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풀향기 빼곡 5월 동산, 짙은 추억 속 ‘인생 향기’ 불러내

㊿ 구로구 천왕산 개웅산 매봉산 숲길을 걷다

등록 : 2022-05-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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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잣절공원 이팝나무.

넘실대는 풀밭, 바람 타고 온 풀향기에

코끝에선 이미 ‘아버지 추억’이 맴돈다

뛰어놀다 숨 가빠 아버지 품에 안길 때

마음속에 들어온 그 향기, 지금 새롭다

이맘때 풀냄새가 짙다. 아버지 손잡고 뒷동산에 올라 너른 풀밭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에서 그때 그 풀향기가 맴돈다. 넘실대는 풀밭, 바람에 담겨온 풀향기는 5월의 향기다. 5월의 숲에서 그 향기를 만났다. 엄마 아빠를 따라와 숲에서 노는 아이들을 구로구 옛 잣절마을 뒷동산에서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뒷동산은 그렇게 살아 있었다.


들꽃 핀 기찻길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천왕산 앞에 도착하다

광덕사거리 부근 항동철길 초입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아무 생각없이 떠났던 숱한 여행에 함께한 기찻길이었다. 청춘과 낭만은 지금도 변함없어 기찻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것이다.

항동철길. 철길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라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진 왼쪽 숲길로 올라가면 천왕산 정상이 나온다.

한 발 한 발 딛는 발길, 녹슨 철길을 따라 이름 모를 작은 들꽃이 피었다. 허리 숙여 꽃을 보다가 이내 기찻길에 앉았다. 멀리서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렸다. 카메라 렌즈는 철길에 핀 들꽃을 향해 있었고, 귀는 아이들 노랫소리로 열려 있었다. 그 두 감각이 묘하게 어울렸다. 들꽃에 초점을 맞춘카메라 구도 속으로 아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경계도 없이 맑고 씩씩하게 먼저 인사하는 아이들 눈을 보며 “안녕”하고 답례했더니 아이들이 “아저씨 꽃 사진 찍어요?”라고 묻는다. “응” 하고 아이들 목소리를 흉내 내서 대답했다. 아이들은 기찻길을 따라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그랬듯, 다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화물을 실어 나르던 항동철길에 아이들 노랫소리가 퍼지고 녹슨 철길에 피어난 키작은 들꽃을 따라 걸었다.

항동철길을 걷다보면 푸른수목원 후문이 나온다.(사진 촬영 당시 공사 중이라 기찻길 일부 구간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출입 금지 구역을 우회하는 산길로 가면 된다.) 기찻길을 따라 계속가면 수목원 정문이 나온다. 항동저수지가 있는, 꽃과 나무가득한 수목원도 좋지만, 이번에는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수목원과 나뉜 천왕산 쪽으로 향한다. 그러니까 수목원 자리도 천왕산자락이었는데, 기찻길이 생기면서 산자락이 끊긴 것이다.

천왕산으로 올라가는 산길 초입에 세월의 더께 앉은 낡은 집이 녹슨 철길과 어울렸다. 기차가 다닐 때는 그야말로 ‘기찻길 옆오막살이’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자는’ 집이었을 것이다. 낡은 집 앞 텃밭에 시금치와 열무가 자란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함께하는 저녁 밥상에 오를 열무김치와 시금치나물을 생각하며 천왕산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천왕산과 개웅산을 이어 걸으며 추억 속 풀밭의 향기를 떠올리다

시금치와 열무가 자라는 텃밭 옆을 지나 산으로 오른다. 커다란 나무 아래 풀숲에 노란 애기똥풀꽃이 지천이다. 풀밭 향기가 솔솔 풍긴다.

천왕산으로 올라가는 초입, 풀숲에 애기똥풀꽃이 가득 피었다.

이맘때 풀냄새가 짙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잡고 올랐던 뒷동산 향기가 생각났다. 뒷동산 숲을 지나면 너른 풀밭이 나왔다. 바람에 풀숲이 살랑거렸다. 그 풀밭에서 뛰어놀았다. 아버지가 정해준 나무를 찍고 돌아오는 놀이를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작은 다리는 동동거리기만 했다. 아버지 품에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쉴 때 풀밭의 향기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에서 그때 그 향기가 맴돈다. 그래서 숲속 풀밭에서 피어나는 풀향기를 5월의 향기로 여겼다.

