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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새 노인 일자리 사업, ‘세제 리필’ 통해 환경도 살린다

탄소중립 실천하는 은평구 노인 일자리 사업 ‘세제 정거장 어스’
애경산업과 협약…세제·비누·치약 등 5억원어치 생활용품 후원

등록 : 2023-08-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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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ℓ 플라스틱통 연 1만2천 개 재활용, 1500가구 탄소중립 서약 목표”

근무자는 건강 챙기고 용돈도 벌고

취약계층은 무료 세제로 가계 도움

“환경 접목한 다양한 노인일자리 추진”

은평구는 지난 5월부터 서울 자치구 중에서는 처음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 ‘세제 정거장 어스’를 시작했다. 16일 오전, 은평구 진관동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있는 ‘세제 정거장 어스’ 리필스테이션(나눔 장소) 앞에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16일 오전 10시30분께 은평구 진관동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있는 ‘세제 정거장 어스’ 리필스테이션(나눔 장소) 앞에 노인 10여 명이 줄을 섰다. 방문 기록지에 이름을 적은 뒤 세제를 담을 통을 건네자 근무자가 세제를 채워 다시 돌려줬다. 세제를 받기 전에 리필스테이션에서 간단한 탄소중립 실천 교육과 서약서 작성도 했다.

“너무 좋죠.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좋은 제품을 드릴 수 있잖아요. 자원을 재활용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 좋죠. 어르신들도 굉장히 고마워해요.” 근무자 남기순(70·갈현2동)씨가 신이 난 듯 말했다.

남씨는 첫 ‘손님’인 우은순(77·불광2동)씨에게 탄소중립 실천 교육을 했다. 남씨는 “어르신 이것 잘 보세요”라며 우씨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런 뒤 남씨는 우씨에게 1장짜리 재활용 종이로 만든 ‘탄소중립 실천서약서’ 내용을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했다. 탄소중립 실천 서약서는 탄소중립에 대해 이해하고 기후위기에 놓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탄소중립 행동을 실천할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과 7가지 실천 내용으로 돼 있다. 남씨가 하나하나 실천 내용을 읽을 때마다 우씨가 해당 내용 앞에 있는 네모칸에 ‘그렇게 하겠다’는 체크 표시를 했다. 우씨는 마지막으로 이름을 쓰고 사인을 했다.


남씨는 탄소중립 실천 서약서 작성을 끝내자 세제통에 세제를 리필해 우씨에게 건넸다. 남씨는 건네던 리필 세제통을 다시 잡더니 “어르신 여기 좀 닦아드릴게요”라며 세제통을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어르신 잘 쓰세요”라며 통을 건넸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우씨는 감사 인사를 건네고 리필 세제통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오늘까지 네 번째 리필을 받은 우씨는 “질도 좋고 서민에게 많이 보탬이 된다”며 웃었다.

리필스테이션에서 근무하는 남기순씨가 리필한 주방 세제를 한 주민에게 건네고 있다.

이서분(81)씨도 오늘 세 번째 리필을 받았다. “너무 좋죠. 노인들 사는 형편이 그렇죠. 그런데 물가도 오르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이씨는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사람 위해서 세제를 무료로 나눠주니 참 살 만한 세상”이라며 “환경도 살릴 수 있어 더 좋다”고 했다.

“지구는 하나인데, 모든 사람이 전부 버리면 지구는 갈 곳이 없잖아요. 전부 오염되면 모두 사람한테 되돌아오는 것 아닙니까.” 오늘 세 번째 온 김갑도(78·불광2동)씨는 지구가 오염되면 사람한테 모두 되돌아온다며 환경 오염을 걱정했다.

