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소통하는 용산구 노인과 청년 “오해 풀고 이해 다리 놓는다”

용산구 노인과 청년이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세대 공감 잇다’
소통·체험하는 ‘멘토링’과 서로에게 배우는 ‘함께 배워요’로 구성

등록 : 2023-09-14 15:10 수정 : 2023-09-1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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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에겐 긍정의 힘 있어요”-“젊은이들 노력 본받고 싶어요”

노인은 경험, 청년은 ‘요즘 세상’ 얘기

소통으로 공감하며 삶의 만족도 높여

갈등 줄이고 긍정 분위기 확산 도움

용산구가 5일 오후 2시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청년지음에서 노인과 청년이 함께하는 용산구 멘토링 프로그램 ‘세대 공감 잇다’를 개최했다. 이날은 총 5회로 구성된 멘토링 프로그램 중 3회째로 노인과 청년들은 조를 나눠 4회째인 12일 있을 현장 실습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과 청년들이 체험 프로그램 기획을 끝낸 뒤 활짝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 좋다고 해서 왔죠.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홈뱅킹이나 온라인쇼핑 하는 법, 버스 노선 등 잘 모르는 것을 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손자 손녀뻘 아이들이 너무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죠. 너희들 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이렇게 잘 가르쳐주라고 얘기했어요.”(안애자씨·81)

“요즘 ‘엠제트(MZ) 세대 격차’가 이슈잖아요. 어르신들과 같이 얘기 나눌 기회가 없다보니 어떻게 다가가고 어떤 일에 관심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데, 이런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고 싶었죠.”(김채연씨·21)

5일 오후 2시, 노인과 청년이 함께하는 용산구 멘토링 프로그램 ‘세대 공감 잇다’ 현장인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청년지음에는 때로는 진지한 대화가 오가고 때로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세대공감 잇다’에 참가한 안애자씨와 김채연씨는 소통을 통해 공감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사회가 무척 살기 힘들잖아요. 젊은이들에게 자포자기하지 않고 조금 더 참고 견디면 좋은 날 온다고 얘기했죠.” 안애자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며 “그럴수록 더 힘을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2년부터 2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해온 안씨는 “젊은이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최근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김채연씨는 “선생님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잘해주셨다”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외할머니와 같은 친근한 정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김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니어 선생님들이 열정적”이라며 “인생이 힘들 때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진솔하게 얘기하실 때는 저에게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멘토링에 참여한 노인을 지칭할 때 꼬박꼬박 ‘시니어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노인과 청년들이 5일 만든 프로그램 기획안대로 12일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용산구 제공

노인과 청년들은 이날이 세 번째 만남이다. ‘세대 공감 잇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커뮤니티 디자이너’ 김태헌 프리즈미 시이오(CEO)가 사회를 맡았다. 김 시이오는 “서로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로 참여하면 고맙겠다”며 “오늘 핵심 키워드는 함께와 경험 나눔”이라고 소개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퍼실리테이터(진행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조가 된 청년과 노인들은 열심히 ‘플랜 노트’나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에게 궁금한 것, 해보고 싶은 것을 얘기하고 논의 과정을 거쳐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다.

“서로 알고 싶은 것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을 텐데 쉽지 않잖아요. 서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거죠.” 청년 퍼실리테이터 유지향(30)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했다. 유씨는 “첫 만남 때는 서로 서먹서먹했고, 오늘은 3회차라서 좀 친해졌다”며 “회차를 거듭할수록 소통이 더욱 활발해진다”고 했다. “다음주에 뭘 할지 얘기하다보니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됐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등이요.” 유씨는 “다음주 현장실습과 그다음 주 소감 공유회까지 하면 친밀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노인과 청년들이 5일 만든 프로그램 기획안대로 12일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용산구 제공

용산구는 8월22일부터 청년과 노인이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세대 공감 잇다’를 시작했다. 세대 간 소통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세대 공감 잇다’는 청년과 노인이 조를 이뤄 서로 소통과 체험을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 청년과 노인이 서로에게 배우는 ‘함께 배워요’, 프로그램 마지막 날 참가자 전원이 한데 어울리는 ‘세대공감 커뮤니티’ 등으로 구성됐다.

