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오래가려면 적정한 거리감 유지 필수!

각종 온라인·오프라인 모임에 잘 대처하는 법

등록 : 2017-11-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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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믿고 터놓은 말이

모임 멤버에 공유돼 ‘당혹’

상대방 존중이 진정한 인간미

인간관계도 양보다는 질

한국에서의 삶이란 모임과 모임의 연속입니다. 직장 회식, 동창회, 동호회, 동기 모임, 교회 교우회, 동네 친목회에 이르기까지 씨줄과 날줄처럼 수없이 많은 모임으로 엮여 있습니다. 겉으로는 좀처럼 외로울 틈이 없는 한국 사회입니다. 모임마다 단합을 외치고 끊임없이 참석을 요구하다 보니 연말로 갈수록 더욱 바빠질 겁니다. 하지만 이런 모임에는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종종 잡음과 부작용이 들려옵니다. 제 지인의 하소연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사람을 무척 좋아해서 여러 모임에 다닙니다. 누가 초대를 하면 웬만하면 나갑니다. 사람이 좋고 분위기에 취해서 한번 두번 나가다 보니 서로 형 동생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면 좋았던 모임도 뜻밖의 문제가 생기더군요.

너무 친하다고 생각해서 어떤 사람에게 믿고 터놓았던 저 개인의 비밀이 어느 날 모임 전체에 공유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친하다는 과시로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무척 큰 상처입니다. 한번 무너진 마음의 상처를 메우고 다시 원래의 궤도로 복귀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네요. 무엇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회의적입니다. 현재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관여했던 모임 대부분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니면 다른 제3의 방법이 있을까요?”


이분의 하소연을 듣고 나니 홍수에 마실 물이 귀하다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모임은 넘쳐나지만 진정한 만남은 귀합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나간 모임이지만 결국은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상처받게 되지요. 저도 종종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어떤 모임에 참석했더니 그다음부터는 강제와 의무로 가두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그 모임에 빠지자 듣기 거북한 ‘뒷담화’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소연을 한 분의 경우처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술잔을 몇 순배 돌리고 나면 너무도 쉽게 뜨거워지는 사람들을 봅니다. 만나자마자 형 아우, 언니 동생 관계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지요.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상대방의 프라이버시 영역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려고 합니다. 마치 간과 쓸개를 모두 내줄 것처럼 말하면서, 상대에게도 이를 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형이고, 언니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만약 어색해하거나 거부감을 표시하면 금방 ‘인간미가 없다’ ‘까칠하다’는 공격이 되돌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스타일도 제각각인데, 무조건 친밀한 모습을 강요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에 가끔 다른 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해관계를 노리고 다가오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자리에 있거나 영향력을 미치는 상대이면 그럴수록 더욱 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의 편의에 따라 형-아우, 언니-동생 관계를 쉽게 맺었다가 헌신짝처럼 금방 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대표이사 시절 술자리에서 형-동생 하자고 다가왔던 사람치고, 자유인이 된 지금 제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가까워지면 지배하려고 들고, 때론 독점하려 합니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이런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심합니다. 관심 가는 글과 경험에 이끌려 친구를 맺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몇 번 누르다 보면, 마치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소셜 미디어에서 맺은 제 친구들을 자신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일이 쫓아다니며 참견하려 합니다. 자기보다 다른 상대에게 관심을 더 표시하는 것 같으면 노골적인 질투를 보이고 급기야는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니체가 말했던 식으로 표현하면, ‘지배욕’의 발현입니다. 하지만 남을 장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피곤합니다. 내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하는 사람, 오래 만나기 어렵습니다. 자꾸 편을 가르려는 사람은 더욱 위험합니다. 자기만 주목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함을 계속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바람직한 관계가 아닙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라 강조했습니다. 이웃과 친구가 되려면 담장을 낮춰야 하지만 좋은 이웃으로 오래 남으려면 최소한의 담장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너무 담장이 높아도 문제지만, 담장이 없으면 간혹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 유지가 모임의 지속가능을 가져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자꾸 부딪히게 되고 상처도 생기고 결국은 불미스런 일들도 생깁니다. 간혹 금융사고도 발생합니다. 저는 그 적정거리를 ‘건강한 간격’이라 이르고 싶습니다. 호감이란 감정에서 출발한 인간관계일수록 그 건강한 간격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동차의 안전거리와 비슷해 접촉사고나 안전사고를 방지합니다. 상대방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고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요?

요즘 4차산업이 유행이지만 핵심은 연결망입니다. 흔히 인맥을 강조하지만 만나서 영혼이 풍요해지는 연결망이 있는가 하면, 갈수록 혼탁해지는 관계도 적지 않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미국 가수 밥 딜런이 얘기했던가요? 사람이 외로운 것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지속가능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적정거리를 유지해보면 어떨까요? 인간관계도 결국은 양보다는 질입니다. 저도 제 주변의 담장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글 손관승ㅣ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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