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발달장애인·노인 등 소외계층 복지에 남다른 애정

조길형 영등포구청장 발달장애인 자립과 어르신 일자리 마련에 힘 쏟아

등록 : 2016-11-03 15:26 수정 : 2016-11-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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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형 영등포구청장(왼쪽 셋째)은 소외계층의 복지 문제를 사회참여와 일자리 확대로 풀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운영하는 마을기업 ‘꿈더하기 베이커리’에서 머핀을 만들고 있는 조 구청장.

“사랑합니다.”

 노란 민방위복을 입은 조길형(59) 영등포구청장의 인사에 ‘꿈더하기 학교’ 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나온다. “구청장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스스럼없이 구청장의 손을 잡고 안기는 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이다. 아이돌 가수라도 만난 듯한 아이들의 환대에 조 구청장은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며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안부를 물었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꿈더하기 학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위탁형 대안학교다. 서울시 교육청의 인가를 받은 정식 기관으로,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국·영·수와 같은 기본교과 수업은 물론이고, 발달장애 아이들의 자존감과 사회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육 훈련을 하고 있다. 아직 전교생은 7명에 불과하지만 시설 곳곳에는 ‘재활체육실’ ‘샤워실’ 등 발달장애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한 배려가 녹아 있다.

 “우리 발달장애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와 목욕탕에 가는 겁니다. 남들 시선도 시선이지만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아의 경우에는 씻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래서 목욕침대(샤워트롤리)를 갖춘 샤워실을 만들었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소개하던 조 구청장의 표정에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발달장애인 자립에 힘 쏟아 


발달장애인을 위한 영등포구의 지원은 ‘꿈더하기 학교’만이 아니다. ‘꿈더하기 지원센터’ ‘꿈더하기 카페’ ‘꿈더하기 베이커리’, 여기에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협동조합까지 준비한다 하니, 이 정도면 발달장애인을 향한 조 구청장의 뚝심에 놀랄 만하다. 조 구청장이 발달장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2010년 구청장으로 취임한 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모임인 ‘함께 가는 영등포장애인부모회’에서 찾아왔어요. 부모님 30명 정도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책과 계획들을 따져 묻는데, 꼭 청문회 같았습니다.” 조 구청장은 웃으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뒤로 숙제를 풀어가는 마음에서 하나하나 준비해온 것이 지금의 ‘꿈더하기’ 사업들이라고.

‘꿈더하기’ 사업의 첫 시작은 제과·제빵 교육이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지난해까지 300여 명이 수료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2년 ‘꿈더하기 베이커리’를 열었다. 마을기업으로 보조금 5000만 원과 발달장애 부모님들이 출자한 2900만 원을 모아 시작한 가게는 현재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직접 만든 머핀과 커피를 팔며, 하루 매출은 25만 원 수준이다. 카페 수익금은 발달장애인의 사각지대를 찾고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여의도 봄꽃 축제가 열릴 때면 부스를 차려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이 빵과 쿠키, 음료를 팝니다. 발생한 수익금을 각자 나눠 통장에 넣어뒀는데, 잘 때 그 통장을 품에 안고 주무시는 어머니도 있다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 소원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다 가는 것’이라는데, 그런 마음이 통장에 담긴 것 아니겠습니까. 많게는 2000만 원까지 모은 분도 있다는데, 아이들 자립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조 구청장은 발달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구가 먼저 나섰다. 영등포구는 2013년부터 발달장애인을 시간제노동자로 채용하고 있다. 계약 종료 뒤 민간기업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지역 도서관에서 사서보조로 일하던 발달장애인이 경력을 살려 이화여대 도서관에 취업하기도 했다. 현재 추진 중인 협동조합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발달장애인들의 능력을 살려 이들이 생산하거나 기증받은 물품을 인터넷으로 팔 계획이다.

산 없는 지역 살려 녹지 적극 조성

 일자리를 통해 소외계층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비단 발달장애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조 구청장은 “영등포에 사는 90살 이상 어르신만 해도 1300명이 넘는데, 이 중 일자리를 가진 분도 십여 명 정도 됩니다. 거동만 불편하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라며 어르신 생활 안정화를 위해서는 이들의 일자리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할머니의 손맛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파는 ‘꽃할매네 주먹밥’ 가게는 영등포구만의 특색 있는 어르신 일자리 사업이다. 지난해 양평동과 신길동에 1, 2호점을 개점한 지 1년 만에 3만여 개의 주먹밥을 팔았다. 여기에 밑반찬을 조리해 판매하는 협동조합도 세울 예정이다.

 영등포구가 발달장애인, 어르신, 노숙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치면서 사회참여와 일자리를 강조하는 데는 조 구청장 자신이 걸어온 길과 무관하지 않다. “저는 부모의 사랑을 많이 못 받은 사람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을 정도로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았고요. 그래서 10대의 어린 나이에 집(전남 영광)을 나와 서울로 왔지요.”

조 구청장은 아직도 1970년대 초 영등포역에 발을 내디뎠던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무작정 상경한 탓에 일정한 직업도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그는 남달리 주변 사람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조 구청장은 “봉사를 하다 보면 아는 사람들이 생겨나 배고플 때 빵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고 웃었지만, 밑바닥부터 다져진 현장 경험과 인간관계는 그가 지역 정치에 나섰을 때 두꺼운 지지기반이 되어주었다.

그는 스스로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네 번의 기초의원을 지내고 구청장을 연임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강서, 관악을 비롯한 7개 자치구가 우리 구에서 분구되었지요. 과거 한강 이남의 중심지였던 영등포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조길형 구청장은 서울시 2030 도시계획에 영등포가 서울 3대 도심으로 격상된 것을 예로 들며, 영등포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들을 설명했다. 서울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산이 없는 지역인 만큼 도시재생 사업을 할 때 녹지와 생태공원을 적극 조성하겠다는 것이 조 구청장의 생각이다.

 키가 190㎝가 넘는 거구의 조길형 구청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선거철도 아닌데 그런 인사는 오해를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취재진의 농담에 조 구청장은 “참 아름다운 말이잖아요. 어떤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이 제게 배꼽인사를 하면서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데, 너희들이 내 위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도 그렇게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덩치에 안 어울린다고 뭐라 하시더니 이제는 동네 어르신들도 저를 보면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주세요. 그 순간만이라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니 얼마나 좋아요”라며 푸근하게 웃었다.

글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사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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