴일 근무하면서 달성해놓은 실적도 모두 자기 것으로 둔갑시켜놓았더군요. 정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문제는 회사 고위층에서는 그를 매우 능력 있고 아래 직원들과 잘 지내는 중간 관리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유독 저만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고 너무나 속상합니다.

A 제 관점으로 리더는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뉩니다. 먼저 ‘양육자’ 유형의 리더로 부하들을 잘 키워 주는 상사입니다. 후배들이 쑥쑥 커나가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며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는 고마운 선배들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포식자’ 그룹이 있습니다. 초식동물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의 개념을 빌린 것입니다. 포식자 가운데 악행이 특히 심한 유형을 가리켜 ‘약탈자’ 상사라 부르고 싶습니다.

약탈자 그룹의 리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랫사람이나 약자의 공적을 가로채는 생존 방식입니다. 이들은 힘들여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치타가 전속력으로 뛰어 가젤을 잡은 뒤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동안 유유히 다가와 먹잇감을 가로채는 하이에나처럼 남의 공적을 가로챕니다. 사연을 보내 주신 분의 상사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사내 정치. 약탈자 유형은 일의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사내 역학 관계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애용하는 식당과 메뉴까지 꿰뚫고 있습니다. 소문과 뒷담화는 이들의 전공이지요. 실력에 비해 남들에게 보여 주는 능력은 훨씬 뛰어납니다.

세 번째로 카멜레온 같은 특성입니다. 윗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표정을 짓습니다. 유머 감각도 발휘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를 멋진 관리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정반대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특히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는 냉정한 얼굴로 돌변합니다. 공적은 내 것, 책임은 남의 것이란 공식에 철저합니다. 카멜레온답게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주장과 논리도 변합니다. ‘우리’와 ‘의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자기 자신이 최우선입니다.

네 번째,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데 출중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나를 형이라고 생각하고 털어놓아도 돼’라는 말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솔직한 고민과 생각, 비장의 아이디어가 입에서 술술 흘러나옵니다. 마치 거머리처럼 순식간에 남의 아이디어를 빨아들입니다. 후배는 출세를 위한 한낱 도구와 발판이었을 뿐인 거지요.

다섯 번째, 선민의식과 피해의식의 이중주 연주입니다. 누구보다 잘나가고 있다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다가도, 어느 날에는 직장 내에 자기만큼 능력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열변을 털어놓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타이틀을 부여하면 괴물이 탄생합니다. 소위 ‘완장’이라는 이름의 괴물입니다. 반드시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합리적이라는 미국과 서구의 직장에서도 사내 정치와 사이코 직장 상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포식자와 약탈자 유형의 리더들이 잘나가면 아래 직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경영학 이론을 명쾌하게 분석한 것으로 윌리엄 와이트가 쓴 <조직인간(The Organization Man)>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옛날 방식의 상사는 당신의 노동만을 원했지만, 새로운 방식의 상사는 ‘당신의 영혼’을 원한다.”

그렇습니다. 생존을 위해 영혼까지 짜내야 하는 게 오늘날 직장인들의 슬픈 현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으로 답이 어렵군요.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면 쉽겠지만, 사연을 보내신 분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공식은 없습니다. 각각의 상황과 현실이 다르니까요. 상담을 요청하신 분의 사연을 들으며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혹시 상사에게 만만한 대상으로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 말 못 할 성격, 아니면 파워가 약한 존재로 간주된 것은 아니었을까? 약탈자 유형의 상사들은 누가 만만한 먹잇감인지 감별해내는 데 남다른 눈을 가졌으니까요.

아니면 앞선 책에서 지적했듯이 부드럽고 순응적인 인간성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조직 인간’ 태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조직생활에 빠져 있을수록 불합리한 지시라도 저항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뭔가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이 날 것이고 그 상사는 약탈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내 행동에 따른 상대방의 역공도 대비해야 합니다. 상대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상사와 싸우되 직장이라는 조직과 싸우는 모습을 띠어서는 곤란합니다. 믿을 수 있는 직장 내 우군부터 확보하는 게 우선입니다. 극단적으로는 퇴사라는 배수의 진까지 고민해야 하지만, 결코 본인을 망쳐서는 곤란합니다. 나가야 할 사람은 상사이지 사연을 보내신 분이 아닐 테니까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ㆍ전 대표이사ㆍ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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