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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에 실·바늘 닿으면…옷은 개성 살리고 지구는 환경 살린다

등록 : 2022-12-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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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6일 오후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지하에서 자수 수선 수업이 열렸다.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가 ‘옷을 더 오래, 더 즐겁게 입는 방법 배우기’를 위해 마련한 수선예술 워크숍 6회차 가운데 마지막 회차다. 10~40대 수강생 9명이 구멍이 나거나 얼룩이 묻어 못 입는 아끼는 옷에 자수를 놓아 다시 입을 수 있게 만들었다.

(사)다시입다연구소, 지속가능한 의생활 위한 수선 클래스 열어

자수·뜨개·실크스크린 등 활용해 ‘오래 멋있게 입는’ 경험 제공

“환경을 위해 옷을 고쳐 입으려 참가했어요.”

11월26일 오후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지하에서 열린 자수 수선 수업에 참여한 정승연(44)씨가 말했다. 손바느질로 수를 놓아 헌 옷을 고쳐 보는 프로그램이다. 정씨는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이 모두 재활용되는 줄 알았다. 국내에서 5%밖에 재판매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오늘 배운 바느질법을 잘 활용하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40대 수강생 9명이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신이 가져온 옷에 한땀 한땀 수를 놓았다. 정씨는 아끼던 자주색 블라우스를 고쳤다. 얼룩이 있는 부분에 색실로 손바느질하던 정씨는 “스스로 손재주 없는 ‘똥손’이라 생각했는데 참여해보니 생각보다 잘 따라가는 것 같다”며 “미적 감각은 별로 없을지라도 내 스타일에 맞춰 고칠 수 있는 점이 참 좋다”고 했다.

이지혜씨가 파우치로 치앙마이 바느질법 연습을 하고 있다.

이번 수업은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가 ‘옷을 더 오래, 더 즐겁게 입는 방법 배우기’를 위해 마련한 수선예술 워크숍의 마지막 회차다. 워크숍은 11월 둘째 주부터 3주간 토요일 오전·오후 두 강좌씩 모두 6개 강좌로 진행했다.


치앙마이 바느질 수선, 핸드페인팅, 물나염, 뜨개 수선, 실크스크린, 자수 수선 등이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손바느질이나 맞춤 수선(커스터마이징) 등을 하면 옷을 얼마든지 멋지게 오래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리고 의류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2020년 시작한 비영리 스타트업이다. 올해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연구소는 ‘나에게 온 옷은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을 세워 안 입는 옷은 교환하고 못 입는 옷은 수선해 다시 입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승연씨가 자주색 블라우스의 얼룩 부분에 자수를 놓고 있다.

자수 수선 강사 한겨레씨는 몇 년 전 타이치앙마이 가족 여행 때 고산족에게서 배운 바느질법에 매료됐다. 본업은 가수지만 바느질 강사 일도 즐겁게 하고 있다. 이날 강의에서 한씨는 의생활 속 제로웨이스트 실천 활동으로 자기다움을 꺼내는 작업을 강조했다. 그는 “손바느질의 멋과 재미를 알려 꿰매입는 생활이 가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원래대로 복원하기보다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 가치를 더하며, 서툴더라도 끝까지 해보는 게 의미 있다”고 했다.

수업은 가장 간단한 홈질을 하며 실·바늘과 친해지는 활동으로 시작했다. 한씨는 “어묵을 꼬치에 끼우는 것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 된다”고 쉽게 설명했다. 수강생들은 강사가 나눠준 파우치에 홈질 연습을 했다. 직선으로, 촘촘하게, 느슨하게, 지그재그로 해보고 여러 색이 섞인 그러데이션 실을 사용해보기도 했다. 강사는 직선과 곡선 블랭킷스티치(담요 가장자리 엮는 자수), 페더스티치(깃털 모양 자수) 등을 하나씩 알려줬고, 수강생들은 금세 익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강사 한겨레씨가 치앙마이 자수 문양을 보여주며 수강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 가장 어린 이아연(13, 중학교 1학년)양은 아빠 이주훈(45)씨와 함께 참여했다. 이씨는 워크숍이 열린 건물에 입주한 기업에 다니고 있어 행사 포스터를 보고 참가 신청을 했다. 이씨는 “아연이가 손으로 만드는 활동을 좋아하고 환경보호에도 관심이 있어 지난주부터 4개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양은 실크스크린 수업에서는 에코백에 무한대 수학기호로 캐릭터를 만들어 그려 넣었다. 물나염 수업에선 얼룩이 여러 군데 생긴 아이보리색 후드티에 무지개색을 입혔다. “아빠가 사준 거라 아까워 버리지 못했던 건데, (물나염해) 입고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예쁘다고 해줘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번 수업에서 이양은 후드티의 끈, 소매, 주머니에 자수로 포인트를 넣었다. 빨강, 초록, 노랑 실로 페더스티치를 놓아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수업을 함께 듣던 수강생들이 이양의 응용력에 감탄하며 ‘지구를 구할 영재’라고 치켜세우자, 이양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수강생들이 자신의 헌 옷에 수를 놓아 만든 문양을 모아 보여주고 있다.