김씨는 “그래서 나 한 명이라도 여기 쓰여있는 대로 실천하고 있다”며 “당연히 후손들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 자식들, 손자들에게도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 주방용 세제 받았습니다. 빈 통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겁니다. 큰 보탬이 되죠.” 김씨는 “이달부터 버스요금 오르지, 또 10월달부터 전철요금 150원 오르지, 물가가 계속 올라가는 상황에서 이건 큰 혜택을 보는 것”이라며 “더욱이 환경도 살리는 일이라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리필스테이션에서 근무하는 박창호씨가 주방 세제를 리필통에 담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건강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더욱이 많지는 않지만 용돈벌이는 해요.” 박창호(65·불광동)씨는 이곳에서 5월15일부터 근무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3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일한다. 매일 집에서 20분 거리를 걸어다니니 운동도 되고 좋단다. “퇴직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나이 들어도 기술이 있으면 계속 일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일하기 힘들더라고요.” 박씨는 “나이 들면 어디 가도 잘 안 써준다”며 “그러다 보면 쉬게 되고 기간이 길어지면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박씨는 뒤늦게 인테리어 기술 등도 배워봤지만 꾸준히 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마음도 편해졌다.

“환경보호도 하고 봉사활동도 한다고 생각해요. 어르신들한테 좋은 소리 들으니 나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요. 생활에 활력소가 돼요.” 박씨는 “어르신들이 저한테 고맙다고 하니 자부심도 느낀다”며 “세제 정거장 어스 덕분에 꾸준하게 용돈 벌이라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재사용을 위해 깨끗하게 건조한 1ℓ들이 세탁 세제 리필통이 건조대 안에 들어 있다.

은평구는 지난 6월 애경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세제 정거장 어스를 시작했다.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환경보호와 접목한 노인일자리 사업인 세제 정거장 어스는 기초자치단체가 처음으로 운영하는 세제 리필 사업이다.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지구를 보호하고 노인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세제 정거장 어스에서 ‘어스’는 지구(earth), 우리(us)를 뜻하는데, ‘지구를 보호하고, 함께 일하는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앞으로 2년 동안 은평구에 세탁 세제, 주방 세제 등 5억원어치 생활용품을 후원할 예정이다.

구는 리필 스테이션을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신사노인복지관 등 은평구 내 노인복지관과 푸드마켓 등 총 8곳에서 운영한다. 이곳에는 환경 교육을 받은 노인 일자리 참여자 18명이 2인1조로 근무한다. 노인 일자리 참여 주민이 재활용 세제 용기를 가져온 취약계층 지역 주민에게 세제를 무료로 나눠준다. 이때 탄소중립 교육도 함께 한다.

“세제 정거장 어스를 통해 연간 플라스틱 1ℓ 용기 1만2천 개가량을 재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선 올해는 12월까지 시범 사업 형태로 운영합니다.” 고인자 은평구 어르신복지과 어르신행정팀장은 “취약계층 1500가구가 탄소중립 실천에 참여하게 된다”며 “자원 재활용과 지구 환경 보호, 일자리 창출, 나아가 사회관계 회복과 안부 확인 기능도 한다”고 했다.

세제를 리필 받으러 온 한 주민이 ‘탄소중립 실천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리필 스테이션에서 나눠주는 생활용품은 주방·세탁 세제, 치약, 비누 등이다. 주방 세제는 750㎖, 세탁 세제는 1ℓ들이 제품을 먼저 지급한 다음에 빈 통을 가지고 오면 리필해준다.

“애초 샴푸와 바디워시도 준비했는데, 법적으로 소분이 불가능해 후원업체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비누와 치약을 지급하기로 했죠.” 고 팀장은 “현행법에는 세제소분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이나 규정이 없어 세제 리필 사업을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구는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기관에 자문과 협조를 구하는 한편, 구 보건소와 협업한 끝에 세제 정거장 어스를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구는 세제 정거장 어스 외에도 2021년 분리배출한 아이스팩을 재사용하는 ‘아이스팩 더쓰임 챌린지’, 2019년 헌 옷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사업인 ‘더도울’, 폐지 줍는 어르신을 지원하는 ‘모두의 자원’까지 자원순환을 위한 다양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인데, 이왕이면 환경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평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래서 노인 일자리 사업이지만, 환경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고 팀장은 “세제 정거장 어스는 일자리도 만들고 탄소중립 실천으로 환경도 살리고 취약계층에 무료로 생활용품을 나눠주는 1석3조 효과가 있다”며 “올해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은 잘 메워가며 내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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