햇볕이 강해져서 양지는 너무 밝고 음지는 너무 어둡다. 그 또렷한 빛의 대비는 숲길에서도 어른거린다. 생동하는 봄에서 무르익는 여름으로 가는 중이다. 신록의 연둣빛에서 초록을 지나 얼마 있으면 진록빛의 숲을 이룰 것이다. 숲의 생명력을 느끼면서 천왕산 정상 쪽으로 걷는다. 하늘을 가린 숲이 빼꼼 열린 곳으로 햇볕이 내려와 잎을 비춘다. 햇볕 닿은 넓은 잎들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초록 불을 밝힌다. 초록 불 반짝이는 나무 아래를 지나 계단 끝에 다다랐다. 천왕산 정상이다.

구로올레길산림형3코스(천왕중학교) 이정표를 따라간다. 작은 소나무숲 전망대에서 앞으로 가야 할 매봉산과 그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돌아선다. 천왕산 정상을 표시한 바위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는다. 숲길은 구로올레길산림형4코스(개명소공원)로 이어진다. 천왕산에서 개웅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개웅산 봉화정.

봉화정을 지나면 청단풍 나무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개웅산 정상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개웅산 정상은 높이가 126m지만 전망이 좋다. 지나온 천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광명스피돔, 목감천, 도덕산이 코앞이다. 멀리 관악산 능선도 보인다. 정상을 지나 내려간다. 갈림길 철조망 앞에 이정표가 있는데, 두 방향 다 ‘개웅산둘레길 개봉배드민턴장입구’라고 적혔다. 배드민턴장이 1.45㎞ 남았다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간다. 개봉배드민턴장 운동장을 지나 봉화정삼거리로 향한다. 한낮이 지나면서 5월의 숲향기는 더 짙어진다. 하늘이 열리고 숲을 굽어볼 수 있는 구간이 나왔다. 천왕산이 한눈에 보인다. 개웅산 정상으로 올랐던 초입 이정표로 다시 돌아왔다. 그곳에서 천왕연지타운 1단지 방향으로 간다. 아파트단지가 보이는 숲 끝자락 풀숲을 노란 애기똥풀꽃이 뒤덮었다.

잣절공원 아이들과 전망 좋은 매봉산 꼭대기

항동철길, 천왕산, 개웅산에서 만난 작은 들꽃과 풀숲의 꽃들, 숲이 자아내는 5월의 향기에 곳곳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고,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기울어 매봉산은 다음에 찾아야 했다. 다음날 구로02 마을버스를 타고 개봉중학교 정류장에 내려 개봉중학교 쪽으로 걸었다. 학교앞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잣절공원이 나온다.

지금의 잣절공원 부근 마을을 예전에는 백사리(柏寺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사리의 한글 이름은 잣절마을인데, 잣나무가 많은 숲에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거성푸르뫼아파트에서 오류초등학교 사이에 옛날에 잣절고개가 있었다고 한다. 잣나무가 많은 숲 잣절고개를 넘던 옛사람들의 발걸음을 이어, 지금 매봉산 아래 사는 사람은 잘 가꾸어진 매봉산 숲길을 찾아 산책을 즐긴다.

요즘은 뒷동산이라도 둘레길이 잘 만들어졌다. 옛날부터 동네 사람들이 다니던 숲속 오솔길과 둘레길을 엮으면 다양한 산책코스를 만들 수 있다. 매봉산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길 가운데 잣절공원에서 정상을 지나 매봉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매봉산 잣절공원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숲길.

잣절공원이라고 새겨진 바위 뒤로 잘 가꾸어진 공원 숲이 펼쳐진다. 연못 위에 데크길이 놓였다. 커다란 수양버들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렸다. 바람에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에 시간도 한가롭게 흐른다. 공원을 푸르게 물들이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운 이팝나무가 몇 그루 눈에 띈다. 연못 위 데크 길을 이리저리 걸어서 이팝나무 앞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밥풀 같은 이팝나무 꽃잎이 모여 고봉으로 쌓였다. 달콤한 향기가 바람에 담겨 공원으로 퍼진다.

그 향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연못 위 데크길을 뛰어다니며 논다. 아빠는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다. 엄마는 유모차에 앉은 아기에게 꽃 하나 풀 하나를 짚어가며 이야기해준다. 자기들끼리 놀던 아이들이 아빠를 부르며 달려간다. 아빠 품에 한가득 아이들이 안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 뒷동산 풍경은 여전하다.

매봉산 기슭 잣절공원을 뒤로하고 숲속데크길로 오른다. ‘능선 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데크길을 벗어나 숲길로 걷는다. 높지 않은 산이라 금세 정상에 도착했다. 커다란 굴참나무가 우뚝 선 정상 마당은 전망 좋은 곳이다. 관악산부터 북한산 줄기까지, 그 사이의 도심을 한눈에 넣어 바라본다. 매봉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숲길 끝에 소나무숲이 있어 고마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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