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농사, 갈무리가 반이다

된서리 맞으면 일년 농사 헛일…고추는 실에 꿰 말리면 걱정 덜어

등록 : 2016-10-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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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물은 잘 말리면 겨우내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오른쪽 위부터 땅콩, 무청, 감국. 감국을 잘 말려두면 차로 마실 수 있고, 땅콩은 양파망에 넣어 보관하면 곰팡이를 피할 수 있다.
농부에게는 휴가가 따로 없다. 밭이나 작물이 쉬면 같이 쉴 뿐이다. 양파, 마늘 파종을 끝낸 농부라면 쉴 자격이 있다.

입동과 소설이 있는 11월은 밭이 월동에 드는 때이다. 하지만 농사는 갈무리가 반이라고 했던가. 농부에게 11월은 여전히 땀 흘릴 곳이 많다. 땅콩, 들깨, 고구마, 배추, 무 등 손을 놓고 있다가는 된서리에 고스란히 버릴 수 있다. 반면 조금만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고구마 줄기, 고춧잎, 들깻잎 등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고구마는 그늘에서 3~4일 동안 후숙시킨다. 그래야 당분이 더 많아진다. 후숙시킨 고구마는 흙을 털어내고 종이 상자에 신문지 몇 장을 구겨서 넣고 얼지 않을 곳에 둔다. 고구마는 얼면 금방 썩어버린다. 반면 동해를 피하면 이듬해 햇감자가 나올 때까지 먹을 수 있다. 어지간한 도시농부들은 애써 가꿔 거둔 고구마를 한두 달 만에 내다버리곤 한다.

고춧가루 벌레 막으려면 냉장 보관

고구마 줄거리는 칼슘이 우유보다 12배나 많다. 고구마를 캐기 전 줄거리를 먼저 거둬들이자. 햇빛에 바짝 말린 뒤 양파망에 넣고 처마 밑이나 발코니에 매달아놓으면 겨우내 먹거리가 된다. 습한 곳에 두면 곰팡이가 난다. 여름까지 먹으려면 비닐봉지에 방습포와 함께 넣어 항아리에 보관하면 된다. 양이 적으면 냉장고에 보관해도 된다.


텃밭지기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고추 말리기다. 햇빛과 바람이 좋은 곳에서 말려도 고추 속에 하얀 곰팡이가 끼는 경우가 많아 절반은 버린다. 양이 많지 않다면 긴 실에다 꼭지를 꿰어 햇빛이 잘 드는 곳에다 매달면 곰팡이도 피하고, 장식용으로도 좋다. 잘 마른 것은 미리미리 고춧가루로 빻아놓아야 집 안이 번거롭지 않다. 고춧가루는 냉장 보관해야 벌레가 나지 않는다. 늦게 딴 빨간 고추는 고추장용으로 쓰면 좋다. 고추는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 달린다. 다 큰 놈이든 어린 놈이든 버릴 게 없는 게 고추다. 어린 것은 부각을 만들고, 큰 것은 냉동 보관하면 겨우내 쓸 수 있다. 그래도 남으면 믹서로 갈아 냉동 보관하면 된다.

메주콩은 서리를 맞아 샛노래질 때까지 밭에 그냥 내버려둔다. 콩은 얼지만 않으면 먹을 수 있으니, 서리 맞아 샛노래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콩깍지가 벌어지면 딸 때 떨어져나갈 수 있으니, 콩깍지 상태를 보아가며 딴다. 뿌리째 뽑아 말리면 탈곡할 때 흙과 섞여 콩을 고르기 힘들다. 밑동을 뿌리째 뽑았으면 흙을 잘 털어내야 한다. 콩대는 밭 위에 덮어두면 잘 썩어 거름이 된다.

밑동을 베어낸 들깨는 잘 마르면 큰 포장을 깔고 얹어놓은 뒤 막대기로 두들겨 턴다. 검불과 잡티가 많아 깨를 고르기가 어렵지만, 언제 그 고소한 향기에 온몸을 내맡길 수 있을까. 바람에 검불을 날려 보내고 체로 걸러 말린다. 물에 띄워 조리로 건지기도 한다. 짜낸 들기름은 냉장고에 넣거나 소금 항아리 속에 묻어 두면 산화를 막을 수 있다.

고구마를 캐낸 밭에 양파를 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과 마늘을 심는 모습.

생강은 잘 말린 흙에 담아 보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김장 배추와 무의 갈무리다. 일찍 뽑은 배추는 보관이 문제다. 12월 초에 김장을 하는 집이라면 배추를 뽑을 때 뿌리째 뽑으면 싱싱함이 오래 유지된다. 무는 무청을 따로 모아 시래기를 만들어 그늘에 말리고, 무는 신문지에 하나씩 싸서 그늘진 발코니 얼지 않을 서늘한 구석에 두면 된다.

양이 많으면 밭에서 물이 잘 빠지는 곳을 골라 최소한 70㎝ 이상 깊게 파서 묻은 뒤 마른풀이나 왕겨, 톱밥 등을 두둑하게 덮어주고 지표면보다 30㎝ 이상 흙을 덮는다. 그 위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비가림을 하는 저장법이 좋다. 무 외에 당근이나 야콘 같은 뿌리 작물도 이렇게 보관하면 된다.

생강도 11월 상순, 서리 맞기 전까지는 거둬서 말린 뒤, 종이 상자에 잘 마른 흙과 함께 담아 따듯한 곳에 둔다. 온도가 낮거나 습도가 높으면 저장 중에 썩기 쉽다. 땅콩도 잘 말리지 않으면 껍질은 물론 알에서도 곰팡이가 핀다. 잘 말린 땅콩을 양파망에 넣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두자. “농사는 갈무리가 반이다!”

글·사진 김희수 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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