“청년과 노인이 소통과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세대 간 갈등을 줄여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습니다.” 김유미 용산구 일자리정책담당관 청년정책팀 주무관(청년지음 담당자)은 “서로의 재능과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며 “노인들의 사회 활동 참여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고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8월22일부터 9월19일까지 매주 화요일 진행된다. 청년 20명, 노인 20명을 10개 조로 나눴다. 한 조에 청년과 노인 각 2명씩 4명과 진행을 돕는 퍼실리테이터 1명이 함께한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지난해에는 1 대 1로 했지만, 올해는 조를 나눠서 한다. 김 주무관은 “사정이 생겨 참여를 못할 때 파트너가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조별 진행으로 바꿨다”며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더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노인과 청년들이 5일 만든 프로그램 기획안대로 12일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용산구 제공

멘토링 프로그램은 자기소개 하기(1회), 소통의 시간(2회), 프로그램 기획하기(3회), 현장 실습(4회), 소감 공유회(5회) 등 다섯 차례 만나 소통한다. 자기소개 하기는 미술 워크숍에서 자신을 색으로 표현해보고 작품을 소개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소통의 시간은 세대 간 고민을 얘기하고 서로 조언도 한다. 프로그램 기획하기는 소통의 시간 내용을 바탕으로 현장 실습에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현장 실습은 각 조가 만든 프로그램을 실제로 진행한다. 소감 공유회는 지금까지 진행한 내용을 참가자 전체가 모여 공유하는 시간이다.

‘함께 배워요’는 8월24일부터 9월14일까지 용산청년지음과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매주 목요일에 진행한 일일 강좌다. 총 4회로 청년과 노인 2인 1조로 모두 80명이 참여한다. 1~2회는 청년 강사가 노인들에게 동영상과 오디오 제작 방법을 알려준다. 관심사에 따라서 동영상이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고, 이를 중심으로 서로 소통한다. 3~4회는 노인 강사가 청년들에게 명절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음식을 만들고 명절 이야기도 한다.

노인과 청년들이 5일 만든 프로그램 기획안대로 12일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용산구 제공

“너무 좋아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젊은이들이 더 호응해줘서 오히려 본받고 싶어요. 우리 말을 경청해주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여요.” 곽운자(75)씨는 얼마 전 수영하다가 갈비뼈 골절을 당했지만, 이곳에 오고 싶어서 복대를 차고 왔다. 곽씨는 “나도 젊은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고 젊은이에게 배울 게 있어 참여했다”며 “처음에는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려나 걱정이 앞섰는데 기우였다”고 했다. “오늘도 현장실습 장소를 결정하는데, 계속 서로 물어보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곽씨는 “하나같이 먼저 내 의견을 물어본 뒤 당신들 의견을 얘기해서 너무 고마웠다”며 “선생님(청년)들이 나보다 먼저 마음을 열어줘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다음주 현장 실습 활동 아이디어 낼 때 너무 적극적이에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의견을 내시거든요. 살아온 얘기를 들을 때는 열정적인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노년의 장점도 분명히 있어요. 저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열정과 긍정의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취업준비생 최다한(25)씨는 “어르신들과 서로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얘기하다보니 시니어 선생님들에게 분명히 배울 점이 많은 걸 알았다”고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과 청년들이 밝은 표정으로 현장 실습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세대 공감 잇다'는 오는 21일 참가자 전원이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함께 즐기는 세대공감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마무리한다. 김유미 주무관은 “어르신과 청년이 같이 살고 있지만 소통이 잘 안돼 서로 오해가 생긴다”며 “‘세대 공감 잇다’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솔한 얘기를 나누면서 오해도 풀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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