“고쳐 입는 건 ‘구질구질’한 일 아니야…오히려 가치 있는 일!”

6개 강좌, 10~40대 각 5~10명 참여

안 입거나 못 입는 옷을 멋지게 고쳐

개성 드러내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

이동진(34)씨는 6년 된 베이지색 티셔츠 뒷면에 난 구멍을 고쳤다. 초록색, 연두색 실로 동그랗게 돌려가며 달팽이 무늬를 만들었다. 이씨는 “편하게 입을 수 있어 두 번째 산 옷인데 찢어져서 버릴까 고민했다”며 “멋지게 고쳐 계속 입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한 그는 “자수 놓는 게 생각보다 재밌다”며 웃었다.

최연우(42)씨는 평소 몸에 잘 맞아 자주 입던 회색 라운드 티셔츠의 해진 소맷단에 수를 놓았다. 빨간색 실로 블랭킷스티치, 초록색으로 페더스티치 바느질을 했다. 화단에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는 예쁜 그림처럼 보였다. 3주 전 치앙마이 바느질 수선 수업에도 참여했다는 최씨는 “10년 전 친구가 고쳐달라고 준 구멍 난 니트 손가락 장갑을 직조 방식으로 꿰맸다”며 “이번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자수를 놓기 어려운 소재의 옷도 있었다. 이지혜(35)씨가 가져온 아이보리색 쫄쫄이 스판 티셔츠는 팔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강사가 옷감을 만져보고 방법을 고민하다 홈질로 건너뛰며 메우는 방식을 알려줬다. 이씨는 보라색과 빨간색 실로 꼼꼼하게 메워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었다. 이씨는 “간단한 홈질로 마음에 드는 무늬를 만들 수 있어 신기하고 재밌다”며 “오늘 배운 걸 다른 옷이나 가방에도 활용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강사 한씨는 수강생들에게 ‘보이는 수선’(Visiable Mending) 트렌드를 알려줬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수선(#mending)을 검색하거나 틱톡 영상 등에서 실과 바늘을 이용한 다양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수선 워크숍이 펼쳐지고 온라인 강의도 많아졌단다. 한씨는 “온라인에서 수선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며 “고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좋아하는 옷을 버리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수선 문화 확산을 위해 추진한 순환랩 프로젝트 결과물 전시회를 11월26일까지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지하에서 열었다. 프로젝트에선 그림책 작가, 수선 예술가 등 8명이 참여해 옷 교환 행사 뒤 남겨진 옷들에 다채로운 매력을 덧입혔다. 결과물들은 17일 옷 교환 행사에서 교환 의류로 선보인다.

한편, 다시입다연구소는 수선 문화 확산을 위해 지난 9~11월 순환랩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옷 교환 행사 뒤 남아서 기부해온 옷을 활용하는 실험이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사업과 연계해 진행했다. 프로젝트에는 인스타그램 공개 모집으로 8명이 참여했다. 그림책 작가, 커스텀 아티스트, 수선 예술가, 업사이클링 공예가 등이 각자 또는 함께 수선 아이디어를 내 청바지, 원피스 등을 고쳤다.

전해운 다시입다연구소 연구원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참여자들이 남겨진 옷들에 다채로운 매력을 덧입혔다”고 전했다. 밑위가 짧은 스키니진은 두 개를 합쳐 에이(A)라인 스커트로 만들고,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청바지 뒷주머니는 과감히 떼내고 수를 놓았다. 기장이 애매한 민소매 원피스는 아랫단을 잘라 조끼로 만들었다. 약간의 얼룩이 있는 옷에는 섬유용 물감을 뿌리거나 그림을 그려 색다른 느낌을 더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전시를 거쳐 17일 옷 교환 행사에서 교환 의류로 선보인다. 행사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점 스카이라운지에서 열린다. 정 대표는 “20여 회의 교환 행사에서 평균 36%의 옷이 교환되지 않고 남았다”며 “남는 옷이 한 벌도 없도록 연구와 실험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다양한 수선 아이디어가 옷을 버리지 않고 고쳐 입는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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